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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린 Oct 16. 2021

혼잣말의 달인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는 이야기

내 곁에는 세상에서 가장 혼잣말을 잘하는 친구가 있다. 항상 말하지만 나는 쉽게 단언하지 않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 사실만은 정말로 허풍이 아닌 사실이다. 그녀가 가진 혼잣말의 존재를 알아채게 된 것은 그녀와 같이 살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누군가와 함께 살게 된 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인생에서 아주 큰일이 벌어지고 있고, 벌어질 예정이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크게는 그녀의 삶에 무슨 일이 벌어지든 기꺼이 함께 하며 작게는 늦은 밤, 세상에서 가장 리액션을 잘 받아주는 그녀와 지리멸렬한 이야기를 하다 동을 트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일이 빈번할 것이라는 뜻도 된다.  곧 졸업을 하며 그녀와 함께하는 삶으로부터 벗어나 혼자만의 삶으로 이사를 할 예정인 사람으로서 그녀와 함께 했던 기간은 꼭 과자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아이의 마음과 같았다고 생각된다. 앞으로 이 것이 내 삶 한켠을 차지 하게되겠구나 하는 마음. 그녀와의 시작은 그 마음과 같았다.


처음으로 슈퍼라는 곳에 갔을 때 마주한 형형색색의 과자들을 기억한다.나는 그 당시 조금 냉소적인 어린이였다. 과자를 보고 신나있던 것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 이 과자들을 언제 다 먹어본담 ' 하는 생각을 했다. 처음으로 엄마가 쥐어준 과자가 무엇이었는지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렴풋이 생각나는 모양새가 스윙칩이 었던 것 같다. 나는 아주 독실한 감자 옹호자로서, 구황작물 중 가장 사랑하는 것이 감자이다. 여기에 이어 좋아하는 음식 3위 중에 감자튀김이 들 정도로 감자를 사랑한다. 감자로 감자볶음을 한 것도 좋아하고 오븐에 넣고 올리브 오일과 후추를 조금 뿌려 노릇노릇 구워 먹는 것도 즐긴다. 또한 감자를 얇게 썰어 튀긴 후 소금을 솔솔 뿌려 진공포장을 한 감자칩도 너무너무 좋아한다. 현재 가장 좋아하는 과자는 눈을 감자 오리지널 맛과 포카칩 파란색이다.


