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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린 Oct 07. 2021

도망치고 싶다.

나의 낯가림 속에서

오늘도 아침부터 학교를 다녀왔다. 코로나의 여파로 제대로 학교를 가지 않은지가 오래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쉬움보다는 화면만을 쳐다보는 수업이, 아무 곳에도 나가지 않아도 되는 이 생활이 편하고 익숙해졌었다.  당장 학교를 나가게 되었을 때 , 정말 나갈 수 있을까? 와 함께 느껴지는 감정은 설렘이 아니라 귀찮음이 더 컸고, 두려움의 모습도 조금 있었던 것 같다.


익숙했던 사람들과 익숙했던 공간에 가지 않은지가 약 1년,  그 사이에서 붕 떠있을 나를 예감한 것이다.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도 나는 쉽게 어색해 지곤 했다. 그저 알고 지내던 , 인사만 주고받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살을 비비고 얼굴을 맞대던 사람들에게도 나는 쉽게 낯을 가리게 되었다. 오래 알고 지냈다 하더라도 만난 지 1년이 넘어간 이들과 약속을 잡게 되면, 왠지 모를 긴장감과 두려움에 도망치고 싶어 졌다. 처음엔 그들을 보고 싶은 마음에 억지로라도 약속을 잡고 나가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몇 번을 체하고 소화제를 먹은 끝에 최소한의 관계만을 갖게 되었다. 사실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수두룩한 생일 축하를 받는 이들을 보면 아직 부럽다. 학창 시절의 나였다면 아마 나가지 못해 안달, 연락하지 못해 안달이었겠지만 삶 속에 해내고 책임져야 할 것들이 있는 나는.. 그런 것들이 조금 버겁다는 것을 인정했다.


개강하고 약 3-4주가 흐른 지금, 땀을 뻘뻘 흘리며 집을 돌아오는 일이 많다. 원래 아침 9시에 일어나 치치의 밥을 챙기고, 아침으로 뭘 먹을지 하고 생각하던 나는 개강과 동시에 사라졌다. 눈꺼풀이 어찌나 무거운지, 나의 양심은 참으로 얄랑하다. 다음날 들을 수업들의 시간을 체크하며 도움이 될 것 같아 꼭 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잠들어 하루쯤은 괜찮겠지 하며 다시 눈을 감는다. 그래도 모든 수업을 안 갈 순 없지 , 하며 학교에 가 자리에 앉으며 아는 사이인 이들과 조금의 대화와 웃음을 주고받곤 한다. 집안에 홀로 있을 때 느낀 새로움에 대한 목마름, 사실 이들로 인해 삶이 환기됨을 느낀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은 왜 이리 지쳐있는지 모르겠다. 오해받고 싶지 않기 때문일까? 나는 모든 이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생각을 한적은 없지만 미움받고 싶지 않다는 마음은 항상 가지고 있다. 작지만 커다란 바람이다.

사람을 알면 알수록, 가까워지면 가까워 지려 할수록 그 사람에 대해 잘 알게 됨과 동시에 작은 오해와 미움의 씨앗을 함께 가지게 된다. 그리고 사랑과 함께 커진다. 그 오해와 미움을 싸우고 이야기하고 나누며 깨고 지우고 부수며 우리의 사이는 견고해지겠지만, 나의 마음은 많은 이들과의 오해를 겪어 나가기엔 너무 여린 것이다.. 나는 슈퍼 쫄보와 같은 성정으로 저 멀리서 적당히 아는 이 ( 이름과 얼굴을 알지만 친하진 않고 마주 하였을 때 인사를 할지 말지 고민할 정도의 사이 )가 등장하였을 때 곁눈질 만으로 그들의 존재를 알아챈다. 약 100미터 밖에 있다고 해도 나는 그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곤 그를 마주할까 저 멀리 에둘러 가버리는 것이다. 그들이 싫은 것은 아닌데, ' 작은 스몰토크 정도는 나누고 싶긴 한데.. ' 이런저런 생각과 핑계를 동시에 생각하다 에라 모르겠다 하곤 휙 돌아 가버리곤 하는 것이다.  속으로는 친해지고 싶은 이들일지라도, 물론 겉으로도 친해지고 싶은 이들일지라도, 예정되지 않은 만남에 나는 쥐약이다.


알고 지내는 사람이 한 명 있다. 친하다고 하기엔 조금 옅은, 어쩌면 학교 동문으로서의 인연 정도인 사람이다. 친구의 집에 들렀다 일찍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집에 가서 내려먹을 드립 커피를 생각했다. 나는 차디찬 커피, 음료, 물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얼음을 사서 냉장고에 쟁여 놓곤 했는데 그 얼음이 똑 떨어졌다는 것을 떠올렸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있는 편의점에서 얼음을 사 가야지 했다. 편의점이 조금 남았을 즘, 그 편의점 안으로 쏙 들어가는 그 사람을 보았다. 나는 당황했다. 그게 뭐? 그냥 가서 인사하면 되지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앞서 말했듯.. 그대로 지나쳐 집으로 갔다. 슬펐다.. 얼음을 사지 못한 것이 그리고 이런 내가 안쓰럽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했다. 내일도 , 그 모레도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붕 뜨고, 쩔쩔매다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올 것이다. 최대한 티 내지 않으면서 집으로 돌아오겠지만 나는 도망치고 싶어 하는 사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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