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린 Sep 10. 2021

여름은 과일바구니

흔적 없이 사라지는 여름의 끝자락에서



여름의 기억 틈 사이에서 " 아무튼, 여름 "


올해 여름은 참으로 무더웠다. 더위가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모양새. 목 뒤에 햇볕이 깊게 닿으면 더위를 먹어 버리는 탓에 6,7월에는 거의 밖에 나가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9월이 되자마자 어디론가 도망치듯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더위와 여름의 모습이 아쉬웠다. 이런 모순적인 마음으로, 다 가버린 여름의 끝자락에, 여름에 대해 써본다.


나는 원래 여름을 좋아하지 않던 사람이었다. 나는 여름보다는 겨울, 복숭아보다는 딸기가 좋다고 외치던 사람이다.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 계절, 여름 과일은 참으로 많다. 수박 , 복숭아, 자두 등등. 우리 집은 어릴 때부터 과일이 가득한 집이었다. 과일이 떨어지면 불안해서 떨어지기도 전에 냉장고를 과일로 두둑이 채웠다. 과자 대신 과일을 먹고 자랐다. 그래서 지금도 과자를 입에 잘 대지 않는다. 내가 지금도 과일을 좋아하는 것은, 어릴 적 내가 과일을 많이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엄마 덕분이었다. 엄마는 모든 과일을 사랑했다. 특히 홍옥. 빨간 사과를 정말 좋아했는데 나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사과를 아주 좋아하는 편은 아니니까, 여름이 오면 엄마는 홍옥 대신 아오리 사과를 한 바구니 사와 껍질째 먹었다. 그러면서 가을에 나올 빨간 사과를 기다렸던 것 같다. 그렇게 나도 옆에 앉아 사과를 함께 먹곤 했다. 아오리 사과에서는 빨간 사과와 달리 풋향이 난다. 싱그러운 풀의 냄새. 익지 않은 사과의 냄새. 그래서 지금도 여름날 시장을 지나면 광주리 가득 담긴 아오리 사과를 보고 엄마 생각을 한다. 사 먹어 볼까? 싶은 생각도 하지만 지금은 집에서 나와 살고 있기도 하고 , 가난한 자취생의 사정과 좁은 냉장고 사정으로는 아오리 사과를 한가득 사 오는 것은 무리이다. 다 먹을 사람이 없으니까. 아오리 사과 말고도 여름엔 수박을 자주 사 먹었다. 수박은 껍질 처리가 아주 귀찮은 과일이라 수박을 사 오면 바로 반을 갈라 플라스틱 통에 차근차근 담아 두고 꺼내 먹고플 때마다 꺼내 먹곤 했다. 선풍기를 틀어 놓고 티브이를 보며 그 수박을 함께 먹으면 , 여름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여름을 좋아하지 않았다. 여름과일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풋풋한 향기, 풀 냄새들을 그다지 내 것이라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벌레를 아주 싫어하는 나는 여름이 오면 모기향과 에프킬라를 사다 두고, 그들이 내 곁에 오지 않길 바랬다. 어릴 적 나는 1층 빌라에 살았었는데, 집에 귀뚜라미가 자주 들어오곤 했었다. 밤이면 우는 귀뚜라미들의 소리가 내 귓 주변에서 들릴 때면. 얼른 달려가 불을 켜고 귀뚜라미가 어딨는지 찾곤 했다. 이런 기억들과 , 더위를 자주 먹는 내 몸. 땀이 자주 나는 내 몸의 합작으로 나는 여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올해, 여름은 싫다는 나의 생각이 조금은 옅어졌다. 6월. 나는 처음으로 대학교 도서관을 방문 했다. 도서관은 책이 너무도 많은 공간이다. 책의 물결 사이에서 헤엄치기보다는 휩쓸리기 좋은 공간. 그 책들 사이에서 나는 " 아무튼, 여름 "이라는 책을 발견하였다.  표지가 너무 귀여웠다. 하얀색 표지 가운데에 그려진 커다란 튤립이 너무 귀여웠고, 크레용으로 그린 듯한 그림도 마음에 들었다. 나는 책을 볼 때 표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 이 책에 마음이 동헀다. 그림이 "여름"이라는 단어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여름" 이 계절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여름이라는 단어는 왠지 청춘을 닮아 있으니까. 지나갔는지, 지금 지나가고 있는지, 아직 오지 않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이 청춘. 무언가에 빗대어 설명하게 되는 이 단어가 여름과 어울리면 커다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두근두근한 느낌, 학창 시절을 추억을 노래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난 항상 하복을 입은 아이들을 떠올릴 만큼이나 ,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빌려 집으로 오는 길. 나는 생각했다. " 여름에 대한 책이라니, 왜 여름 일까? " 하고 많은 것들 중에 여름이라니, 한편으로는 궁금했다. 누군가는 사랑해 머지않는 여름을 조금은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와 책을 읽어 내려갔다. 많은 내용이 생각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의 작가님은 겨울을 싫어하시는 분이었다. 싫어한다고 하는 것은 조금 과격한 표현일까? 겨울이 되면 축 늘어지는 성향을 가지셨다. 시원한 맥주를 여름에 마시는 것, 더위와 에너지를 느끼기 위해서 더운 나라를 찾아 떠나는 것, 여름과 함께 사랑이 시작되는 일, 책 가득히 여름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랑과 증오는 한 끗 차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사랑하는 무언가를 누군가는 아주 싫어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보통 닮아 있다. 나는 버섯을 싫어한다. 물컹한 식감이나, 그 냄새가 내게 썩 좋다고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버섯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 냄새와 식감을 좋아하여 버섯을 잘 먹곤 한다. 이렇듯 사랑하는 이유와 싫어하는 이유는 썩 닮아 있다. 여름의 사랑스러움은 여름이 싫은 이유 사이에 함께 피어 있었던 것이다.

