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펫시팅을 통해 책임감을 배우다
첫 번째로 머물게 된 지역은 모스 베일로, 시드니 공항에서 기차의 종점을 두 번이나 찍어야 나오는 작은 마을이다. 작은 마을인 만큼 그 지역에 있는 집들은 모두 주택이었고 내가 살게 된 집은 기차역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었다. 무거운 짐을 인 채로 계단을 오르내리며 힘겹게 도착한 집은 굉장히 예술적인 70년대 집처럼 꾸며져 있었다. - 시간이 지나고 알게 된 사실은 이 동네 대부분의 집이 집꾸에 진심이라는 것이다. - 집주인의 환대를 받으며 집에 들어갔고 그곳에는 앞으로 나와 6주를 함께할 보더 콜리가 있었다. 집주인은 펫시팅과 하우스시팅 관련해서 참고할 서류를 내게 건넸고 집을 소개해 준 뒤 그곳을 떠났다.
단 한 번도 동물을 키워 본 적 없던 내가 펫시팅 일을 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첫째, 내 프로필 사진이 동물과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 마리바에서 살 때 집주인이 강아지 한 마리와 살고 있었고 그때 그 친구와 친해지면서 찍은 것이다. - 이를 통해 본인은 동물과 잘 지내는 사람임을 어필할 수 있었다. 둘째, 앞으로의 계획이 오로지 쉼이라서 동물과 함께할 시간이 많다고 나를 소개했다. 보통 펫시팅을 맡기는 사람들은 펫시터가 자신의 반려동물과 하루의 대부분을 함께하길 바라기 때문에 이 역시 큰 이점이 된 듯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알리지 않은 가장 중요한 정보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나는 사실 동물을 무서워한다는 것이었다.
어려서부터 동물을 매우 무서워했다. 강아지와 고양이를 특히 무서워했는데 그 이유인즉슨 그들에게 물릴 것 같다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주변에 동물로부터 피해를 입은 사람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동물이 사람을 해치는 영상을 본 적도 없었지만 그들이 옆에 지나간다 하면 재빨리 멀찍이 떨어져 걸었다. 실상은 인간이 동물을 해치고 동물이야말로 인간을 무서워한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저지를 수 있는 무례였다. 그러다 호주에 왔고, 거리 곳곳에서 산책 나온 강아지들을 밖에 있는 매 순간 보게 됐다. 그들은 결코 짖는 법이 없었고, 매우 상냥하게 나에게 다가와 애교를 부렸다. 그런 상황에 자주 놓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동물이 이전만큼 무섭지는 않았다. 동물을 직접, 그것도 혼자 키우는 것은 완전히 다른 분야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무료로 장기 투숙을 할 수 있는 일을 구하고 있었고 펫시팅이 그러한 목적에 완전히 부합하는 일이라는 것도 모르지 않았다.
첫째 날 저녁, 그제서야 이제부터 내가 직접 동물을 혼자서 키워야 한다는 것이 실감됐고 그것은 내가 생각 이상의 부담감을 느끼게 했다. 분리 불안이 있는 강아지였기에 이전까지 지켜 오던 루틴을 펫시팅을 하면서도 따를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감도 들었다. 그때 생각의 전환을 일으켜 준 것은 이번에도 엄마의 조언이었다.
“집주인이 그 일을 네게 맡긴 건 오로지 강아지가 목적이었기 때문이야. 그럼 거기서 초점을 둬야 할 건 강아지겠지. 너도 강아지도 서로에게 적응할 시간을 가져야 해. 모든 순간을 강아지에게 맞춰야 된다는 뜻이야. 강아지 때문에 그곳에 간 건데 포커스를 정확히 맞추지 않아서 더 부담이 되는 거야. 네가 해야 할 일을 정확히 알고 있고 그것을 이행하기만 한다면 불안할 것도 없고 강아지와 함께하는 시간이 금방 갈 거야.
책임감. 앞으로 네가 배워야 할 것은 책임감이야. 그곳에서의 시간은 네가 호주에서 마지막으로 배우는, 가장 중요한 ‘책임감’이라는 것을 배우는 시간이 될 거야. 그것도 처음부터 끝까지 너 혼자서 배우게 될 테지. 책임 안 지고 사는 인생은 없어. 어설프게 자기 자신을 책임지다 보니 상대를 책임지는 것도 어렵게 느껴지는 거야. 자기 자신을 완벽하게 책임질 수 있다면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어. 책임감을 특별히 의식하지 않고도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할 수 있거든. 그러니 편하게 생각해. 그게 널 책임감 있게 행동하게 만들 테니까.”