우리 엄마는 내가 7살 때 잠시 편의점 장사를 한 적이 있다. 정확히 언제 그것을 시작했는지, 언제 그만두었는지와 같은 것보다는 그때 동생과 가게를 들락날락하며 여러 종류의 과자를 집어 먹었던 것만 기억에 남는다. 엄마가 바쁠땐 말없이 과자를 집어 가곤 했는데 한날은 손님이 내가 과자를 가져가는 것을 보고 엄마에게 나를 도둑으로 신고 한 적도 있다. 과자를 많이도 먹었지만 그중에서도 나와 동생의 최애 과자가 있다. 지금은 없어진 에그몽이라는 초콜릿 과자이다. 겉은 초콜릿으로 둘러 쌓여 있으나 그것을 다 갉아먹고 나면 안에 노란색 알이 나온다. 그 알을 까면 열 가지 종류의 장난감 중 하나를 얻을 수 있는데, 나와 동생은 그 과자를 엄청나게 자주 사 먹었다. 동생은 어릴 적 사탕과 초콜릿을 아주아주 좋아했다. 청포도 알사탕이 14개 든 봉지를 사서 하루 만에 다 먹어버려 엄마에게 혼난 적도 있고, 마트에서 세일하는 아이스크림을 열개씩 사서 냉장고에 넣어두면 며칠이 지나지 않아 그것을 다 동낼 만큼 단 것을 좋아했다. 그랬기 때문에 에그몽이라는 그 과자를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초콜릿 만으로도 좋은데 장난감까지 준다니! 그렇다면 나는 어땠을까. 동생과 함께 그 과자를 사는 것을 즐겼지만 사실 나는 초콜릿과 장난감엔 큰 관심이 없었다. 나는 단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까지도 내가 좋아하는 과자는 짠 과자뿐일 만큼 단 과자들에 대해서 박하다. 나는 그 당시 딸기와 수박을, 귤과 매실청을 사랑하는 어린아이였다. 동생을 부추겨 매일 그 과자를 사러 가면서도 겉에 쌓인 초콜릿은 동생을 줘버리곤 했고, 장난감이 나오면 집에 들고 가다가 친한 친구에게 홀랑 넘겨줘버렸다. 어릴 땐 내가 왜 그러는지 잘 알 수 없었지만, 나는 무언가를 산다는 행위를 사랑했던 게 아닌가 싶다. 지금까지도 남아있는 버릇 중 하나인데, 스트레스를 받으면 소비를 하고 싶은 욕구에 엄청나게 시달린다. 내가 다 먹지도 쓰지도 사용하지도 않을 것을 자꾸만 사고 싶어 한다. 보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을 욕구를 일으키기 위해 인스타를 켜고, 유튜브를 보고, 이거 그때 참 갖고 싶었었는데, 이거 참 먹고 싶었었지 하며 회상을 할 때도 있다. 그래도 사치를 하지는 않아 내가 살 수 있는 소소한 무언가 들을 사곤 한다. 비타 오백 하나라던가 , 마들렌 2개라던가, 과자 3 봉지라던가. 왠지는 모르겠지만 자꾸만 간식거리들을 사 오게 된다. 사 와봤자 한입. 혹은 먹지 않고 냉장고에 두거나 , 상온 보관하고 말 것들을 자꾸만 사 오게 된다. 대부분은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준다. 처음부터 선물을 하려고 사는 간식들도 있고, 내가 먹으려다 생각이 나서 건네는 음식들도 있다.


사랑을 주고 싶어 하는 것과 받고 싶어 하는 것. 둘 다 애정 결핍의 요소라고 들은 적이 있다. 그렇다면 나의 사랑은 주는 것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겠지. 환경을 생각해서도, 내 지갑을 생각해서도 이 버릇을 줄여보려 노력한지 오래지만 요즘은 사라지게, 또한 고치려 했던 버릇들을 어느정도는 그냥 두기로 했다. 사랑을 주고 바라는 것이 이미 나의 일부분이 되어 버린 것 같아서. 나의 노래에도, 나의 목소리에도, 나의 방 모든 곳곳에 사랑의 자욱들이 도사리고 있다. 또한 나의 버릇에도 , 나의 말투에도 그것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가 나의 넘치는 애정을 부담 스러워 하지 않으며 오히려 좋게 생각한다. 음악을 하며, 세상을 살아가며 말 한마디 건네기 어려운 지금. 이미 여러므로 가난해진 삶 속에서 사랑만은 모자란 것보다 넘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사랑하는 고양이와 내 작은 방을 가득 채운 소품들 모두 나의 애정에서 비롯 되었으니. 나는 어릴 적만큼 미욱하지 않다. 이제는 나를 깨어버릴 만큼 커다랗게 사랑을 키우지 않을 수 있다. 바오밥나무처럼만 크지 않는다면 괜찮을 것 같아 나는 이 버릇을 잘 키워보기로 했다. 물과 햇살을 잘 주고, 가지치기를 잘 해내면 나의 안에 있는 풍경들 중 가장 아름답게 자라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혼잣말의 달인인 내 친구를 이야기하다 이야기가 여기까지 흘러왔다. 글을 쓴다는 것은 혼잣말과 같다. 듣는 이가 있으면 내가 이야기를 하다 멀리 가버릴 때 나를 잡아 줄 수 있으니 정해진 결론에서 이야기를 마무리 지을 수 있지만, 글을 쓰는 것은 나 혼자 하는 일이니 신나게 이야기하다 정신 차려보면 어디로 흘러가 있는지 모를 때가 있다. 그녀는 현재 직장에 다니고 있어 아침만을 집에서 먹는다. 그녀와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은 아침뿐이라는 말이다. 일을 하고 잠에 드는 그녀에 비해 나는 아직 학생 신분으로 수업을 듣는 것이 하루 일과의 다이다. 그래서 내가 조금 더 일찍 일어나곤 한다. 그러나 가끔 그녀의 목소리가 나를 깨우는 일도 있다. 침대에서 일어나 오늘은 이것을 먹어야지 - 하는 음성으로 시작되는 하루들이 있다. 청자를 정해두지 않은 말이지만 이 작은 집안에서는 그 음성이 닿지 않는 곳이 없어 집안의 모두가 그 말을 듣는다. 하지만 누구도 그 말에 답하지않는다. 그것이 혼잣말이니까. 그녀 또한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할 일을 한다. 말 이후에 이어지는 공백이 평화롭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답을 기다리지 않는 말을 하는 것은 후련할 것 같다. 요즘은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기다리는 일이 버거울 때 그녀를 생각한다. 우리 집을 가득 채우던 말들을 생각한다. 그러면 모든 것이 조금 상관없이 느껴진다.  


