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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린 Sep 21. 2021

시선의 끝에서 (2)

내 방의 주인님, 고양이 치치


생각보다 큰 몸집과 복 슬한 털, 사람의 손길을 피하지 않는 이 고양이가 신기했다.  외향적으로 아픈 곳이 없어 보였기에 다행이라는 생각과, 고양이가 나무뿌리와 초콜릿 껍질을 먹고 토한 것을 보며 집에서 유기한 고양이일까 라는 생각을 했다. 난생처음으로 집 밖에 나와 배가 고프니 그냥 아무거나 먹어버린 것 같았다. ( 어쩌면 길에 살던 고양이 일지 모르지만 털과 눈, 발까지 모든 곳이 깨끗하기도 했다. ) 이미 시간이 늦어버린 탓에 병원은 내일 아침 일찍 가기로 하고, 고양이를 받아 들었다.


약 2kg도 되지 않는 고양이가 왜 그리 무겁게 느껴졌는지, 생명의 온기 탓인지, 고양이를 실제로 마주한 나의 책임감의 무게였는지, 긴장한 상태로 우리 집으로 향했다. 차에서 내려 고양이를 우리 집에 데려갔을 때, 생각보다 고양이는 낯설어하지 않았다. ( 지금은 치치가 한 번의 이사를 겪은 상태인데 , 새로운 환경에 적응이 아주 빠르고 숨지도 않으며 유유자적 집을 둘러본다. 또한 새로운 사람이 와도 마중을 나가는 상냥한 야옹이다. ) 하루 종일 촉각을 곤두세운 채로 가게에 있다 조용한 집에 오니 좋아하는 듯했다.


함께 살 터이니 이름을 지어줘야겠다는 생각에, 어떤 이름을 지을까? 하다가. 마녀 배달부 키키라는 영화에 나오는 지지라는 고양이가 생각났다. 외향도 닮았지만 ( 색은 전혀 닮지 않았다 ) 말괄량이 소녀 같은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기에, 주인공인 키키와 고양이 지지의 중간 사이 느낌인 치치로 이름을 지었다. 동물은 이름을 닮는다는 말이 있으니, 치치라는 이름이 새침하고, 귀여워 딱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이름을 짓고, 치치의 밥과 화장실을 마련해 주었다. 하지만 앞전에 토한 것에 이어 계속 속이 안 좋았던 상태였는지 무언가를 먹거나 화장실을 가지는 않았다. 대신 나의 침대에 올라와 잠을 잤다. 아주 편안히.



보송한 털이 고양이의 숨에 따라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며 , 신기한 기분이었다. 내가 잠에 들려하자 치치는 옆구리에 다가와 함께 잠을 잤다. 함께 산지 1년이 지난 지금은 내 옆에서 자지 않는다. 몸집이 그때의 약 2-3배 만 해지기도 했지만 혼자 자는 것을 편해하는 편인 듯하다. 그래서 그때 생각을 하면 조금 마음이 짠하다. 이 작은 생명이 불안하여 내 곁에 와 잤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지나친 비약일지도 모르지만, 그냥 치치를 바라보고 있으면 그런 마음이 든다. 여하튼 , 나는 이렇게 치치와의 동거를 시작했다. 동물은 작은 아이를 키우는 것과 같아서 많은 사랑이 필요하다. 하지만 , 그들은 내게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준다. 어쩌면 내가 더 많은 것을 받을지도 모른다.



치치는 나의 다양한 마음을 책임지고 있다. 내 자작곡 중 " 연민에서 피어나는 마음 "이라는 곡이 있다. 데모 상태의 곡인데, 그 당시, 나는 사람을 깊이 알면서 그에게 느끼는 감정들 중 , 연민이 가장 강력하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동정심을 느끼는 순간 ( 나쁜 의미의 동정심은 아니다. ) 나는 그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싶어 지곤 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생에 걸쳐 조금씩 알게 되던 감정의 한 결들을 , 치치는 순식간에 한 가득 느끼게 했다. 사랑 안에서도 다양한 마음을, 1부터 10까지만 나눌 수 있던 나에게, 100까지를 주고, 걱정과 슬픔의 감정의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 모두를 가르쳐 주고, 때로는 화를 느끼게도 하고.. 치치가 싫어하는 것은 주고 싶지 않아서 , 그를 관찰하게 되기도 하고.. 이렇듯 섬세한 마음을 갖게 했다.




섬세한 마음.




그것은 어떤 마음인지, 나는 나를 돌아보고 돌보는 것에만 몰두하여 이 마음을 잘 알 수 없었다.

글을 쓰고 곡을 쓰고, 그것을 때로는 우울과 슬픔, 사랑을 담아 노래하면서도 나는 그저 내가 알고 있는 만큼의 마음만 노래하였던 것 같다. 그러나 나의 고양이, 내 방을 사뿐히 거니는 치치와 함께 하면서 나는 알 수 있었다. 커다란 마음을. 너를 오롯이 사랑하고 있고, 이 마음이 섬세한 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무언가를 소중하게 여기고 싶다는 작은 마음에서 시작해 피어나는 여러 마음의 갈래들.

네가 행복했으면, 아프지 않았으면,.. 오늘도 마주할 삶의 틈에서 고달프지 않았으면, 날이 맑았으면, 선선하여 네가 덥지도, 춥지도 않았으면, 집을 나가 있는 나를 기다리지 않았으면, 슬퍼하지 않았으면, 네가 아프지 않기를.  오래 살아남기를, 살아남기를. 누군가 시키지 않아도 바라고, 행하는 나의 행동들.


여러 번 나의 머리를 들락이는 너의 존재가 버겁기는커녕 더 생각하지 못해 애달픈 것을 너는 모를 테지만,

사실은 몰랐으면 한다. 그저 이 세상에서 너의 기쁨에만 몰두하여 그것을 쫒다가, 행복만 가지고 떠나갔으면 한다.  


나의 작은 방의 작은 존재, 하지만 커다란 고양이 치치. 오늘은 너를 만나지 못하지만, 집에 돌아가면 치치의 목덜미를 한가득 쓰다듬어 줘야지. 치치가 좋아하는 간식을 사 가야지. 네가 잠에 취해 나를 마중 나오지 않아도 그저 웃어야지, 섬세한 마음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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