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빌런은 없다(5)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잖아
옷깃만 스쳐도 우린 느낄 수가 있어
손끝만 닿아도 짜릿하잖아
너는 지금 무얼 생각하고 어디에 있니
말은 안 해도 알 수 있잖아
서로의 기분을 우린 읽을 수가 있어(중략)
1980년대 후반 남성듀오 <도시아이들>의 정규앨범 2집에 수록된 곡 ‘텔레파시’의 가사다. 일렉트로닉 풍의 경쾌한 곡으로, 발표되자마자 그해 모 방송국 연말 가요대상에서 대상은 받은 곡. 나는 이 노래를 사랑했다. 가사 하나하나에 춤 동작까지. 이유가 있다. 어릴 적 동네 골목에서 언니 오빠들이 자기 몸뚱이만 한 녹음기를 틀어놓고 이 곡에 맞춰 신나게 춤추던 모습이 인상적이기도 했거니와, 이 곡을 통해 알게 된 텔레파시란 단어의 매력 때문이다. 텔레파시. 당시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나로서는 ‘지지’(支持· 어떤 의견이나 주장에 찬동하고 응원함)만큼이나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였지만, 발음이 주는 묘한 어감 때문에 듣자마자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텔레파시란 단어를 시도 때도 없이 사용했다. 밥상에 앉을 때도, 친구를 만났을 때도, 아니면 고무줄놀이를 하다가 누군가를 봤을 때도 “텔레파시가 통했다”라고 소리쳤다. 난데없는 소리로 주위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어리둥절하게 만들곤 했다. 또 특이한 버릇이 있었으니. 텔레파시를 얘기할 때마다 그 뒤에 붙는 ‘통했다’라는 동사에 강한 악센트를 준 것이다. ‘통했다’라는 동사 역시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발음하면 할수록 빠져드는 묘한 마력이 있었던 것 같다. 텔레파시란 단어를 쓰는 순간, 지지支持라는 단어를 썼을 때만큼 확 커버린 느낌을 받았다고나 할까. 더구나 그 문장을 썼을 때의 어른들 반응이 더 그 단어에 집착하게 만들었다. 어른들은 “오호 요 녀석 봐라. 어린 게 이런 단어를 쓰네” “아이가 책을 많이 읽나 봐요”라는 등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100원을 넣으면 알사탕이 나오는 자판기처럼, 텔레파시란 단어는 칭찬 자판기였다고나 할까.
중고등학교를 거치며 뜸했던 텔레파시 사랑은 대학교 2학년 때 다시 도졌다. 그것도 우연한 기회에. 그것은 ‘연기 스튜디오’라는 강의 시간이었다. 나는 서울 유명 미대에 진학했다. 전공은 시각디자인. 다른 전공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미대 학생들은 살인적인 과제 분량 때문에 항상 허덕허덕했다. 연기 과목을 선택한 것은 순전히 그런 과제 부담을 덜기 위해서였다. 그 과목은 과제 대신 중간과 기말고사 때 두 번 무대에 올라 연기를 하면 끝이었다. 두 번만 ‘쪽팔리면’ 과제 부담을 덜 수 있는, 그래서 타과 학생들이 전략적으로 선택하는 과목이었다. 텔레파시의 위대함을 다시 경험한 것은 그 수업을 통해서였다.
담당 교수는 미국 시카고대학에서 행위예술을 전공한, 30대 후반 여자였다. 그녀는 요정 같은 외모만큼 특이한 방식으로 강의를 진행했다. 이런 식이었다. 하루는 안대를 준비해 체육관으로 모이라고 했다. 그녀는 대뜸 “지금까지 가장 교류가 없는 친구를 골라보세요”라고 말했다. 이게 무슨 얘기지? 모두 어색한 표정으로 한번 말도 건넨 적 없는 얼굴들을 향해 갔다. 내 짝은 김어진. 애니메이션과의 동갑내기 학생이었다. 교수의 지시는 이어졌다.
“짝을 골랐다면, 이제 바닥에 앉아 서로의 눈을 바라보세요.”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잡고 서로의 눈을 바라보세요.”
“지금 그 자리에서 다섯 발자국씩 멀어져 눈을 맞추세요.”
“멀어질 수 있을 만큼 떨어져 눈을 맞춰보세요.”
교수는 그렇게 3~5분씩 다양한 방법으로 서로의 눈을 맞추게 했다. 말이 3분이지 처음 보는 것이나 다름없는 친구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어색함이란.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당시의 곤혹스러움과 면구함, 뻘쭘함은 잊을 수 없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전해오는 게 있었다. 상대 눈 속에서 뭔가를 읽는다는 느낌. 간절한 뭔가가 전해진다고나 할까. 서로가 그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 교수의 지시가 이어졌다. 이번엔 모두 강당 여기저기로 흩어지라고 했다. 그리고 안대 착용. 그다음 지시가 학생들을 다시 당혹하게 만들었다.
“이제, 아까 눈맞춤 했던 짝꿍을 찾으세요.”
아니, 안대를 쓰고 친구를 찾으라니. 그것도 말도 한마디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우리를 무슨 초능력자들로 생각하나. 모두가 황당한 지시에 어쩔 줄 몰라 허둥대기 시작했다. 천천히 움직이며 어쩌다 부딪힌 친구의 얼굴과 손, 몸을 만지기 시작했다. 다가오는 친구들의 피부와 옷깃, 팔꿈치, 착용한 액세서리를 만지며 짝꿍이 맞는지 가늠해야 했다. 속으로 ‘어진아 어디 있니, 나 여기 있어’ 라며 한발 한발 나아갔다. 그리고 10분쯤 지나서였을까. 나를 향해 다가온 손 하나. 그 손이 내 손을 꽉 붙잡고 놓지 않는 게 아닌가.
