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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린 Oct 12. 2021

메스꺼운 마음

메스꺼운 느낌 , 오늘의 하루는 이 단어에서 시작되어 이 단어에서 마무리되었다. 요즘은 어딘가 체한 것 같은 나날의 반복이다. 아무도 내게 해내라고 하지 않는데 나는 자꾸만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고 한다. 일을 사랑하는 나의 오랜 버릇이자 , 숙명 같은 것이다.

쉬어야 했다. 쉬어야만  체함이 내려갈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쉰다는  , 얼마나 좋은 일인가. 요즘같이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때엔 전기장판을 은은히 틀어놓는다. 실컷 자다 고양이의 부름에 따라 느지막이 일어난 나는 참치 캔을 따서 삼분의  등분을 한다. 그리고 고양이의 참치 그릇으로 정해진 그릇에 참치를 나누어 준다. 아무도 이것이 고양이의 그릇이라고 말하지 않았고 정하지 않았으나  모양새가 너무나 적합하여 나와 나의 룸메   자연스럽게  그릇에 밥을 주고 있다. 삼등분을 하여 밥을 주고 남은 참치는  밀봉하여 냉장고에 넣어두고 나는 캔을 먹는 고양이의 옆에 앉아  먹을 때까지 고양이를 기다리거나 ,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 너무 졸릴 때에는 방으로 먼저 들어가 창문을 열어준  다시 잠에  채비를 한다. 그러면 나의 고양이는 그런 나를 바라보다 마저 밥을 천천히 운다. 그리고 걸어와  침대 근처에 앉아  밑을 혀로 매만진다. 치치의 버릇이다. 그러고 창문 근처를 서성이다 자신이   있을 만한 자리를 탐색한다. 치치는 조심성이 많아 쉽게 뛰지 않는다. 가끔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나오라는 제스처를    이불을 고르게 펼쳐 준다. 그럼  위로 올라가  준비를 한다. 나는  옆에서 점프! 점프!!  외치고,  말들 사이에서 치치는 점프해 창문 위로 올라간다. 그것이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일이다.

우리 집 고양이는 입이 짧기에 여러 종류의 것들을 다양히 먹는다. 하루에 삼분의 일 습식 캔과 한 개의 츄르 , 가끔 건조 간식이나 사은품으로 딸려온 새로운 간식이 있으면 그것을 며칠에 나누어 먹고 하루의 할당량으로 정해진 건조 사료까지 야무지게 챙겨 먹는다. 그 모습을 하루 종일 곁에 누워 바라보며 밥을 먹고 책을 읽고 낮잠을 자고 고양이를 쓰다듬으면 얼마나 좋은지,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나는 자꾸만 자리에서 일어난다.

추운 바람의 영향도 있을 것이고, 졸업을 앞둔 삼 학년을 맡고 있다 보니 몰아치는 스케줄이 너무나 힘들기 때문일 수도 있다. 또한 그 사이에서도 살아남기 위하여 자꾸만 나의 곡과 음악생활에 관해 궁리하고 부탁하고 알아보는 것이 벅차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사이에서 나는 잘 참아왔던 허기를 다시금 느꼈다. 채워지지 않는 허기 , 무언가를 먹음으로써 해소되는 배고픔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나의 뱃속 깊은 곳에서 시작되는 이 허기는 외로움과 걱정, 스트레스를 먹고 자라난다. 나는 어릴 적부터 항상 통통 하여 말랐던 적이 없었다. 정상체중에 가까운 적은 몇 있었으나 마른 체중이 된 적이 없었다. 어렸을 땐 사랑이 고팠다. 내가 원하는 만큼 사랑 받는 다는 것은 꿈만 같은 일이었다. 사랑에 대한 애증으로 그 깊이는 점점 깊어졌고, 그 사랑을 채워줄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로부터 비롯된 허기가 자꾸만 음식을 불렀다. 나는 그것을 완벽히 착각하여 자주 폭식하곤 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음식을 사다가 한없이 먹었다. 그래도 배부르지 않았다. 음식으로 채울 수 없던 무언가 때문이었다. 그 마음은 꼭꼭 숨어 내가 무엇 때문에 슬퍼하는지 걱정하는지 숨고 싶어 지는지를 알 수 없게 했다. 그것이 짙어지기 전에 찾아내지 못하면 나는 그 허기를 오래 동안 앓았다.

올해 건강을 위하여 다이어트를 한지 약 5개월, 운동과 건강한 생활을 영위하며 잠시 잊혔던 허기가 돌아왔다.

아침부터 꽉 찬 스케줄 사이 허겁지겁 일들을 소화해 내며 나는 계속해서 배가 고팠다. 그와 동시에 속이 답답했다. 배가 고파 무언가를 먹으면 뱃속이 급하게 차올라 갑갑해지는 것이 요즘의 루틴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그 정도가 심했다. 늦은 점심까지 이어진 스케줄을 꾸역꾸역 소화해 낸 후 집에 돌아와 저녁을 차려 먹고 나니 속이 답답했다. 토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평소였으면 절대 게워내지 않았을 텐데 음식을 게워냈다. 도저히 참지 못할 메스꺼움이었다.

나는 배부름 뿐만 아니라 갑자기 홀로 선 기분이 들 때마다 메스꺼워졌다.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는지 모를 때. 불청객이 된 것만 같을 때. 원하지 않는 일을 해내야만 할 때. 서있는 자리가 어색함을 말할 때. 이렇듯 나는 시시때때로 메스꺼워졌다. 나의 몸이 나에게 적색 신호를 보내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실제로 게워 내는 일은 드물었다. 아프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는 일이었기에 아주 오랜만인 일이었다. 그 여파로 인하여 얼굴의 핏줄이 죄다 터지기 까지 했다.


음식을 죄다 게워 낸 후 양치를 하며 친구의 말을 떠올렸다. 역류성 식도염으로 인해 고생하는 친구의 이야기였다. 자신의 이가 잘 물러 충치가 많은 아이였는데, 식도염이 있다 보니 이가 더 잘 썩는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식도염과 충치가 무슨 상관이냐고 물었고, 역류성 식도염으로 인해 음식을 자주 게워내는데, 토 한 후 양치를 잘 해내지 않으면 역류한 위산으로 인하여 이가 썩는다는 말. 속을 게워낼 일이 잘 없어 나는 이 이야기를 한 귀로 듣고 넘겼었다. 우습게도 속을 비우는 순간부터 양치를 하는 끝까지 이 이야기만이 떠올랐다. 내 몸이 원하는 쉼을 주지 않으면서도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우습다 생각했다. 깨끗한 이를 가지고 한결 가벼워진 속으로 나는 낮잠에 들었다. 낮잠이라기엔 조금 늦은 시간이었으니 저녁잠이라 해야 할까. 아직까지는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라지 않는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살고 싶은 마음은 나를 일으키게 함으로 그 마음을 자꾸만 생각했다. 또한 내 옆에 누워있는 고양이를 생각했다. 사랑하는 것을 지키고픈 마음은 나를 강하게 하니까. 전화를 매일 잊지 않는 연인 또한 생각했다. 그를 생각하면 나의 마음은 약해진다. 친구와 크게 싸우고 집으로 향하는 길 웃는 엄마를 본 것처럼 눈물이 난다. 그래도 생각했다. 그의 따스한 온기를 떠올렸다. 내일이면 이 메스꺼움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어영부영 흘러간 오늘은 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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