엄마와의 통화 이후 앞으로의 할 일이 명확해졌다. 강아지의 일상 루틴에 맞춰 생활하는 것. 그때 내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단 하나, 강아지가 주인 없이도 나의 도움으로 하여금 잘 지내는 것이었다. 강아지를 돌봐 본 경험이 없던 나는 강아지가 한밤중에 깨서 침대에 오줌을 누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있었는데, 며칠이 지나자 그것이 쓸데없는 걱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강아지에게는 나보다 구체적인 일상 루틴이 있었는데, 오후 6시쯤 저녁을 먹고 오후 10시 즈음 마당에 나가서 볼일을 보게 하는 것으로 새벽에 일어나는 일을 예방했다. 그러나 첫째 날 밤에 그걸 알 길이 없던 나는 몇 시간 단위로 자다 일어나서 강아지의 상태를 살폈다.
처음으로 강아지와 아침부터 밤을 함께하는 둘째 날부터 우리는 빠르게 친해졌다. 함께 산책을 나가고, 밥을 먹고, 놀다가, 같이 잠을 잤다. 그러면서 강아지가 한 번 산책할 때마다 배변을 얼마큼 하는지, 그 모양은 주로 어떠한지, 달릴 때 속도는 어떻고 어떤 시점부터 헥헥거리는지 등 그의 특징에 대해 잘 알게 됐다. 산책을 나가기 위해 문 밖으로 나가는 순간부터 통제가 잘 안 된다는 것 - 따라서 간식을 자주 주며 이름을 부를 때마다 나에게 집중시킬 수 있게 하는 것, 집에 혼자 있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니 나 혼자 외출은 자제할 것과 같은 규칙도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 때마다 하나둘씩 생겼다. 강아지는 내가 샤워하고 있을 때 종종 내 방 침대에 올라가 나를 기다렸고, 오전 8시가 되면 언제나 나보다 먼저 일어나 나를 깨웠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소중한 친구가 되어 가고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나 혼자만의 시간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강아지 역시 나와 상호 작용하는 개체였으므로 꾸준히 관심을 주고 소통을 해야 했는데 24시간 동안 그런 존재와 함께하는 것은 처음이라 그 부분은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내가 밖에 나갈 때마다 짖는 강아지의 소리에 마음이 아파 결국 집으로 돌아오거나 빠르게 일 처리를 하고 다시 집으로 달려가고는 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내 개인의 시간이 절실히 필요해졌고 결국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누구도 계속 집에만 있을 순 없다는 사실을. 장을 본다든지 동네를 구경한다든지 영화를 본다든지 하는 것들은 오로지 밖에서만 이루어졌고 내겐 그러한 시간들이 반드시 있어야 했다. 애초에 집주인들도 나를 위해 동네에서 구경할 곳, 기차 타고 가서 볼 만한 것들을 리스트로 만들어 줬었는데 강아지를 키우는 것이 처음이다 보니 균형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몰랐다. 다행인 것은 내 시간을 충분히 가지면서도 강아지의 곁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분명하게 깨닫게 됐다.
이후로는 대체로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강아지의 일상 루틴에 맞춘 내 일상 루틴을 만들어서 그대로 잘 따른 덕분이었다. - 참고로 나는 해야 할 일과 루틴이 없으면 안 되는 사람이다. - 점심이나 저녁에는 자주 해 먹는 음식뿐만 아니라 브루스게타, 스테이크, 오므라이스같이 처음 도전하는 음식들도 종종 만들어 먹었고 정 당기는 음식이 없을 때는 베이킹을 시작해서 스콘을 만들어 먹었다. 가끔 친한 친구들을 초대해 하룻밤씩 보내고 가게 하기도 했는데, - 시드니에서 거의 기차 여행을 하고 와 준 고마운 친구들이다. - 개인적으로는 글쓰기와 재테크 공부를 시작해서 꾸준히 입력과 산출이 내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했다. 영화와 드라마, 책 감상도 쉬지 않고 했고 운동도 빈도수를 높여 자주 하려고 노력했다.
