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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천 Oct 10. 2023

텔레파시가 직장생활에 미치는 영향②끝

오피스빌런은 없다(5)


이상한 것은 그날부터였다. 담당 임원 보고 때 호통 대신 ‘그럴 수도 있지’라는 믿을 수 없는 반응이 나왔다. 불같은 성격에 까칠하기로 유명한 임원의 예상밖 반응에 얼떨떨하기까지 했다. 오후가 되자 해당 업체에서 솔루션 개발이 끝났다며 연락이 왔다. 뭐라도 쓰인 것처럼 일이 술술 풀렸다. 온라인거래 시스템은 예정에 맞춰 오픈할 수 있었고, 대표로부터 기대 이상으로 잘 됐다는 칭찬까지 받았다. 가슴을 찍어 누르던 체증이 한꺼번에 쏴~악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퇴근길. 시원한 맥주 생각이 간절했다. 그러나 팀원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회식을 미루길 원했다.      


 어진이의 전화를 받은 게 바로 그때였다. “ㅇㅇ 아 뭐 해. 저녁에 맥주 한 잔 어때?” 아,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람. 어떻게 이렇게 정확히 때를 맞출 수 있는 걸까. 반가운 마음에 한걸음에 약속장소로 달려갔다. 약속 장소는 사무실 인근 노포 골목에 있는 ‘어상’이라는 이자카야. 술 생각이 날 때 종종 찾는 곳이다. 어진은 아마 내가 이곳을 좋아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게 다 우연일까. 우연이라면 필시 뭔가 필연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저녁 겸 술자리를 하면서 우리는 지난날을 하나씩 복기했다. 하나도 빠뜨리면 무언가 큰 것을 잃어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조바심을 내면서. 새로운 사실을 알아낼 때마다 우리는 목이 터져라 웃어댔고, 슬픈 과거를 떠올릴 때 ‘어떡하니’ ‘그런 일이 있었구나’라며 서로의 손등을 쓰다듬고 위로했다. 마치 어진이가 결코 내 곁을 떠난 적이 없던 오랜 친구처럼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인간의 만남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서로를 끌어당기고 다시 헤어지게 만드는 걸까. 그 과정에서 기적이라는 게 있을 수 있을까. 텔레파시란 증명할 수 있는 과학적 현상일까. 텔레파시는 과연 만남과 헤어짐에 어떤 영향을 주는 것일까. 10년 전 물음표로 넘긴 질문들을 새삼 다시 던져본다.       

 텔레파시. 뇌파가 만들어내는 목소리? 그게 가능할까. 과학은 그렇다고 말하고 있다. 인간 뇌는 4kg짜리 신비 덩어리다. 약 1000억 개 뉴런으로 이뤄진 ‘울트라 하이퍼’ 슈퍼컴퓨터. 그 능력의 한계가 어딘지 알 수 없다. 인간은 그 작은 세포 덩어리를 활용해 지구라는 생태계에서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고, 그 문명과 유산을 후세 물려주는 역사를 만들어냈다.      


 그런 뇌가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입과 손이 아닌 뇌파로 소통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말과 글보다 더 감성적이고 직관적인, 종합적인 방법으로 소통을 할 수 있다면 어떤 기적이 가능할까. 인간이 개별적인 능력을 떠나 80억 인류와 그런 방식으로 연결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러나 이런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세계에서 가장 똑똑하다는 뇌 과학자들조차 뇌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다. 한마디로 초보나 다름없다. 뇌파연구(EEG)나 자기 공명장치(fMRI) 등의 기술을 이용해 뇌가 어떤 자극에 어떻게 반응하는 지를 알아낸 정도다. 뇌의 어느 부분이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그런 기능이 가능한지는 아직 모두 미지의 영역이다. 따라서 뇌가 어떤 능력으로 어떻게 인간의 삶을 바꿀 수 있을지 예상하고, 장담하는 것은 한 마리로 불가능에 가깝다.     


 이렇게 시작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된다. 뇌 역시 진화의 결과물이다. 뇌는 위치에 따라 세 가지로 구분된다. 맨 안쪽 뇌는 가장 원시적인 기능을 담당하는 일명 파충류의 뇌, ‘뇌간’이다. 이성이 작동하기 전 즉각적으로 본능적으로 대응하도록 훈련된 뇌다. 생명의 위협에 도망치고, 배고프면 먹고, 암컷을 보면 달려들고, 뜨거울 때 손을 떼고, 무서울 때 눈을 감는 것 등은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행동이다. 이런 본능적 행동을 관장하는 뇌다. 그 뇌를 포유류의 뇌, ‘대뇌변연계’가 감싸고 있다. 사랑과 증오 등의 감정과 사회생활과 관련된 지각능력 등을 담당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맨 바깥쪽에 가장 늦게 진화한 인간의 뇌, ‘대뇌피질’이 자리하고 있다. 언어 습득이나 계획, 수학연산 등 어렵고 복잡한 개념들을 처리한다.      


 그중 파충류의 뇌에 주목한다. 파충류의 뇌는 즉각적이고 원시적이다. 언어가 발달하지 않았을 때 그 뇌는 서로 의사를 전달하고 이해시키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인간이 말과 글로 의사 표현을 하기 전, 파충류의 뇌는 서로를 이해시키고 소통시키는 방법을 개발하고 오랫동안 진화했을 것이다. 그중 하나가 텔레파시 아니었을까. 가장 원시적이지만, 당시로서는 가장 효율적인 소통방법. 아직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그런 기능이 보통의 인간보다 더 활성화되고 발달했다면 텔레파시는 얼마든지 가능한 게 아닐까. 안대수업 때처럼 가장 어려운 환경에서 스스로 발현되는 가장 원초적인 소통 방법. 어진과 나는 그런 능력이 다른 사람보다 좀 더 출중한 사람들이 아닐까.      


 그러나 확실한 게 하나도 없다. 10년 전과 달라진 게 없다. 답을 해줄 사람도 없다. 세계 최고의 뇌 과학자들이 텔레파시의 가능성과 상업성을 주목하고 있으나 아직 그 메커니즘을 속 시원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 선진국에선 군사용으로 텔레파시를 연구하고 무기화하는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일론 머스크 같은 이는 뉴럴링크라는 회사를 통해 뇌파로 물건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원숭이 실험 등을 오래전부터 해오고 있다. 그러나 모두가 아직 실험 단계이고, 궁극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가늠하기 힘들다.       


 미래가 어쨌든, 지금 하나 확실한 게 있다. 어진과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텔레파시’로 끈끈하게 연결돼 있다는 느낌이다. 오늘 아침에도 출근하는 그녀를 본다. 그녀를 보기 전 그녀를 먼저 느낀다. 그녀가 웃는다. 그 웃음의 의미를, 그 배경에 무엇이 있는지 느낄 수 있다. 확실하지 않지만 둥글고 가볍고 아름답고 따뜻한 뭔가가 있다는 걸 감지한다. 어제저녁 헤어질 때 차갑고 슬픈 느낌과는 완전히 다르다. 하룻밤 새 뭔가가 그녀를 완전히 다르게 만든 것이다. 그녀에게 그게 뭔지 굳이 물을 필요가 없다. 묻지 않아도 충분히 느낄 수 있으니까. 어진이가 환하게 웃는 얼굴로 내게 뛰어 온다. 나는 어느새 노래를 흥얼거린다.      


 눈빛만 봐도, 

 옷깃만 스쳐도, 

 손끝만 닿아도, 

 말을 안 해도, 

 무얼 생각하고 어디에 있는지, 

 서로의 기분을 알 수 있잖아. 

 어진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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