후련하고도 귀여운 이 습관은 나에게 옮겨왔다. 처음 혼잣말을 할 때는 조금 부끄러웠다. 내가 배우가 된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주변을 의식하며 말하는 습관이 남아 있으니 혼자 말을 하다 정신을 차리면 머쓱 해졌다. 하지만 그 머쓱함은 곧 사라졌다. 나 또한 혼잣말로 집을 가득 채우는 사람이 되었다. 고양이에게도 말을 걸곤 했다. 치치에게 말을 걸면 다 알아듣는단 듯이 눈을 깜빡이곤 한다. 혼잣말에 익숙해지자 나의 기분에 따라 갑자기 내뱉어지는 언어들이 생겨났다. 가령 예를 들면 처음으로 뵙는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 피곤하고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일 때 나는 졸리지 않지만 , 말할 생각도 없었지만 ‘졸리다’라는 말을 내뱉는다. 그 말을 듣고 옆 사람이 어제 잠을 못 주무셨냐던 가, 피곤하시냐 등, 나의 피로에 대해 물어보면 그때서야 정신이 번쩍 들고, 그 말에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는 식의 일이다.  요즘은 그 버릇에도 익숙해져서 작게 내뱉은 피곤해, 졸리다. 배고파 등의 말에 나의 상태를 파악하곤 한다. 오 , 나 이렇구나 하고 말이다.


누군가의 우주 가까이 산다는 것은 이토록 아름답고 신기한 일이다. 그리고 내가 그녀의 우주 가까이 있는 만큼 그녀 또한 나의 우주 근처에 있다. 그래서 더 행복할 것이고 가끔은 더 슬퍼질 것이다. 나쁜 것들은 금방 옮겨 붙는 버릇이 있으니 내게 온 병이 그녀에게 향하는 일도 있었을 것이고, 내게 온 우울과 슬픔이 커지면 그것들이 그녀의 곁을 기웃 거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 조심하곤 하지만 나 역시 불가항력인 일들 앞에선 무너지곤 한다. 그런데 그때마다 말하지 않아도 그녀의 것들이 나를 조금 더 빨리, 아프지 않게 일어나게 한다. 그녀는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혼잣말 말고도 그녀가 가진 귀여운 버릇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그 매력 뒤로 자리한 온기들이 나를 다독인 밤들도 또한 셀수 없다. 또한 나의 사랑이 그녀를 다독인 밤 또한 수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앞으로도 살아갈 날들에 그녀의 혼잣말이 있다는 것은 내게 큰 행운이다. 그 말들 때문에 우리는 평화를 잊지 않을 것이다. 계속해서 사랑을 노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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