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빌런은 없다(7)
K를 처음 만난 것은 사내 진급자를 위한 리더십 강좌였다. 그는 20여 명이 넘는 수강자 중 단연 눈에 띄는 인물이었다. ‘색깔’ 때문이었다. 특정할 수 없지만 주위와 확실히 구별되는 색깔, 주변의 빛을 가리는 기운이라고나 할까. 그런 블랙홀 같은 암울한 기운이 그를 감싸고 있었다. 나는 대번의 K의 정체를 알아봤다. 당시엔 그 자신도 까마득히 몰랐던 그의 진짜 모습을.
그러나 그땐 그런 얘길 나눌 틈이 없었다. 모두가 바빴다. 수강생들은 리더십 교육은 뒷전이고 승진에 걸맞은 뭔가를 보여주겠다는 듯이 교육 시간에도 업무에 매달렸다. 그렇게 하는 게 자신이 얼마나 유능하고, 부서에 필요한 존재인지를 증명하는 방법이라고 웅변하듯 말이다. 심지어는 쉬는 시간에도 쉬지 않고 맡은 업무를 처리했다. 어딘가로 전화하고 소리치고, 급히 메일을 보내고. 마치 누군가 그런 모습을 체크하고, 점수를 매기고, 곧바로 승진 심사를 다시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나와 K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 분위기에 휩쓸려 뭔가를 하느라 서로에게 신경 쓰지 못했다. 나로서는 당시만 해도 그렇게 지나가는 게 순리에 맞다고 생각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일주일간의 교육은 끝났고, K는 자연스럽게 잊혔다. 같은 회사지만 2000명이 넘는 대규모 IT회사인 데다 한 부서가 웬만한 중소기업 규모여서 서로 부딪힐 일이 없었다. 그의 소식을 다시 듣게 된 것은 그로부터 반년 뒤. 사내 게시판에 처음으로 코로나 확진자 명단이 떴을 때였다. 5명 중 그의 이름이 있었다. 그들과 최근 2주간 접촉한 ‘밀접 접촉자’ 명단도 함께 올라왔다. 회사는 확진자는 물론 밀접 접촉자, 그 밀접 접촉자와 접촉한 의심자까지 모두 자진 신고하고, 재택근무에 들어가라고 지시했다. 확진자나 밀접 접촉자가 무슨 대역 죄인이나 배신자, 성격 이상자처럼 여겨지던 때였다. 몰래 저녁 모임에 나갔다가 확진 판정을 받게 된 한 여직원은 게시판에 이름이 뜨자 울음을 터트리고 사무실을 뛰쳐나갔고, 그다음 날 바로 사표를 제출했다. 회사는 사표를 반려하지 않고 즉각 수리했다. 그런 때였다. 코로나 감염 자체보다 감염자 리스트에 오른다는 것 자체를 더 두려워하고 치욕스럽게 생각하던.
그러나 망각의 힘은 대단했다. 모두 코로나와 사투를 벌이느라 주위를 둘러볼 시간이 없었다. K를 포함해 8명이 병원에 입원했고, 그중 두 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으나 그 마저 곧 잊혔다.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만도 기력이 부쳤다. 타인의 죽음과 비극을 기억해 줄 여유가 없었다. 그 와중에 많은 이들이 전투에서 이름도 없이 쓰러져 갔다. 백신과 치료제가 나왔지만 바이러스의 기세는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모두가 가망 없는 싸움이라고 자포자기할 때쯤 기적적으로, 기고만장하던 바이러스의 기세가 꺾이기 시작했다. 예상과 다른 어이없는 결말이었지만, 모두 지친 목소리를 모아 환호성을 질렀다. 잊고 있던 K를 다시 만난 것도 그런 코로나 위기의 끝물쯤이었다.
