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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X May 17. 2024

어쨌든, 나의 책장에 대해 말하자면…

: 쓸데없이 재미있게 살아볼게


천장까지 높게 닿는 책.장.을 갖고 싶어!


이사를 하면서 제일 먼저 소망한 것이 바로 나만의 책장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가능하면... 기존에 있던 책장이 아닌... 나만의 책장을 그리워했습니다.


책 역시 취향에 따라 각자 좋아하는 분야가, 관심 있게 보는 것이, 생각과 그리는 세계가 다르니... 책과 보는 사람이 나누는 이야기가 서사가 되고 그 서사에 맞춰 각자의... 자.기.만.의 책장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사람마다 얼굴과 성격, 음색이 다르듯 말이죠.


일반 책장이라면 아마도 같은 사이즈와 색깔에 맞춰 판매가 되는 것일 텐데 왠지 내 몸에 옷을 맞춘다기보다 옷에 내 몸은 맞춘다는 느낌이 들어서... 나만의 책장이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혹시 이런 경험 있으신가요? 한아름 책을 사서 돌아오는 길, 그리고 그 책을 책장에 꽂아두는 것만으로도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은 큰 부자가 된 느낌! 무슨 불치의 병마냥, 이 병도 여간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습니다.


책장 왼쪽 위... 한쪽면은 오래된 비디오테이프들이 놓여있습니다. 한때는 총을 쏘고... 채찍을 휘둘렀던... 누군가와 사랑을 나눈 영화들은 이제 플레이가 되지 않는, 청춘을 기억하지 못하는 중년의 어른처럼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들을 버릴 수 없는 건... 영화들과 함께 했던 오랜 전 추억이 여전히 나에게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 아래, 비디오보다는 조금 최신의 영화 DVD가 한자리를 차지합니다. 어쩌면 간편했던... 그리고 좋았던 화질의 DVD도 이제는 OTT에 밀려.. 조금은 책장의 가장자리로 밀려났습니다. 늘 무대는 또 새로운 누군가를 주인으로 맞이하고 한때 주인공은 조연이 될 수밖에 없는 게 이치인가 봅니다. 그래도 무대를 내려오지 않는 건 아직도 열정이 남은 탓일 겁니다. 그래서 DVD에게도 마음이 갑니다.


음악 CD가 보입니다. 이들 또한 LP와 카세트테이프를 밀어내고 좋은 음질로 꽤 인기가 있었지만 이제는 디지털음원에 밀리고, LP와 카세트테이프의 아날로그 감성에 밀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그 어디쯤에 자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누군가 다시 찾아와 내려앉은 먼지를 떨어내고 온전한 자신을, 온전한 음악을 들어줄 날을 기다리며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가수 김현철과 신혜철의 넥스트 앨범 속 그들의 변하지 않는 목소리처럼 말이죠.


책장의 맨 아랫칸은 카세트테이프들의 몫입니다. 앞뒤로 꽂혀 있으니 200여 개는 족히 될 듯합니다.



사이즈를 딱 맞춰서인지 책장의 맨 위는 조금은 키 큰 녀석들의 자리입니다. 그리고 중앙에는 소설과 문학, 에세이와 자서전이,  책장의 오른쪽으로는 여행과 인문, 영화, 신화, 미술, 음악, 건축 등의 책이 차지합니다. 광고 관련 실용서는 모두 회사에 놓았습니다. 개그맨은 집에서 웃지 않고, 성악가는 노래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광고인도 광고는 꼴도 보기 싫습니다. 그러니 광고 실용서는 사양입니다.


아래에서 두 번째는 코믹북의 자리입니다. 신의 물방울과 마리아주, 캠핑로드, 슬램덩크와 20세기 기사단, 마징가, 은하철도 999, 천년여왕이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보아하니 이번생에 철들기는 틀렸나 봅니다.



특별히 애장하는 책은 스타워즈 시리즈입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스타워즈는 제 인생의 반려 영화입니다.  그래서 그와 관련된 책이 있다면 꼭 소장하려 합니다. 저에게는 반려책인 것이죠.


또 한 권을 이야기하자면 바로 <모비딕>입니다. 이 녀석은 조금 특별합니다. 그래서 책장의 중앙에서 커다란 눈을 뜨고 있습니다. 이 책은 여행을 떠날 때만 가져갑니다.


혹시 이런 분 있으신가요? 저는 이 책, 저책... 이것, 저것 여러 권을 나눠 봅니다. 집중력이 부족한 탓도... 약간의 난독증이 있는 탓도 있습니다. 인내심이 부족해서 인지... 책 한 권을 읽고 다음 책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성격상 여러 권을 한꺼번에 이 책, 저책 봐야지만 편안합니다. 그래서 자기 전에 읽는 책, 화장실에서만 보는 책, 주말 아침에만 보는 책, 차에서만 보는 책 등이 나눠져 있습니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이 <모비딕>은 해외 여행을 가서만 읽는 책입니다. 잘 아시죠? 여행을 가면 폼나게 푸른 바다... 썬배드에 누워 보는 책! 그 책이 바로 모비딕입니다.... 만!... 여행이 또 그렇잖아요. 오랫동안 보기가 어렵기도 하고... 워낙 벽돌책이다 보니... 10년을 넘게 여행을 함께 다니는 중입니다. 그래서인지 모비딕! 흰 향유고래 이야기지만... 아직도 에이하브 선장은 바다에 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다에 나가야 모비딕이 됐든 돌고래가 됐는 하여간 고래를 잡을 수 있을 텐데 말이죠. 언젠가 태평양에서 모비딕을 만날 날이 올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쌓이고 쌓여... 책장도 함께 나이가 들어갑니다. 초등학생 친구는 중학생이 되고 이제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친구도 많이 변했고 책도 많이 변하고 늘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두 번째 책장을 만들고 싶단 말이야!



시간이 지나고 오래된 책들은 책등이 빛을 바라며.. 나이 듦을 이야기합니다. 어쨌든, 나의 책.장.에 대해 말하자면 말이죠!



P.S.

회사 책장에 놓여있는 광고서적은 큰 산의 커다란 바위처럼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아무도 손으로 들려하지 않습니다.


광고회사에서도 마케팅과 광고책은 꼴도 보기 싫은 모양입니다.


책장에 책을 꽂는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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