: 쓸데없이 재미있게 살아볼게
좋아한다, 좋아하지 않는다.
조르주 페렉의 책을 읽다가...'나는 좋아한다, 좋아하지 않는다'는 글을 읽습니다.
어른이 되면 취향이라는 것이 없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아니 됐어! 너 먹어'
엄마는.. 아빠는.. 딸기를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피자를, 치킨을,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어느 사막 한가운데 바위 동굴 안의 구도자처럼, 모든 것에 초월한 사람들인 줄 알았습니다. 아빠가 되어보니 아! 딸기가 여전히 좋습니다. 엄마, 아빠는 거짓말쟁이입니다.
왜일까?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는 것에 대해 꺼내지 않습니다. '뭐 그런 걸 다!' 별나보이기도 하고, 까탈스럽고 예민해 보여서인지 애써 숨기고 입은 벙어리가 됩니다. 부모가 아니어도, 어른이 아니어도, 머뭇거리고 주저합니다. 내 안에 분명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에 대한 울림이 있는데 말이죠.
그래서 밖으로 꺼냅니다. 자신만의 취.향.을 갖고 있다는 건 어쩌면 나를 온전히 지키고 사랑하는 법일테니까... 그리고 취향을 드러내는 것은 나다움을 드러내는 것이고 그 '나'다움이 바로 '아름'다움이니까요. 시시 꼴꼴한 리스트일지 모르지만,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을 풀어놓습니다.
만일.... 또 어느 누군가와 사소한 취향을 하나라도 공유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서로가 통하는 것! 그때부터 서로가 1일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나는 좋.아.한.다.
은반지, 오래된 수동카메라, LP, 늙은 엄마의 콩나물 김칫국, 시간이 묻어있는 스니커즈 운동화, 흰색의 커다란 에코백, 두꺼운 검은 뿔테안경, 천장까지 닿아있는 커다란 책장, 서재, 쓸데없는 생각으로 글 쓰는 아침시간, 에스프레소 도피오, 딸기, 우산 없이 비 내리는 파리의 산책, 그림 그리기, 만년필,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의 음악들, 2만 원대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레드와인, 뜻밖의 오후 반차, 오랜 친구와의 약속, 가죽팔찌, 몰스킨 스케치북, 아쿠아 디 파르마 향수, 교보문고 디퓨저 향, 돼지갈비, 카라바조의 그림들, 고흐의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휴일 책 읽는 아침 7시 정각, 체게바라, 뚝섬에서 바라보는 한강의 석양, 페도라 모자, 레이벤 선글라스,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 영화 인디아나 존스, 스타워즈, 영웅본색, 중경삼림 속 양조위의 깊은 눈, 공항 가는 길, 소울과 펑키 음악, 가수 알 자로, 파르미지아노 치즈, 앤디워홀, 충분한 시간 갖기, 도시를 산책하는 플라뇌르, 피렌체... 그리고 사랑하는 짝꿍과의 포옹, 고등학교 딸아이의 다정한 전화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체크무늬 폴로셔츠, 오크향 위스키, 무거운 메탈 손목시계, 라떼 커피, 목이 좁은 티셔츠, 젊은 가수들이 부르는 트로트 음악, 검은색 구두, 커다랗고 무거운 스마트폰, 제육볶음, 클래식음악, 홍차, 스릴러 오컬트 영화, 감자로 만든 모든 것, 사이다, 소설 롤리타, 낯선 곳에서의 첫날밤, 떡볶이 단추, 순대, 청경채, 형님이라는 호칭, 전자담배, 토크 예능 프로그램, OTT 드라마 시리즈들, 곱창, 광고주의 한밤에 걸려오는 전화, 인스타그램 한 달에 번 돈 사진, 아웃도어 옷, 롱패딩, 현대조각들, 비스킷, 초코우유, 딸기우유, 치킨버거, 후라이드 치킨, 면바지, 종이컵에 주는 에스프레소, 실용서적, 수학, 지금도 쓸모없는 수학 공식들, 070 전화와 이벤트 문자, 건강검진 대장내시경 음료, 비행기의 가운데 자리, 줄이 쳐진 노트, 말없이 불친절한 키오스크, EDM 음악, 일요일 오후 네시에 느끼는 감정, 마라탕, 코미디 프로그램, 쇼핑몰 주차장의 긴 줄, 키 크고 몸 좋고 잘생기고 돈 많은 세상이 모든 남자... 그리고 이 중 하나라도 갖고 있는 모든 남자.
10대보다는 20대에, 20대보다는 30대, 40대, 50대에 자신만의 취향이 더 풍요로워져야겠습니다. 그만큼 세상을 살고 여행하고 둘러본 경험이 쌓이고 쌓여... 내 안에 감출내야 감출 수 없는 향기 가득한 자신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좀 더 풍요로운 나의 취향이 나의 향취이기를... 나는 또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겠습니다.
P.S.
몇 주간 긴장하며 달려온 광고제안 경쟁 PT가 끝났습니다. 결과가 어찌 됐든 이런 날은 회식을 하며 고생한 친구들과 회포를 풀어야 합니다. 등을 두들겨주며 서로를 응원합니다.
대표님, 뭐 먹을까요?
응! 난 짜장면!
진짜 진짜 취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