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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린 Oct 02. 2021

발걸음의 취향

떠날 수 없다 해도



풀을 사랑하고 있다. 그 위로 불어오는 바람도 , 바람에 흩날리는 것들도 좋아한다. 버스를 타고 어딘가로 떠날 때면, 차창 밖에 비치는 수많은 마을, 숲 , 나무. 꽤 자주 그곳에 내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차가 있다면 저곳에 꼭 가보아야지.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 기억하리라 다짐하며 메모를 하지만 정말 갈 수 있을지는 모른다. 내겐 사랑하는 곳이 너무 많으니까


하루에 몇 번씩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이 생겨난다. 친구들은 이런 나를 보며 대단하다고 하기도 하고, 그런 욕구가 있다는 것이 부럽다고도 하고, 욕심이 많다고도 한다. 무언가를 원하고 , 바라는 힘. 그것이 내 창작과 음악, 살아가는 것에 대한 원동력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듯하다. 욕심쟁이인 나는 그런 마음들 속에서 여행을 꿈꾼다. 멀리 어딘가에 다녀온 지가 아득하다. 마음이 쉬려 누울 자리를 마련해주지 못한 지가 오래되었다. 매일 현관문에 서서 신발을 신으며, 내 발걸음의 취향을 따라 걷는 생각을 한다. 풀이 돋아난 자리, 시멘트가 미처 닫지 못한 길을 따라 걸으며 나는 집을 잊고, 삶을 잊을 것이다. 며칠 몇 주 몇 달일지 모를 시간을 자연에서 보내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음을 안다. 나는 떠나는 것보다 두고 가야 하는 것들이 두렵다. 아닌 척 하지만 난 꽤 질척거리고, 사람을 너무 사랑한다. 그래서 쉽게 마음을 주지 않는다. 학창 시절, 깊게 관계를 맺기보다 넓고 얕게, 서글서글한 말투로 다가갔어야 하는 때 나는 외딴섬에 홀로 표류해있곤 했다. '나랑은 안 맞아' '나는 혼자가 더 좋아'라는 스스로의 다독임과 함께 씩씩하게 행동했지만 사실은 외로웠다. 마음을 잔뜩 주고 나와 같이 돌려받기를 바라는 서투름 속에 상처를 받으면 헤쳐나가기보다 홀로 있기를 택한 것이다. 그렇게 학교를 졸업하고, 재수를 택하며 매일 학원에서 집으로 가는 버스 안 , 2시간이 걸리는 그 거리 동안 나는 매일 혼자였다. 내 옆자리에 이야기를 들어줄 친구는 없었다. 그래서 매일 나를 들여다보았다. 나와 이야기하며 나는 그제서야 나에 대해서 알았다. 사람을 좋아하고, 변화를 싫어하는 상냥한 나에 대해서. 그 후로는 넓게 마음을 쓰지 않았다.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존재들에게만 진심을 주곤 했다.


 지금도 본가에서 나의 집으로 돌아올 , 눈시울이 붉어지는 일이 많다. 떠나는 엄마의 뒷모습을  , 아무 말하지 않는데도 나는 상상하게 된다. 내가 없을 엄마의 옆자리라던가 , 잔뜩 풀어헤친 나의 짐이 사라진 자리라던가. 당사자들은 아무 말하지 않는데도 나는 자꾸만 떠올린다. 나의 마음이 나의  보다 느리기 때문일까? 100km 넘는 길을 걸어서 돌아오는 상상을 한다. 나의 느린 발걸음을 따라 돌아오면 서투른 마음으로도 떠나는 슬픔을 이겨낼  있을  같다.  


렇게나 나는 마음을 주는 것에 서투르다. 꿈꾸듯 떠나는 순간 나는  걸음 가지 않아 떠나온 것들을 떠올릴 것이다. 바다가 보이는 창에 앉는다 해도. 크게 일렁이는 파도를 바라본다 해도. 커다란 나무가 가득한 숲에 머문다 해도. 나는 그리워하떠올릴 것이다. 나의 침대  깔아  러그 위로 숨을 내쉬는 고양이를 , 일을 마치고 돌아와 작게 안부를 묻는 친구의 목소리를 , 매일 시답지 않은 얘기로 나를 웃게 하는 나의 연인을. 늦은  잠자리에 들면  밖으로 옅게 들리는 소음과 시원한 바람을. 정말 말 그대로 사무치게 두려워 할 것만 같다. 그 마음이 더 두렵다. 자꾸만 남아있는 기억을 붙잡아 머릿속에 하루종일 상영하는 나를 예상해본다.  삶에 머무는 사랑들 뒤로 차오를 그리움이 나는 두렵기에 , 오늘도 나는 떠나지 않기로 한다. 그래도 꿈꿀 것이다. 매일 아침 신발을 신으며, 돌아오지 않는 상상을  것이다. 그러다 언젠가 떠나는 날이 올지도 모르니까. 해가 따스한 오늘도, 발걸음의 취향은 같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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