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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레스트 Oct 26. 2024

마침내 축제의 막이 내리다

제11장, 호주에서의 마지막 한 달, 화려한 이별

처음 펫시팅을 맡았을 때 모스 베일로 가기 위해서 반드시 시드니 공항을 거쳐야 했다. 그 다음 펫시팅을 위해 오렌지로 향할 때도 남동쪽에서 북서쪽으로 가는 것이었기에 그 사이에 있는 시드니의 중심 센트럴 기차역을 꼭 들러야 했다. 그때마다 잠깐이었지만 나의 도시에 돌아왔다는 사실에 적잖이 들떴었다. 그러나 완전히 시드니로 돌아오는 것은 이전과 차원이 다른 감격을 주었다. 시드니를 떠난 순간부터 돌아오는 날까지 가장 바라왔던 일이 마침내 이루어진 것이다. 다시 말해, ‘시드니에 내가 돌아왔다’는 그 어느 때보다 파란만장했던 6개월의 여정을 지나, 나를 가장 나로 있게 만드는 곳,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드는 사람들이 어우러져 있는 나의 도시 시드니로의 황홀한 귀환을 의미했다.


센트럴 역 근처에서 집주인의 차를 타고 켄싱턴으로 향하던 그날 밤, 나는 웃음이 자꾸만 새어 나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고작 6개월이 지난 것뿐이었으므로 크게 달라질 것이 없는 게 당연했지만 그럼에도 내가 떠날 때와 똑같은 풍경을 보여 주는 시드니가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시드니 기차역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그룹이 앞뒤로 지나가고,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사람들과 함께 횡단보도를 건너며, 어디에선가 소리를 질러 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까지 모든 것이 여전했다. 내가 정말 시드니에 돌아왔구나. 그 느낌을 확실하게 각인시키는 그 모든 상황에 행복감을 느꼈다.


이번으로 벌써 3번째 펫시팅이었으므로 앞으로 어떤 생활이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집이 그렇게까지 고품격의 집일 줄은 이번에도 예상하지 못했다. 첫 번째 집이 70년대 예술가의 집 같았다면 두 번째 집은 호텔처럼 꾸며 놓은 에어비언비 같았고, 세 번째 집은 이전 두 집이 House였던 것과 달리 Flat이었는데 가장 높은 층의 건물로 무려 시드니의 전경을 볼 수 있는 테라스 가든이 있었다. 펫시팅을 시작하고부터 계속해서 근사한 집에서 나 혼자 살게 됐는데 호주를 떠나기 전까지 이 생활을 누릴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은 과연 진실이었다.


이전 펫시팅과 차이가 있다면 강아지들이 초반에 나를 매우 경계했다는 것인데, 치와와 특성이 본디 그러하다는 것을 알고 난 후에는 그저 가만히 그들 곁을 지키는 것으로 그들에게 내가 가까이 있어도 괜찮다는 사람임을 인식시켰다. 나를 향해 열성을 다해 짖던 강아지들은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내게 다가왔고 어느 순간부터는 내 손길을 받기 위해 스스로 몸을 뒤집었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치와와들과 빠르게 유대감을 형성했고 그리하여 마지막 펫시팅 역시 그곳을 떠날 때까지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무엇보다 다행이었던 것은 내가 마지막으로 머무는 곳이 시드니 시티에 있는 켄싱턴이었다는 것이다. 그 말인즉슨 그토록 보고 싶었던 친구들을 다시 볼 수 있다는 뜻이고, 그리웠던 장소들을 언제고 다시 갈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던 나는 시드니로 돌아온 첫날 밤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짐을 대강 푼 뒤 만나야 되는 모든 이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어떻게 지내냐고, 내가 시드니에 돌아왔다고, 시간 되는 날 알려 달라고, 곧 보자고. 귀국하기 전주에 4박 5일 동안 친구와 타즈매니아 여행을 다녀올 예정이어서 시드니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은 고작 3주밖에 되지 않았으므로 보고 싶던 사람들을 만나는 것으로 매일 알차게 보낼 계획이었다. 문제는 그들을 만날 생각에, 그러니까 오랜만에 영어로 사람들과 구구절절 얘기할 생각에 너무 설레서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펫시팅을 하는 동안 주로 집에만 있어서 영어를 쓸 일이 없었고 그것이 괴로워 집에 있는 동안 기존에 만들어 두었던 영어 공부 루틴을 따르는 것뿐만 아니라 가장 좋아하는 영국 시트콤 <미란다>와 <마이 매드 팻 다이어리>를 연일 시청하며 영어에 대한 갈증을 채웠다. 그리고 마침내 영어를 다시 쓸 상황이 됐을 때, 내 머릿속은 영어로 가득 채워져 도리어 갈증이 더 심해졌다.


