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는 생환 기적의 비밀을 말하기 전 잠깐 내 눈을 바라봤다. 무슨 이야기를 하든 믿겠느냐고 묻는 듯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짐작되는 바가 있었으나 말하지 않았다. K는 잠시 뜸을 들이다 입을 뗐다.
K가 입원하기 전 집안에 우환이 많았다. 가족들이 잇따라 큰 사고를 당했다. 큰 형이 공사장 현장에서 발을 헛디뎌 머리를 크게 다쳤고, 반신불구 모친은 차 사고로 다시 병원으로 실려갔다. 막내 아이는 체육시간에 철봉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그럴 때마다 K는 어김없이 악몽에 시달렸다. 한복을 입고 긴 백발을 흩날리는 노인이 부르는 꿈. 어디선가 낯선 듯 선뜻 알아보기 힘든 얼굴. 여자처럼, 할머니처럼 보이는데 남자처럼 눈썹이 진하고 코밑에는 잔수염까지 거뭇거뭇해 보였다. 무섭고 소름 끼쳤다. 아무리 불러도, 소매를 잡아당겨도 계속 뒷걸음질 쳤다. 매번 ‘이놈’하는 불호령을 듣다 깼다. 그리고 그런 꿈 뒤에 예외 없이 큰 사고가 났다. 코로나 발병 전에도 예외 없이 백발 할매가 나타났다. 이번엔 K가 시름시름 아팠다. 그러다 코로나 확진 판정까지 받고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K가 사형 선고를 받고 음압병실로 이송된 후 모친이 찾아왔다. 규정상 절대 있을 수 없는 면회였으나 K의 생명이 걸린 일이라고 탄원해 기회를 얻었다. 모친은 전신 방호복을 입고 휠체어에 실려 병실로 들어섰다. 죽음의 그늘을 뒤집어쓴, 뼈만 앙상한 아들의 모습에 한참을 목 놓아 울던 모친이 입을 열었다.
니 꿈꾸제. 할매 꿈꾸제. 이제 고마 할매 손을 잡아주기라. 기래야 니도 살고 아그들도 살릴 수 있데이.
그제야 모친은 K에게 숨겨놨던 가족사를 털어놓았다. 그녀의 어머니, 즉 K의 외할머니는 경상도 영주 지역에서 알아주는 무속인이었다. 외할머니가 신내림을 받고 신당을 차리자 외할아버지는 할머니와 연을 끊었다. 모친과 형제들은 할아버지 손에 자랐다. 학교에서는 무당의 딸이라고 놀림을 받았다. 모친은 일찍 이웃동네 남자와 결혼했고, K가 태어나기 전 무병巫病(무당이나 박수가 되기 전에 신과 접하고 앓는 병)을 앓았다. 내림굿을 하여 몸주(무당의 몸으로 들어가는 귀신)를 받아야만 낫는 병이었다. 모친도 꿈에서 백발 할매를 만나곤 했다. 계속 잡아끌고 호통치는 꿈. 모친은 죽으면 죽었지 아들을 무당의 아이로 만들 수 없다며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 와중에 동생이 둘이나 죽고, 남편은 바람나 집을 나갔다. 모친도 시름시름 앓다 결국 반신불구가 됐다.
모친 이야기를 듣고 K도 생각나는 게 있었다.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 크게 아팠다. 그때 악몽을 많이 꿨다. 장구소리와 꽹과리 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누군가에게 쫓아오는 꿈이었다. 백발노인을 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 아무튼 쫓기다 낭떠러지에서 떨어지기도 하고, 차에 치이기도 했다. 비명을 지르며 깨어나면 모친이 옆에서 “차라리 날 쥑이라, 날 쥑이라”라고 가슴을 치곤 했었다.
신내림과 관련된 가슴 아픈 일화는 적지 않다. 1980년대 인기스타 P 씨가 신내림을 거부했다가 집안이 풍비박산 났다. 남편은 떠나고 본인은 알 수 없는 액운으로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겨야 했다. 결국 신을 받고 무당으로 새 인생을 시작한 후에야 집안에 평온을 찾아왔다. 서울대 국악과 재학생 역시 집안의 내우외환을 안고 신내림을 받은 후 금화아기씨라는 이름으로 무덕을 쌓고 있다고 한다. 그 밖에도 연예인이든, 학자든, 스포츠인이든, 일반인이든 무속인으로서의 운명을 거부하다 여러 흉사를 겪고 있는 사례는 차고 넘친다.
K는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흥미롭다고 여겼지만 그게 자신의 일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처음 모친의 얘기를 들으면서도 그랬다. 그러나 차츰 모친의 얘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았다. K는 그때 절망이나 두려움보다 희열을 느꼈다. 백발 할매 얘기를 들으면서 잘만하면 살 길이 있겠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 K는 모친의 얘기가 끝나기도 전에 속으로 기도하고 있었다. 지옥보다 더 외롭고 고통스러운 이 음압병실에서 멀쩡한 몸으로 빠져나갈 수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다고. 병원 밖으로 나가서 아이들의 눈을 다시 볼 수 만 있다면 귀신뿐 아니라 악마에게라도 영혼을 팔겠다고. 파우스트처럼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인생의 찬란함을 충분히 맛보게 해 주면’ 따위의 조건은 붙이지 않겠다고. 다만, 살려만 달라고. 살려면 주면 뭐든지 귀신이 원하는 대로 다 하겠다고 빌고 또 빌었다.
그리고 그 후 실제 꿈에서 백발 할매를 만났을 때 K는 할매의 손을 덥석 잡았다. 마음 같아서는 뽀뽀라도 해주고 싶었으나 차마 그러지 못했다. 할매는 처음으로 호통 없이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 아름답고 화창한 날씨의 꽃밭으로 그를 데려갔다. 거기엔 죽은 삼촌들과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집 나가 죽은 아버지, 외조부와 무녀 할머니 등이 평화롭게 모여 살고 있었다.
K가 제 발로 걸어 퇴원했을 때 모친은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완연히 회복된 모습으로 걸어 나오는 아들을 보자 끌어안고 “아이고, 우리 새끼. 세상에 우리 강아지가 살아 돌아왔네”라며 눈물을 터트렸다. 그러면서도 “차라리 날 잡아가지, 잡아가지”라며 가슴을 쥐어뜯으며 통곡했다. 부모로서 아들을 무당으로 만들 수밖에 없는 무력함을 탓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K는 그런 모친의 뜻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나쁘게만 볼 일이 아니라고 위로했다. 실제로 그랬다.
3편에서 계속
이미지=영화 박수건달 포스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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