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의 뜬금없는 호의가 부담스러운 이유

슬직생 꿀팁 1... 상사 편(1)

by 이리천


아마 한 번쯤 이런 경험 있을 거예요. 무뚝뚝하던 상사가 갑자기 이상해지는 때 말입니다. 웃으며 아침 인사를 하지 않나, 커피 마시러 가자고 하질 않나, 전에 없이 친절한 행동을 합니다. 아무래도 낌새가 이상합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저러는 걸까. 상사 표정을 보면 더 궁금합니다. 웃고는 있는데 폼새는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입니다.


불안감이 엄습합니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는 대는, 아니 갑자기 친절해진다면 반드시 이유가 있습니다. 뭔가 부탁할 게 있다는 뜻이죠. 아니나 다를까. 상사가 갑작스럽게 저녁을 먹자고 합니다. 예정돼 있던 부서 저녁 회식을 취소하고, 단 둘이 가자고 합니다. 그것도 평소 예약하기 힘든 레스토랑이라네요. 이쯤 되면 덫이나 다름없습니다. 코너에 몰린 거지요.


식사 내내 상사는 부담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평소 묻지도 않은 질문을 계속해 댑니다. 회사 생활은 어떤지, 연애는 잘 되는지 묻습니다. 앞으로 결혼 계획은 있는지, 자녀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 묻지 않아도 될 질문을 계속합니다. 건성으로 답하지만 불안감은 더해 갑니다.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지경입니다.


어색한 저녁 식사가 다 끝나갈 무렵, 드디어 본론이 나옵니다. "사실은 이번에 회사에서 새로 TF팀 하나 만들었어." "자네가 가서 좀 수고해 줬으면 좋겠어." “다녀오면 바로 승진이야. 걱정하지 마.” 아, 네, 네, 하면서 얘기를 듣던 중 갑자기 현타가 옵니다. TF팀장을 회사에서 가장 악명 높은 K 부장이 맡는다는 겁니다. 완벽한 덫에 걸린 걸 그제야 깨닫게 됩니다.


아차 싶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내부적으로 논의가 끝나 있고, 내일이면 인사 공지가 난다는 겁니다. 상사의 똥 마려운 강아지 표정이 바로 그것 때문이었던 거죠. 누군가는 보내야 겠고, 보내자니 다 거절할 게 뻔하고, 그래서 만만하게 고른 게 당신일 겁니다. 그러나 섣불리 말했다가는 사표 쓰고 튕겨 나갈 것 같고, 그래서 미루다 미루다, 인사 전날 통보한 것입니다. 인사 후 발령 난 팀에서 사표를 쓰게 되면, 그건 팀장의 책임에서 벗어나게 되니 최대한 통보를 미루는 치밀함!!


뒤늦게 평소 부장의 능력을 과소평가한 점, 아무 대책 없이 식사 자리까지 끌려 온 걸 후회하지만 이미 뒤늦은 한탄 일 뿐입니다. 식사자리에서 당장 회사 그만두겠다고 통보할 수는 없는 일. 한숨만 쉬며 집으로 터벅터벅 돌아갑니다.


회사 생활 만만찮습니다. 언제 어떤 불상사가 터질지 모릅니다. 그래서 항상 대비하는 게 필요하지요. 특히 사무실이 유난히 조용하다거나, 누군가 당신에게 유난히 친절하다면 조심하는 게 좋습니다. 해일이 몰아치기 해안이 가장 고요한 법. 당신을 향해 어떤 파도가 오고 있을지 모르니까요.


특히 상사가 갑자기 나긋나긋해졌다? 워닝 사인입니다. 절대 웃어넘기지 마세요. 다정함을 연마하느라고 그랬을 리는 만무합니다. 호의엔 반드시 목적이 있습니다. 대책 없이 순진하게 호의를 호의로만 받아들이다가는 된통 당하기 십상입니다. 저의를 의심하고,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를 짜고 방어 논리를 생각해 놓는 게 현명합니다.


회사에서의 친절은 '선의'보다는 '전략'일 때가 많습니다. '기회'로 포장된 일이 사실은 '벌칙'일 수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 대책 없이 걸려드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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