그때 결심했다. 내 일상이 담긴 영어 컨텐츠를 만들어야겠다고. 또한 호주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영상으로 기록해 두면 한국에 돌아가서도 아쉬움이 덜할 것 같았다. 그리하여 시드니로 돌아오고 첫 번째 아침을 맞이한 날부터 호주를 떠나는 날까지 매일 영상을 찍고, 편집하고, 직접 쓴 영어 대본을 녹음해 올렸다. 릴스가 목적이었기 때문에 영상 찍는 것에 심혈을 기울일 필요는 없었다. 순간순간 짧게 영상을 찍고, 이후에 편집한 다음 그날 있었던 일들에 대해 영어로 이야기하고 그 내용과 어울리는 음악을 영상에 덧입혀서 올리면 끝이었다. 앞으로의 시간은 정말 모든 순간 알차게 보내리라는 굳은 다짐을 했었기에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나의 일상을 영어로 가득찬 영상에 담아 업로드했다. - 덕분에 나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언제든 호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영상에 담긴 내 일상들을 하나같이 모두 색달랐는데, 그 이유인즉슨 거의 매일 다른 친구들을 만나고 매일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예전에 같은 집에서 살았던 친구, 같은 직장에서 일했던 친구, 지인의 지인으로 만나 친해진 친구, 어쩌다 알게 된 친구 등 정말 이곳저곳에서 연을 맺었던 사람들과 꼭 한 번씩 다시 만나 우리가 이전에 놀던 방식으로 오랜만에 추억을 쌓았다. 그중 가장 친한 친구였던 J는 피지에서 나처럼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호주에 온 친구로 호주에서의 영주권 취득을 준비하고 있었다. J와는 호주에서 두 번째로 머물렀던 호스텔의 하우스키퍼, 게스트 사이로 알게 됐었는데, 마주치면 마주칠수록 우리는 서로 잘 통함을 느끼고 급속도로 친해졌다. 가장 먼저 마음을 연 친구인 만큼 J는 나의 가장 힘든 시기부터 가장 황홀한 시기까지 모두 함께했다. 따라서 친구들 중에서 J와 함께한 추억이 가장 많고, 시드니로 돌아오자마자 만난 친구도 역시 그녀였다.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유치하게 행동했고, 마지막까지 성숙하게 서로를 위했다.


가장 친구처럼 지냈던 동료들이 있는 다이닝 카페에도 오랜만에 들렀다. 보스와 동료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이왕 들른 거 일도 좀 도와 주고, 얼결에 블루베리 베이글과 라떼도 얻어 먹었다. 처음으로 시드니에 뿌리를 내리게 해 주었던 젤라또샵의 각 지점에도 들러 그간 보고 싶었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내가 가장 사랑했던 우리 가게의 피스타치오맛 젤라또도 한 컵 받아서 나왔다. 지인 덕분에 터치럭비 경기에도 참여해 보고, 때마침 전 직장 동료의 생일 파티가 열려 함께 일했던 친구들과 오랜만에 단체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정말이지, 매일매일이 즐겁고 내일이 기대되는 하루의 연속이었다.


오페라 하우스, 센테니얼 파크, 본다이 비치 등 여러 관광 명소까지 쉬지 않고 집에서 뛰어간 덕분에 논스탑 6K 러닝이 일상이 되었다. 그 영향으로 타운홀에서 집으로 돌아갈 때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뛰어 갈 수 있게 되었고 귀국하기 이틀 전, 그러니까 타즈매니아에서 시드니로 돌아온 날 저녁에는 무려 2시간을 쉬지 않고 뛰어서 15K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삶에 대한 긍정,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한 행복감이 만들어 내는 에너지를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어서 최대한 러닝으로 풀어내려고 했던 것 같다. - 한국에 돌아와서도 인생에 대해 벅차오르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을 때는 종종 러닝을 하곤 한다.