아무도 설득하지 않고, 강요하지 않았지만 나는 조금.. 여름을 좋아하고 싶어졌다.


초당옥수수를 주문하여 사다 먹고, 본가에도 조금 보내었다. 나는 옥수수가 여름 과일이라는 것을 올해 처음 알았다. 초당 옥수수는 이름처럼 엄청나게 달았다. 풋향이 엄청 센 옥수수, 예전이라면 싫어했을 듯한 이 향기와 맛도. 여름의 맛이라고 생각하니 괜찮았다.  엄마는 내가 내려오기전에 미리 초당옥수수를 먹어 보고는 내가 싫어할 맛이라며 이 옥수수를 누가 다 먹나 걱정 하셨다. 그러나 생각보다 잘 먹는 내 모습에 다행이라고 했다. 조금 신기해 하셨던 것 같다. 그래도 결국 초당 옥수수는 조금 남아 냉동실 한켠을 차지했다. 5개에 15000원 하는 초당옥수수, 내년엔 조금 덜 시켜야 할것 같다. 엄마는 이 옥수수는 너무 달다며, 본인은 찰 옥수수가 더 좋다고 하셨다. 예전부터 여름이 되면 , 찰옥수수를 사러 1시간의 여정을 떠나는 엄마를 따라가곤 했다. 옥수수로 가득한 고성 거리,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옥수수가 한가득이었다. 비가와도, 해가 쨍쨍해도 항상 옥수수가 있었다. 올해 여름, 하루는 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이었다. 통영으로 가는길, 옥수수를 사고 싶다는 엄마를 따라 고성을 들러가게 되었다. 나는 조수석에 앉아 " 이렇게 굳은 날에도 옥수수를 팔아 ? " 하며, 옥수수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 한참을 말했다. 하지만 엄마는 아니라고 하시며 일단 가보자는 말을 하셨다. 비가 억수 같이 쏟아 지는데, 그 빗줄기 사이로 옥수수를 파시는 분들이 한 가득이었다. 옥수수 맛도 가게 마다 다 다르다며, 맑은 날에는 그 가게를 찾아가 사기도 한다고 하셨다. 하지만 우리는 이 날 맨 첫줄에서 혼자 옥수수를 파시는 청년 분께 옥수수를 샀다. 비가 너무 많이 오기도 했고, 그냥 그러고 싶어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옥수수를 사서 먹으며 , 비와 옥수수는 상관이 없나보다 - 하고 이야기 하는데 , 엄마는 비가 오면 당일은 장사를 하여도 , 다음날은 수확을 하지 못해 장사를 못하시지 않을까 하고 넌지시 이야기 하셨다.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통영으로 향헀다.


생각해보면 여름을 멀리할 이유는 없었는데, 올해 여름을 사랑하자는 노력을 하며 . 조금 즐거웠다. 누군가를 사랑한 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무언가를 싫어하는 데에도 많은 힘이 드니까. 그 힘을 빼고 사랑으로 채운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즐거웠다.


여전히 덥고, 땀은 나며. 벌레는 많지만, 이 모든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자 마음 먹으니, 여름의 행복은 곳곳에 있었다. 그 중의 하나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은 딸기와 귤인데, 이 사이에 복숭아가 추가 되었다. 복숭아가 원래 이렇게 맛이 있었나 ? 라는 생각을 할 만큼 , 복숭아가 맛있는 것이다 ! 특히 8월에 나는 황도는 너무 맛이 좋아서 . 예약을 해다가 사다먹고, 보이면 사오는 행동을 반복했다. 나는 그 맛을 감동의 맛이라고 불렀는데. 그 말이 너무 웃겼는지 나와 함께 사는 친구는 그 말을 듣고 한참을 웃었다. 아직 복숭아 이후로 감동의 맛은 발견 되지 않고 있다.


여름의 끝에서 여름을 추억하는 글을 쓰니 , 조금은 구질구질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지만. 한켠으로는 이런 기분이 즐겁다. 여름에 미련이 생긴 나, 앞으로도 많은 것들에 미련이 생기길 바라며. 내년의 여름을 기다려본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