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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린 Oct 03. 2021

쫌 쫌 따리 검은 물의 맛

향기가 더 사랑스러운, 나의 커피


쫌 쫌 따리 검은 물의 맛





세로로 긴 그 커피 바는 주방이 한눈에 들어오는 형식이었다. 공간에 정 붙이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일을 보러 어딘가에 갈 때 전날부터 한참을 검색하고 수소문하여 그 근방에 있는 좋은 카페를 찾아 놓고 그곳을 들리는 것을 큰 즐거움으로 삼았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 산지는 약 4년, 긴 시간 동안 가보지 않은 곳이 없고, 나의 취향은 꽤 까다로워 더 이상 가고 싶은 곳이 없었다. 또한 나는 집을 사랑하여 일이 생기지 않는 한, 시를 건너 도를 건너 새로운 재미를 찾으러 떠나는 일은 잘 없었기에 오랜만에 내 마음에 쏙 드는 공간을 찾은 것이 감동적이기 까지 했다.




  면에 가득한 LP 커다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공간과  어울려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2시간은 있을  있을  같았다. 음악 작업을 하다 보면 내가 하는 장르의 , 내가 참고하여 들어야 하는 , 유명한 , 요즘 인기인  . 일적으로 들어야 하는 곡이  많아 음악을 새로이 발견하여 얻는 즐거움을 느끼기가 힘들다. 물론 이제는 새로운 음악을 었을때 그 곡에서 얻는 오롯한 감동보다는 일적인 부분이 더 크게 들어온다. 그래서 ‘ 음악은 이곳이 ,  음악은 이곳이 참으로 좋고 감동적이다. '라는 감상에 지나지 않는 일이 많아 그런 듯하다. 하지만 나의 작은 , 그곳에서 벗어나 아늑한 커피 바에 앉아 그저 들려오는 노래들을 들으니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고 그냥 좋기만 했다. 그곳은 기계로 내린 커피가 아닌, 드립 커피만을 파는 곳이었는데 주방이 아주 가까이 있어 원두를 가는 소리, 커피의 냄새, 얼음을 컵에 담는 행위  모든 것을 눈으로 보고 들을  있었다. 아메리카노를 즐기는 나는 드립 커피와 머신으로 내리는 커피의 차이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여태까지 어느 가게를 가든 아메리카노가 있었기에 그냥 그 커피를 마셨던 것이다. 그러나 그 곳의 커피메뉴는 드립커피 뿐이었다. 그래서 이것을 마셔겠구나 하고 드립 커피를 주문하여 마셨다.  처음으로 마신 드립 커피가 나는  마음에 들었었나 보다.  이후로 드립 커피를 찾아다녔던 것을 보면, 인터넷에 핸드 드립 커피세트를 검색하여  것을 보면,  세트로 내려 마신 커피의 맛이 매번 달라 자꾸만 탐구하게 되는 것을 보면.




카페에서 약 2년간 알바를 해온 나는 부끄럽게도 커피에 대하여 잘 알지 못했다. 커피를 자주 마시며 이 정도면 커피를 좋아하는 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스스로 하곤 했으나 진심으로 커피를 알아보려 하니 내가 마시고 사랑하던 커피는 다 무엇이었나 싶은 마음이었다. 처음엔 커피세트가 도착하였다는 알림에 나는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는 즐거움. 또한 이제는 집에서 맛있는 커피를 먹을 수 있겠다는 행복에 젖어 당장 이것을 해 먹어 보아야지,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막상 꺼내 든 것은 무언가 복잡하고, 어떻게 하는지 잘 알지 못하니 두려웠다. 여러 맛을 보고 싶어 산 원두는 소비기한이 있어 이것을 2주, 넉넉히 는 3주 안에 소비하지 않으면 커피의 향이 다 날아가 맛이 없다고 하고. 드립 커피는 물의 온도. 물을 붓는 양, 물을 붓는 주전자의 높낮이 등.. 맛에 요인을 주는 것들이 너무도 많아 헷갈렸다. 함께 사는 친구와 유튜브의 도움을 받아 내린 커피는 너무 진해 물을 타서 먹어야 조금 나은 듯한 맛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맛이 나쁘지 않았는데, 처음 맛본 드립 커피의 맛과 달라서, 무언가를 참고해 만들어낸 커피라 괜스레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에 커피를 내리고 마시는 즐거움에서 멀어져 버렸던 것 같다. 그 이후로 나는 지금까지 며칠째 커피와의 투닥임 중이다. 처음에는 잘 되지 않아 몇 번을 버리고 울상이 되기도 하였지만, 내릴 때마다 맛이 다른 나의 커피를 그냥 인정하고 즐기기로 했다.



나는 성미가 까다로워 음식과 음료의 맛 또한 잘 가리지만 한편으로 조금은 쓰고, 싼 맛들 또한 그 맛들 만의 매력으로 삼아 잘 마시고 먹었다. 정성을 가득 담아 만든, 재료가 가득하여 맛난 떡볶이도 좋지만, 가끔은 편의점에 파는 MSG 맛 가득한 떡볶이를 먹고 싶어 하기도 하는 사람이었다. 전문성이라는 것은 참 어렵다. 무언가를 자꾸만 더 나아지게 하고 싶은 마음을 가진 자는 어쩌면 온전히 모든 맛과 이유를 즐기기에는 조금 힘들지도 모른다. 탄 맛이 나는 커피도, 향기로운 커피도, 너무 진해 한 입만 마셔도 오늘의 카페인 함량을 다 채운 듯하던 커피도 , 모든 커피를 사랑하던 나는 새로이 가진 드립 커피라는 취미에 취해 사랑하고 사랑하던 다양한 결의 커피들을 아니다, 틀렸다라 치부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냥 관두기로 했다. 물론 앞으로도 더 맛있는 커피를 내리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다양한 원두를 사고 유튜브를 참고하고 자문을 구하고 가끔은 인스타 광고로 뜬 커피 원데이 클래스를 보며 참가를 고민하겠지만 , 그냥저냥 어영부영한 나의 커피 맛도 사랑해 주기로 한 것이다.



물론 내가 조금 더 자라나 그 모든 것을 구현해 낼 수 있게 되면. 그 맛들을 골라 이 것은 이런 맛이, 저 것은 저런 맛이 있어 맛이 좋다며 너스레를 떨지도 모르지만, 당분간은 향기가 더 사랑스러운 나의 커피와 함께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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