시간이 흘러 마침내 나는 타즈매니아로 떠나게 되었고, 이 여행은 호주에 와서 처음으로 정착해서 살았던 하우스에서 한 달이 좀 넘는 시간 동안 같이 살기도 했고 내가 모스 베일에 있을 때 우리 집에서 하룻밤 자고 가기 위해 시드니에서 달려 와 주었던 일본 친구와 함께했다. 보통 내 친구들 중에서 나보다 외향적인 사람을 찾기 드문데 H는 나만큼, 어쩔 때는 나보다 외향적인 사람이어서 그녀와 함께 있을 때 만들어지는 시너지는 전에 단 한 번도 가져 본 적 없던, 그렇기에 매우 특별한 것이었다. 모스 베일에서 함께하던 날 우리는 이 여행의 모든 것을 다 계획했는데 여행이 늘 그렇듯 어떤 것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고 또 어떤 것은 예상에 꼭 맞게 흘러갔다.


그중에서 가장 예상치 못했던 것은 날씨였다. 타즈매니아에 도착한 첫째 날, 겨울의 타즈매니아는 엄청난 바람과 비를 몰고 왔지만 다행이게도 엄청 춥진 않았다. 그러나 3일째 되던 날 완전히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났다. 그 전날, 운전을 할 줄 아는 H는 차를 렌트해 크래들 마운틴으로 향했고 오후 6시가 좀 넘은 시각 우리는 마침내 숙소에 도착했다. 짐을 풀고 저녁을 먹은 뒤 둘 다 까무룩 잠에 들었는데 아침에 온 세상이 하얗게 물들어 있는 것을 보고 잠이 확 달아났다. 분명 어제 눈송이 하나 못 봤는데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우리는 잠옷 차림으로 급하게 밖으로 나갔다.


문제는 너무 많은 눈이 내렸다는 것이었다. 눈으로 덮인 숲속의 오두막••• 낭만 있고 좋았다. 좋은데, 폭설로 인해 계획했던 하이킹이 모두 취소된 것에 대해서는 벙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여행의 묘미였고, 우리는 변수를 이벤트처럼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밖으로 나가서 우리들이 웃기고 아름답게 담긴 사진을 여러 장 찍었고 차를 타고 나가서 근처 산책로를 거닐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던 중 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눈앞에서 웜뱃이 풀을 뜯어 먹고 있는 것이었다! 나의 경우 동물에 크게 관심이 없었지만 H는 동물 애호가였기 때문에 이 여행을 시작한 순간부터 그렇게 웜뱃을 보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었다. - 웜뱃은 타즈매니아에서만 볼 수 있는 동물이기에 그녀가 웜뱃과의 만남을 더욱 바란 것도 있었다. - 그런데 정말로 웜뱃을 보게 된 것이다!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소리를 질렀고 웜뱃에게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 그의 모습을 구경했다.


집으로 돌아오던 길 도로가 얼어 모든 차가 정체되는 상황에 처했지만 다행히 관계자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다음 날 우리는 예정대로 타즈매니아의 수도인 호버트를 지나 South Arm에 있는 에어비앤비에 도착했고 대망의 마지막 밤을 장식할 우리만의 파티를 열었다. H의 아이디어로 하여금 각자 드레스를 가지고 와서 춤 추고 사진 찍는 것이 다였음에도 그날 밤은 타즈매니아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되었다. 다양한 사진과 영상으로 우리의 순간을 기록하고 오로라를 기다리며 우리는 지난 4일 동안 우리가 얼마나 즐거운 시간을 함께했는지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결국 오로라는 못 보고 일출도 잠깐 보고 다시 잠들었지만 결론적으로 H와의 여행은 내 인생 최고의 여행이 되었다.


