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art 1의 마지막
아.직.도. 인생
몇 년 전 겨울, 홀로 파리에서 한 달을 살았습니다.
'아몰랑'
조금은 고독해지고 싶어서였는지, 가족을 팽개치고 홀로 훌쩍 떠났습니다. 일부러 파리의 지붕밑 아주 춥고 허름한 다락방을 찾았습니다. 작은 매트리스 하나가 덩그러니 타일 바닥에 놓인 다락였습니다. 어쩌면 랭보를 꿈꾸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마흔..이라는 나이가 그처럼 힘든 줄 몰랐습니다. 생각해 보면 두 번 겪는 인생이 아니니, 어쩌면 그 걸어가는 길 하루 하루가 홀로 부딪히고 넘어지도 다시 일어나야 하는 것이었는지 모릅니다. 비로소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의 노랫말을 이해하게 되고 가슴에 와닿게 되는 때가 바로 그 마흔 즈음에였나 봅니다.
차가운 겨울 저녁 센강을 걷고, 생제르망 골목에서 물색없이 비를 맞고, 유혹의 밤 피갈 거리를 산책합니다. 그렇게 홀로 파리에 스며들며 짧지만 한 달 파리지앵이 되었습니다.
그날... 피카소를 보았습니다.
마레 지구에 있는 피카소 미술관에 들어가, 어지러운 그의 작품들을 보다, 한 그림 앞에 멈춰 섭니다. 그리 인상적인 그림이 아닌데 이상하게 끌립니다. 제목이 궁금합니다. 프랑스어로 적혀있는
nature morte
구글 번역앱을 엽니다.
아직도 인.생.
이게 뭐지? 천천히 보니, '스틸 라이프 still life, 정물'을 구글 번역기가 잠시 오역을 한 모양입니다. 이해합니다. 가끔 번역기도 마흔 즈음에처럼 지치고 힘든 때가 있을 테니 말이죠.
'아직도 인생...이라'
아! 참 멋진 말이구나!
한참을 생각하며 보고 있자니 참 아름답고 고운 단어입니다.
'아직도... 인생' 아직도! 인생!
살아갈 나날들이 많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고, 소중한 무언가를 꿈꾸고 그리워하고, 빛나게 꾸밀 아름답고 찬란한 삶이 아.직.도. 내 앞에 선물상자처럼 펼쳐져 있구나!
길을 따라 달리다 보면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흐리고 시린 날도 있겠지만 윈도우 바탕화면 같이 푸른 초원과 뭉개 뭉개 파란 하늘이 또다시 내게 다가올 것이라는 희망. 겨울의 파리가, 피카소가 나에게 준 선물입니다. 이래서 피카소의 그림이 그렇게 터무니없이 비쌌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르고 이제는 '50'이라는 낯선 숫자가 눈앞에 놓였습니다. 아직도 한참 세상을 어떻게 살지 모르는 철부지인데...'아니 벌써?'라는 생각에 또다시 사춘기 마흔마냥 기분은 일요일 오후 네시 반 같이 우울해집니다. 아! 세상 다 산 것처럼 슬프고 아린 날들입니다.
지난 주말 모처럼 시골집을 찾았습니다.
'내 나이쯤 되니 하루 하루 오후 햇살이 황금비 같더라. 멋지게 살아… 살아 보니 인생이란 게 참 짧아. 뭐 별거 없어… 그러니 늘 재미있고 멋있게 살아! 알았지?'
팔순 노모가.. 우리 엄마가 고운 소녀처럼 말을 건넵니다.
그렇습니다.
아직도 인생!
알았어 엄마! 쓸데없이 재미있게 살아볼게.
P.S.
오르막길… 내리막길… 광고회사의 일도 그렇습니다. 겨울바다입니다. 그렇게 보고 싶고 가고 싶은 바다지만 막상 찾아가면 겨울의 날카롭고 시린 찬바람에 잠깐 5분 설레이고 맙니다. 몇십억짜리 프로젝트를 수주한 기쁨은 바로 다음날 광고주를 만나는 순간 마법처럼 고통이 됩니다. 그래도 어쩌겠어요… 아직도… 광고인이니 말이죠. 쓸데없이 재미있게 살아볼 수밖에요…
이래서 내가 광고회사 힘들다 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