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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X May 24. 2024

오늘도 LP

: 쓸데없이 재미있게 살아볼게


당신의 시간여행을 응원합니다. 


누군가는 오래된 일기장을 꺼내 지난날을 기억하기도, 누군가는 빛바랜 사진 속에서, 또 누군가는 영화의 어느 한 장면에서... 그리고 어느 누구는 스쳐 지나가는 향기에서도 시간의 여행자가 됩니다.  그렇게 나름의 방법을 찾아 여행을 떠납니다. 


그래서 '당신은 대체 어떤 방법으로 시간여행을 하는데?'라고 물어본다면 

지극히 개.인.적.입니다만! 내가 찾은 가장 완벽하고 확실한 방법은 'LP 음악'이라 답하겠습니다. 

 

음악은 그런 시간여행의 가장 빠른 방법입니다. 그러니까 순간이동! 음악을 듣는 순간 과거로 돌아가, 과거 어느 시점의 감정 하나 하나와 작고 사소한 기억을 온전히 추억하게 해줍니다. 함께한 누군가를 온전히 소환하고 애틋하게 그리도록 만들어 줍니다. 


사실 LP로 음악을 듣는다는 건 무척이나 귀찮은 일입니다. 그래서 멜론을 찾아 쉽고 빠르고 편하게 음악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어김없이 돌고 돌아 다시 LP음악을 찾는 이유는 바로 그 번거로움과 불편함 때문입니다. 좀 거창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몸으로 느끼는 음악! 그게 바로 LP를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재즈 에세이 <포트레이트 인 재즈>에서 그가 LP를 듣는 이유를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CD 말고, 옛날처럼 몸을 사용하여 LP로 듣는 것을 좋아한다…. 난 여자 친구보다 더 소중하게, 까지는 아니어도 그에 못지않게 레코드를 소중하게 다뤘다. … 요즘 사람들은 CD에 담긴 음악이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그 플라스틱 케이스를 껴안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은 미발표곡까지 담겨 있는 CD도 가지고 있지만, 결국은 푸근한 소리에 LP를 선택하고 만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옛날처럼, 몸.으.로. 느끼는 음악 그게 바로 LP를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음악이 듣고 싶으며, 우선 주욱~ 레코드 판을 훑어 찾아야 합니다. 앨범을 찾아 자켓의 종이커버를 열고 플라스틱 LP를 손으로 직접 꺼내 턴테이블에 올려놓습니다. 원하는 곡의 트랙을 확인하고 바늘을 그 위에 올려놓아야 합니다. 바늘이 돌아가는 공백의 시간... 그래도 바늘은 스스로 음악을 찾아갑니다. 그러니 잠시 기다리면 그만입니다.  


지지직! 


그렇게 한참을 기다려야만 음악을 들을 수 있습니다. 


번거롭고 비어지는 시간, 시간을 흘려보내는 작업입니다. 그러나 멜론과 지니... 디지털 음원에서는 결코 찾을 수 없는 몸으로 느끼는 감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것이 아날로그 감성이라지만 아마도 이건 시간을 여행하는 과정의 일부가 아닐까 합니다. 인스턴트 커피를 먹을 수도 있지만 원두를 구매하고 로스팅을 하고 핸드 그라인더를 사용하고, 필터에 물을 내려 마시는 커피의 향과 같은 것이죠. 


지지직! 


LP는 음질이 좋지 았습니다. 특유의 노이즈가 묻어납니다. 그래도 비가 내리는 날이면, 그 지지직의 소리는 빗소리와 한 박자가 되어... 제법 조화로운 노래를 들려줍니다.


요즘 들어 많은 사람들이 이 LP 음악을 좋아합니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나만 알고 있던 소중한 무언가를 들키고 빼앗긴 것 같아 좀 아쉽고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만, 그래도 계속 듣게 되는 것은 LP만이 내게 주는 감성.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보며 나만의 음악을 소유하고 추억할 수 있다는 그 감성 탓입니다. 


이문세의 <소녀>를 듣고, 신혜철의 <나에게 쓰는 편지>와 아델의 <헬로>를 들으며 아릿한 삶의 단락 단락과 단편 단편을 기억하는 시간이 더 없는 행복입니다. 


그래서!

과거의 시간, 과거의 나와 온전히 마주하게 되는, 

지극히 개인적인 시간여행에 대해 말하자면... 어쨌든 오늘도 LP 입니다.



P.S.

오늘 자뭇 진진한 걸 보니... LP는 가상탕진의 취미임이 분명합니다. 함부로 발 들여놓으면 큰일입니다.!

그래서 경쟁광고대행사 임원에게 슬쩍 권합니다.


거... 김실장님! 끝내주는 취미가 하나 있는데 말야...



오늘도...빛이 바래가는 LP와 시간여행을 합니다. 가산탕진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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