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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천 Oct 15. 2023

코로나 덕분에 살았다③끝

오피스빌런은 없다(7)

 K는 코로나 발병 전에도 감感이 좋은 편이었다. 사람을 만나면 대강 느낌이 왔다. 친하게 지내야 할 사람, 피해야 할 사람, 곧 무슨 일을 낼 것 같은 사람, 대박 날 것 같은 사람 등등. 그리고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 등에 대해서도 분별이 있었다. 뭐라 정확히 설명할 수 없지만 그냥 당기거나 꺼려지는 걸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설명 불가능한 감으로 남들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공부하고, 업무서 성과도 낼 수 있었다.       


 그러나 할매 손을 잡은 후 그런 감이 훨씬 더 또렷해졌다. 이런 식이다. 하루는 출근하는데 갑자기 웅웅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엔 지하철 방송 소리려니 하고 흘려들었다. 그런데 소리가 멈추지 않는 것이다. ‘환청인가, 아프고 나서 내가 미쳤나’라고 생각했다. 웅웅 거림의 실체를 확인한 것은 사무실로 출근한 뒤였다. 이른 아침 사무실엔 부서장과 K 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웅웅 거림이 시작됐다. K는 주위를 둘러봤으나 아무도 없었다. 사내 방송도 아니었다. 신문을 보고 있는 부장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쪽에서 웅웅 거림이 계속됐다. K가 그쪽으로 신경을 집중하고 있으니 웅웅 거림이 말소리처럼 또렷이 들리기 시작했다.      


 아, 저 자식은 왜 아침부터 일찍 와서 신경 쓰이게 하는 거지. 코로나 아직 위험한데. 재택 하라고 다시 보낼 수도 없고. 신경 쓰이네. 신문도 못 보겠고. 나원 참.           


 사무실에서도, 전철 안에서도, 식당에서도, 산책하다가도 그 웅웅 거림은 계속됐다. 신경만 집중하면 웬만한 혼자 말이나 속내를 읽을 수 있게 됐다. 이런 일도 있었다. 그날 퇴근길 전철 안. 그 앞에 두 여성이 나란히 앉아 있다. 하나는 40대 중반 여성, 다른 하나는 80대의 할머니다. 고개를 돌리고 서로 외면하고 있지만, 동행이 분명했다. 그들이 소리 없는 대화 내용은 이러했다.            


 “네 년이 아무리 그렇게 잘난 척해도 넌 내 손 안의 원숭이야.”

 “노인네가 아주 실성을 하셨어. 왜 갑자기 전재산 사회환원이래. 장성한 아들과 손자손녀들이 다 멀쩡히 있는데.”

 “니 년이 어쩌다 이렇게 와서 알랑방귀 뀌는 속셈을 내가 모를 것 같으냐. 어디 계속 그래봐라. 진짜로 다 기부해 버리고 난 도망가 버릴까 보다.”

 “아이고, 노인네가 세상을 잘 모르셔. 기부도 멀쩡해야 하는 거라고. 치매 진단받는 순간, 기부서약해도 다 말짱 도루묵이네. 이 양반아. 어차피 다 우리 거라고.”

 “자식 놈도 똑같아. 어디 저런 족보도 모르는 년을 데려와서 집안 꼴을 이렇게 만들어.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엔 니들 버릇을 단단히 고쳐주고 말 테다. 손발 삭삭 빌고 효도하겠다고 하기 전엔 증여 어쩌고 어림도 없다. 이것들아.”          


 고개를 돌아보니 눈을 감고 자리에 앉아 있는 30대 남성과 그 앞에 서 있는 20대 여성의 신경질적인 속내 대화도 들려왔다.       


 “와 쥑이네. 그 년 다리. 엉덩이도 빵빵하고. 어디서 내리나. 함 쫓아가 볼까.”

 “이 **놈이 어디를 자꾸 쳐다보고 지*이야. 그렇게 실눈 뜨면 누가 모르냐. 븅신. 확 경찰에 신고해 버려? 아 정말 기분 젓같네. 저 **를 어떡해.”

 “야 그렇게 가방으로 앞 가리지 말고 좀 내려봐. 빵빵이 잘 안보잖아.”

 “이 새끼 죽탱이를 그냥 가방으로 한 대 갈겨 말어. 아유~~.”     


 그런 변화를 전해 들은 모친은 일을 서둘렀다. 더 이상 늦추면 더 큰 화禍를 피하지 못할 거라며 내림굿 날짜를 잡고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K의 집 한쪽에는 작은 신당도 마련했다. 며칠간 많은 사람들이 집을 바쁘게 드나들었다. 굿이 있었고, K는 신내림을 받았다. 그러나 그 모든 절차를 소리 없이 진행됐다. 관련 인사들의 옷도 평상복으로 부탁했고, 굿을 할 때도 요란스럽게 꽹과리나 북을 치는 것을 삼갔다. 아파트 경비실에는 집안 잔치가 있을 것이라며 이웃에서 민원이 들어오면 잘 설명 부탁드린다고 양해를 구해놨다. 실제로 이웃들은 집안 잔치 정도로 생각했을 정도다. 집안 식구들과 모친, 그리고 행사준비를 도운 무속인 몇 명을 빼고는 K의 접신接神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 때문에 K는 박수(남자 무속인)가 된 후에도 회사 생활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할 수 있었다. 그냥 포기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초고속 승진까지 하면서 말이다. 이제 남의 속까지 읽게 된 마당에 회사 생활쯤은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었다. 개인 업무는 물론이고, 회사 전체적으로 앞으로 뭐가 필요하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 지를 속속들이 알 수 있으니 경영진의 주목받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부서장은 물론, 임원, 사장까지 그를 시도 때도 없이 불렀다.  사장은 결국 K를 승진시켜 집무실 옆 기획실 팀장으로 앉혔다.      


 그렇다면 박수무당으로서의 신을 모시는 역할은? K의 해법은 디지털과 인터넷 기술이었다. 점占을 꼭 대면으로 만나야만 볼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이미 인터넷상에는 사이버 철학관, 사이버 사주 등 신종 업태가 성행 중인 시대다.  K는 그런 기술 발전을 적극 활용했다. 그는 일과 후 인터넷 점집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할매 도령’. 줌이나 구글 미트, 시스코 Webex 등 인터넷 화상 프로그램으로 얼굴만 보여주면 궁금증을 풀어주는 인기 무속인이 바로 K다. 특히 백발을 휘날리며 콧잔등에 수염이 거뭇거뭇한 캐릭터는 기괴하면서도 코믹한 분위기로 2030뿐 아니라 10대 층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아무도 그가 누구인지 몰랐으나, K는 어느새 세상이 다 아는 셀럽이 돼 있었던 것이다.            


 K는 이런저런 얘기 끝에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친한 친구를 바라보는 눈길로, 나에 대해서도 이미 알만한 것은 다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으로. 내가 너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어서 네 입으로 이실직고하라는 얼굴로. 그리고  K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파안대소破顏大笑했다. 두 사람이 손을 잡으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라는 즐거운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끝.


이미지=영화 박수건달 포스터 캡처


#코로나 #박수무당 #접신 #신당 #철학관 #사주 #무속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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