강아지와 함께한 지 3주가 되었을 무렵 8월의 일정이 모두 일찍이 확정됐다. 펫시팅 일을 구했던 사이트에서 현재 하고 있는 일이 끝나고 넘어갈 곳을 구하고 있었는데 금방 새 일을 구했고 때마침 젤라또샵 슈퍼바이저의 지인으로부터 내게 8월 중순부터 말까지 펫시팅 일을 맡기고 싶다는 연락도 받았었다. 한 번 경력을 쌓았다 보니 다음 일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고 예상치 못했던 기회까지 온 것이었다. 타이밍 좋게도 내가 구한 새 일이 시작하고 끝나는 날이 현재 하고 있고 이후에 맡을 일 앞뒤로 이어져 있어서 기간도 완벽했다. 세상이 세컨 비자로 내 속을 많이 썩인 것이 미안했던 걸까? 갑자기 모든 일이 놀라울 만큼 술술 풀리기 시작했다.
8월 초, 보더 콜리와의 이별을 마무리하고 다음 집으로 향했다. 다음 집은 강아지와 고양이가 한 마리씩 사는 집으로 블루마운틴보다 훨씬 더 들어가야 하는 오렌지에 위치해 있었다. 그리하여 장장 8시간의 기차 여행이 시작되었다. 나는 어딘가로 떠나는 여정을 무척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움직이는 이동 수단 안에서 오로지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는 등 감상에만 온전히 집중해도 괜찮은 유일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당시에 읽고 있던 책은 <칵테일, 러브, 좀비>로 기차에서 완독하고 새 집에 도착하기 전에 서둘러 독후감까지 작성해 올렸다.
이번에 맡게 된 강아지는 리트리버로 사람을 무척 좋아해서 나를 매우 반겨 주었다. 고양이는 아직 키워 본 적이 없어 혹 나를 싫어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있었는데 다행히도 그것은 기우로 밝혀졌다. 집주인이 떠나고 나서 그가 직접 내게로 올 때까지 소파에 가만히 앉아 그를 기다렸다. 어디엔가 숨어 있던 고양이는 리트리버와 놀고 있는 내게 천천히 다가왔고 내 발의 냄새를 먼저 맡은 뒤 리트리버가 곁을 내어 주지 않는 것을 보고 내가 아까까지 앉아 있던 방석으로 향해 내가 남긴 냄새를 맡았다. 그러고는 내게 돌아와 내 몸에 자신의 몸을 부비기 시작했다. 그때였던 것 같다. 고양이에 대한 사랑이 움트기 시작한 것이.
그들과의 시간은 오직 8일밖에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함께하는 동안 최대한 우리들의 시간으로 가득 채우려고 노력했다. 둘 다 나를 무척 좋아해 주어서 셋이서 함께 앉아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동안 나는 영화를 보거나 글을 쓰면서 그들 곁을 지켰다. 호주의 겨울, 정확히는 NSW주 내륙 지역의 겨울은 한국만큼은 아니어도 호주의 다른 지역에 비해 굉장히 추워서 결국 그들과 함께하는 마지막쯤에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지난해 10월에 몸살감기에 걸린 이후 처음으로 아픈 것과 별개로 떠나는 날을 이틀 남겨 두고 몸이 안 좋아진 거라서 걱정이 많이 됐다. 다음으로 맡게 될 집은 시드니에 있는 켄싱턴에 위치해 있어서 전만큼은 아니어도 여전히 5시간 동안 기차를 타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리바에서부터 습관이 된 뜨거운 물 마시기를 계속하고 틈 날 때마다 눈을 붙인 덕분인지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기차 타기 전의 몸 상태는 거의 괜찮아진 듯했다.
처음 펫시팅을 하게 되었을 때는 내가 과연 한 생명을 책임질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일을 하지 않으면서 최대한 돈을 아끼기 위한 수단으로 이 일을 선택한 것이었지만 그 대가를 치르기에 내게 마땅한 능력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동물도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고, 그들이 사람이 주는 것보다 더 큰 애정을 사람에게 준다는 것을 깨닫고는 생명을 책임지는 것에 부담을 느끼지 않게 됐다. 그저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고, 꾸준히 관심을 보여 주는 것이면 충분했다. 누군가를 대신하는 일이라고 해서 꼭 나 자신까지 없애 가며 할 필요도 없고 그저 나로서 존재하며 그들을 사랑해 줘도 괜찮았다. 책임진다는 것은 그런 일이었다. 내가 맡은 일을 내 방식대로 잘해 내는 것. 생각보다 매우 단순하게 작용하는 개념이었다.
마지막으로 맡게 될 집은 치와와 두 마리가 살고 있는 집으로, 다름 아닌 내가 가장 사랑하는 도시 시드니 중심부에 위치한 켄싱턴에 있었다. 그 말인즉슨, 나를 호주에 머물게 만든 모든 것에게로 마침내 돌아간다는 얘기였다. 시드니를 떠났던 날로부터 6개월이 지나, 드디어, 다시, 그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