그리고 기적. “자, 이제 안대를 벗어주세요”라는 지시에 안대를 벗은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나를 잡은 게 바로 짝 어진이었던 것이다. 놀람과 기쁨으로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모든 학생들이 예외 없이 제 짝을 찾았다는 사실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어머머~~’ ‘이게 웬일이니’ ‘이게 실화임?’ ‘와 개소름’ 등 비명과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난생처음 경험하는 놀라운 실험에 학생들은 하나같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정신을 가다듬고 물었다. “선생님, 도대체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요” 인형 같은 여교수는 알듯 말듯한 말로 대답을 갈음했다. “글쎄. 텔레파시 때문 아닐까. 눈빛 없이도 알 수 있는 그런 사이. 그러나 그게 진짜 왜인지는 여러분이 찾아야겠지요.”
텔레파시의 기적이 만약 여기서 끝이었다면 나는 아마 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살다 보면 이런 일 저런 일, 오만가지 일이 다 벌어지는 게 세상사 아니던가. 코흘리개 시절의 추억과 대학시절 의심스러운 실험만으로는 텔레파시의 기적을 논하기엔 아직 뭔가 부족했다. 사실, 텔레파시가 글의 주제가 되려면 뭔가 더 극적인 사건이 필요했다. 모든 사람들이 무릎을 치게 할 만한 그런 충격적인 사건. 그게 바로 얼마 전 출근길에 겪은 일이었다.
그날은 유독 화창한 날이었다. 골목길에 울려 퍼지던 텔레파시 노래도, 어진이의 믿을 수 없는 안대 기적도 모두 잊은 지 오래. 나는 어느덧 중견기업 디자인팀을 이끄는 30대 중반의 개발자가 돼 있다. 그날 나는 온통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오픈이 다가온 온라인 거래시스템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어서다. 그제까지 받기로 한 외주업체의 납품 프로그램이 어제까지 오지 않았고, 그 때문에 담당 임원에게 아침에 시스템 오픈 지체 이유를 브리핑해야 했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다. 내부에서는 일이 끝났지만, 복잡한 공정을 맡은 외주업체에서 펑크를 낸 것이다. 진작에 외주업체 관계자를 만나 상황을 체크했어야 했는데 부하 직원의 말만 듣고 방치한 게 화근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날 날씨는 미친 것처럼 아름다웠다. 살짝 열린 버스 창문 사이로 초여름 푸른 나무 향기가 살랑바람에 실려 들어오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줄곧 얼굴을 찡그린 채 아이패드에 고개를 묻고 있었다. 그러다 문뜩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쓸어 올리려는 순간, 뒤에서 누가 부르는 소리가 난 것 같았다. 정확히 들었다는 게 아니라 그런 소리를 들었다는 느낌? 아무튼 아까부터 괜히 누가 계속 보고 있다는 느낌이었는데 급기야 내 이름을 부른 것 같았다. 고개를 들어 뒤돌아보면 누군가 다가와 있을 것 같은, 그러나 그 느낌이 전혀 낯설지 않고 익숙한 분위기였다. 뭔지 모를 기대감, 동시에 그 기대감이 무너질 것 같은 불안감. 그러나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기분. 그 순간 갑자기 텔레파시란 단어와 함께 친구 이름이 떠오른 건 우연일까. 아, 김·어·진. 나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뒤를 쳐다보았고, 버스 맨 뒤쪽 창가에 앉아 나를 쳐다보고 있는 어진을 발견했다. 수줍은 얼굴. 9년 전 그대로다. 나는 ‘어머’하는 비명을 삼키며 그녀를 바라봤다. 안대를 벗고 서로를 확인하며 놀라던 그날의 눈동자 그대로.
놀랍게도 어진은 내 회사 근처에서 일하고 있었다. 유저인터페이스(UI) 전공으로 미국서 공부를 마치고 현지서 일하다, 얼마 전 한국에 들어왔다고 했다. 근무처는 우리 회사에서 한 블록 떨어진 디자인 사관학교라 불리는 회사. 업무강도와 훈육이 악명 높기로 유명했고, 무엇보다 우리 회사와 뗄 수 없는 인연을 맺고 있었다. 바로 우리 회사 온라인거래시스템 개통에 지장을 준 업체가 바로 그 회사였던 것이다.
더 놀라운 건 그녀가 나를 발견한 과정이다. 어진이 자신도 창밖을 쳐다보고 있는데 누군가가 계속 부르는 환청을 들었다는 것이다. 알 수 없는 이끌림에 고개를 돌렸고, 거기서 낯익지 않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뒷모습을 발견했다는 것. 어진은 내가 자리에 앉아 몸을 뒤척이는 것을, 골똘히 뭔가를 생각하는 것을, 그리고 패드에 뭔가를 쓰는 것을 유심히 바라봤다. 그리고 내 전공이 시각디자인이고, 관련 업종에 취업했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오늘 아침 뭐가 단단히 꼬였구나. 내가 쉬지 않고 아이패드를 터치하는 것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아는 척을 할까 말까. 그녀는 고민하던 차 놀랍게도 내 시선을 받았다는 설명이었다.
지나가는 행인들이 다 쳐다볼 정도로 반갑다고 호들갑을 떨던 우리는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임을 깨닫는다. 아침 출근길, 많이 늦었다. 명함을 주고 서둘러 돌아서는 내게 어진이가 말했다. “ㅇㅇ아 너무 걱정 마, 다 잘 될 거야” 9년 전 안대를 하고 내 손을 잡았던 그때처럼 확신에 차 있는 목소리였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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