K와 나는 다시 승진자 리더십 클래스에서 만났다. 3년 전 같이 리더십 강좌를 받았던 또래들은 하나도 없었다. 그 클래스엔 모두 나이가 4~5년 차 이상인 선배들만 있었다. 우리는 이른바 초고속 승진자로 뽑힌 케이스였다. 둘 다 주목과 함께 경계의 대상이 됐다. K와 자연스럽게 가깝게 되지 않을 수 없었다. K가 먼저 인사를 청해온 것도 그런 분위기 때문이었으리라. K는 땀이 많은 손을 쓱쓱 비비고 손을 내밀었다. 이제는 코로나 따위는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는 듯이. 실제로 K는 3년 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 자신을 눈에 띄게 만들었던 색깔부터 바뀌어 있었다. 어둡고 칙칙한 그림자 대신 밝은 아우라가 감싸고 있었다. 내가 저녁식사라도 함께 하자는 제안했을 때 그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날 저녁 K와의 첫 식사자리. K는 담담한 톤으로 지난 3년간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술회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들은 얘기는 밥을 먹으며 마음 편하게 들을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사연이 아니었다.
K는 코로나 확진 후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겨야 했다. 의료진도, 약도, 전문가도, 시설도 없는 상황에서 그의 목숨은 그저 신神의 손에 맡겨진 카드처럼 위태위태했다. 앞장이면 생존, 뒷장이면 죽음. 참을 수 없이 존재의 가벼움이란 표현의 의미를 절감한 게 그때였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바이러스의 공세 앞에서 인간은 그야말로 무력했다. 병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발병 전까지만 해도 한 번도 신경 써본 적 없는 숨쉬기의 의미를 곱씹으며, 한 번이라도 더 숨을 내쉬기 위해 심장을 쥐어짜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조금이라도 버티다 보면 그사이 기적적으로 치료제가 나올 수 있다고 믿고 있다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K에겐 그런 희망마저 사치였다. 급발성 폐섬유증. 의사들의 진단이었다. 폐에 구멍이 뚫리고 심장이 뻣뻣하게 굳어져 호흡을 할 수 없게 되는 병. 길어야 6개월, 심장이식 수술을 받으면 5년은 버틸 수 있다는 진단이었다. 사형선고와도 다름없는 시한부 인생 통보였다. 죽음의 공포가 그를 덮쳤다. 그러나 그보다 더 힘든 것은 외로움이었다. K는 아무도 접근하지 않는 음압병실에서 홀로 죽음과 싸워야 했다. 이렇게 죽는구나. 그동안 살아온 것들이 한없이 무의미해졌고 또한 모든 순간이 절실하게 다가왔다. 견디기 힘든 죽음과 삶의 무게가 그를 짓눌렀다. 그러나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밀려올 때는 오직 죽음만을 바랬다. 제발 편히 죽게 해달라고 의료진에 매달리기도 했다.
가족들은 그를 포기하지 못했다. 심장 수술을 받아야 한다며 백방으로 뛰었다. 특히 모친은 17대 종갓집 장손을 그냥 죽게 놔둘 수 없다며,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수술 지원을 호소했다. 그러나 전 재산을 걸고 죽음으로 가는 생명줄을 조금이라도 연장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환자들이 수없이 대기하고 있는 상황. 심장이식 수술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려워 보였다. K는 하루하루 죽음으로 다가가는 자신을 맥없이 지켜봐야만 했다.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 몸무게는 어느새 반절 수준으로 빠졌고, 숨소리는 이제 실처럼 끊길 듯 말 듯 이어질 뿐이었다. 언제 죽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의료진은 가족들에게도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전했다. 장례식도 마음대로 치를 수 없는 상황. 가족들은 죽은 이의 뼛가루라도 빨리 돌려받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런 K가 반년 만에 병원을 혼자 힘으로 나온 것은 말 그대로 ‘기적’이었다. 그것도 수술도 받지 않은 채 말이다. 어느 날 갑자기 심장 구멍이 메워지고, 뻣뻣하게 굳었던 심장에 피가 돌기 시작했다. 그는 담당 의사나 간호사, 코로나 연구가들조차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급속히 건강을 회복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K에게 박수 쳐 줄 여유가 없었다. 하루 수천 명이 죽어나가는 전쟁터에서 K의 사례는 작은 기적으로 그냥 묻혀갔다. 그렇게 K는 누구의 주목도 받지 않고, 조용히 생업에 복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2편에서 계속
이미지=영화 박수건달 포스터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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