여행을 가기 전 펫시팅을 마무리지었으나 하우스시팅은 계속되었기에 시드니로 돌아와서도 여전히 켄싱턴에 머물렀다. 호주에서 마지막으로 보내는 날, 나는 말 그대로 아침부터 밤까지 시티를 돌아다녔다. 호주를 곧 떠난다는 것이 실감되지 않았고, 사랑하는 친구들을 앞으로 오랫동안 못 볼 것 역시 믿기지 않았지만, 그날이야말로 호주에서 보낸 날 중 더할 나위 없이 최고의 날이 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H가 일하는 카페에 들러 아침을 먹었고 여전히 첫사랑처럼 기억되는, 내가 첫 번째로 머물렀던 호스텔과 바로 그 앞에 있는 공원에 한 번씩 들러 추억을 환기했다. 이후에는 미리 알아둔 타투샵에 가서 양팔에 각각 내게 의미 있는 그림과 레터링을 새겼다. 사실 케언즈로 떠나기 전부터 타투를 받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당시 새기고 싶은 그림은 있었으나 타투를 받고 싶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을 뿐더러 타투 받을 시간이 좀처럼 안 나서 결국 나중으로 미뤘었다. 시드니에 돌아와서도 타투를 받을까 말까 했었는데 호주에서 타투를 받고 가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에 귀국하기 전날 당일 예약해서 받았다. 가방, 지갑 같은 것들은 호주에서 샀다 한들 언젠가 바래질 것이고 어쩌면 잃어 버릴지도 모르는데 나는 호주에서 살았던 순간을 내게 평생토록 상기시켜 줄 무언가가 꼭 필요했다. 타투는 그러한 나의 바람을 정확히 충족시켜 주었다. 늘 그렇듯 대가는 생각지 않고 간 탓에 타투 받는 고통을 배로 느낀 듯했지만 매우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받고 나서는 다음에 또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나의 인생은 늘 이 패턴으로 돌아간다.


타투를 받은 뒤엔 바로 내가 일했던 다이닝 카페로 향했고 내게 일하는 즐거움을 일깨워 준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고 시티로 돌아왔다. 시티에서는 H에게 줄 선물을 이곳저곳에서 고르고 편지지를 구입한 다음 H가 퇴근할 때까지 집에서 기다렸다. 물질적으로 마음을 표현할 줄 몰랐던 나에게 사랑을 이런 식으로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준 그녀에게 보답하고 싶었다. 우리는 그녀의 집 앞에서 재회했고 내가 가장 사랑했던 장소 오페라 하우스로 가서 마지막 날의 마지막 밤을 함께했다.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는 좀처럼 잠들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하루 종일 밖에서 걸어다닌 탓에 피로가 쌓일 대로 쌓였음에도 불구하고 내일 이 시간이면 이곳에 내가 없다는 것, 결코 끝날 것 같지 않았던 호주에서의 1년이 정말로 끝난다는 것을 쉬이 받아들일 수 없던 탓이었다. 그러나 다음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그간 손에 쥐고 있던 것들을 내려 놓을 줄도 알아야 했다. 나는 지난 1년을 처음부터 회고하기 시작했고, 그에 대한 감상을 글로 남겼다. 어째서인지 글을 다 써 갈 쯤에 갑자기 눈물이 터졌는데 그 눈물이 의미하는 바를 이제는 우는 순간 알았다.


그것은 지난 1년간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들을 이겨 내고, 이루고자 한 것들에 수없이 도전하며, 마침내 되고 싶은 사람이 된 나에게 보내는 찬사였다.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상황, 그 무엇도 잘해 내지 못하는 나의 모습, 노력해도 얻어지지 않는 것들에 대해 굴복하지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간 것. 그리하여 그 어느 때보다 ‘삶’으로 충만한 1년을 보낸 나 자신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이었다. 호주에 혼자 와서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일상에 얼마나 불안하고 두려웠던가. 모든 것이 안정적으로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잃어 얼마나 고통스러웠던가. 그럼에도 오늘을 살아내 내일로 건너가기를 반복하여 결국 얼마나 찬란한 삶을 얻어 냈는가.


호주에 온 지 3일째 되던 날 저녁에 본 불꽃놀이는 나만의 축제가 시작됨을 알렸고, 그 축제가 진행되는 동안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눈부시게 빛나는 순간 역시 많았다. 그 모든 순간이 쌓여 축제는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이제, 축제의 막이 내릴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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