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는 자퇴, 대학원은 졸업

일찍 일어나면 죽고 싶다(3)

by 고온


어릴 적에는 나보다도 어린 동생을 잘 돌보라고 배웠고, 부모님이 신경 쓰지 않아도 학교 숙제와 준비물을 스스로 챙겼다. 돈 걱정하는 엄마의 한탄을 들으며 같이 걱정했다. 어른스러운 게 칭찬인 줄 알았다. 남의 눈에는 알아서 잘하는 아이로 크면 됐다. 그렇게 나는 속내를 잘 감추는 착한 아이로 자랐다.


돌이켜보면 서서히 메말라갔다. 열두 살 사춘기가 왔을 때는 죽음을 생각했고, 중학생 때는 교실을 뛰쳐나가고 싶었다. 고등학생 때는 기어이 자퇴했다. 온신경이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지에만 쏠려 있었다. 밖에서의 생활은 쉽게 피곤해졌지만, 조금이라도 지친 모습을 보여주면 변했다고 생각할까 봐 감추기에 급급했다.



중학생 때는 좁은 교실에 다섯열로 다닥다닥 붙어 앉은 아이들이 내 책상으로 점점 다가와 몸이 팟 하고 터지는 상상을 했다. 수도 없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었다. 정상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던 나는 고개를 책상에 묻고 조용히 숨을 몰아쉬었다. 내가 비정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궤도를 벗어나는 법을 몰랐다.


3학년이 되어, 고등학교를 고민할 시기가 왔다. 서울의 신생 예술고등학교 홈페이지를 들락거리고, 방송계 특성화고등학교를 견학했지만 예술을 선택할 용기가 없었다.

예술은 타고나는 거야. 어릴 때부터 해야 해.

예술은 배고픈 거야. 돈 못 벌고 살 수 있어?


편견 어린 몇 마디에 가로막히는 정도의 자신감이었다. 나라고 다를까, 특출 나게 잘하는 것도 아니잖아, 밥 벌어먹고 못 살면 누가 책임져줘, 생각해 보면 다른 걸 포기할 만큼 하고 싶은 일도 아니었던 것 같아, 그렇게 합리화했다. 노력했는데도 재능이 없는 나를 확인하기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내심 안심하기도 했다.


아무도 모르게 꿈을 접은 뒤로 대안학교, 집 앞 특성화고, 고등학교를 아예 진학하지 않는 것도 고민했다. 엄마께 말씀드리니 고등학교를 다녀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는다고 하셨다. 수긍했다. 고등학교를 진학하지 않을 자신도 없었기 때문이다. 집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의 일반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처음 학교 교정을 거니는 날, 예감이 좋았다.

이번엔 다를 것 같아. 나도 적응할 수 있을 거야.


허벅지를 찔러가며 잠을 참았다. 수업시간에 한 번도 졸아본 적이 없었다. 방과 후 수업, 야간자율학습은 물론, 동아리도 만들고 반장도 했다. 선생님 사이의 평판은 좋았다. 바깥에서 에너지를 다 쏟아붓고 집에 들어오면 공부는커녕 방에 틀어박혀 잠만 잤다. 충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여전히 타인의 시선에 갇혀 몸부림치고 있었다.


두 번 부모님께 자퇴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방해 요소가 많다며 공부에 더 시간을 할애하고 싶다고 설득했다. 진짜라고 믿었다. 성적이 안 나오니까 힘든 줄 알았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최악의 시간을 보냈다. 며칠 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여드름이 온 얼굴을 빨갛게 물들여 밖을 나가지 않았다. 밤마다 엄마와의 산책 시간만이 유일한 외출이었다. 검정고시 학원을 다니기 시작하고 며칠 뒤 교통사고를 당해 눈에 피멍이 들기도 했다. 이 모든 게 학교를 그만둔 내 탓같았다.


그렇게 1년 10개월이 흘러 대학생이 되었다. 많이 멀고, 혼자 밥을 먹게 되었고, 학생 신분을 다시 살 수 있었다. 또한 박사생들이 학생상담센터에서 상담을 하고 있었다. 상담센터를 처음 두드렸다. 상담은 몇 개월씩 예약이 가득 차있었다. 나 같은 사람들이 정신과, 상담센터에 넘쳐났다. 어떤 일로 오셨어요?라는 질문에 나는 입을 열었다.

자퇴하고 싶어서요.



또 적응하지 못했다. 괜찮은 척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wee class에서 학교 선생님께 받은 형식적인 상담이 아니라 처음으로 상담다운 상담을 받았다. 고등학교 자퇴를 돌아보았다. 대학교 자퇴에서 휴학으로 생각이 바뀌었고, 1학기 휴학한 뒤 복학할 수 있었다. 대학교를 졸업하자 고등학교 자퇴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더 이상 내가 고등학교를 자퇴했다는 걸 아는 사람이 없었다. 어느 고등학교를 나왔냐는 질문은 어느 대학을 나왔냐로 변모했다. 그러나 나는 불안했다. 더 공부하면 자퇴라는 오점은 작아지리라, 그렇게 대학원에 진학했다. 점점 더 큰 오점을 그리기 시작했지만.


한국에서 지적열등감을 안 느끼고 살 수 있을까? 나는 늘 지적열등감에 시달렸으며, 남들이 말하는 좋은 대학에 가고 싶었다. 내 열등감은 고등학교를 그만두게 만들고, 대학원에 들어가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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