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이후 남편과 같이 만화카페를 운영하기로 결심한 건 아니다. 심지어 절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1년 이상 노사 관계로 지내보니 동업보다는 차라리 노사 관계가 낫겠다고 결론지어버렸다.
예측 기준은 경험과 직감뿐이지만, 동업자 관계로 발전할 경우 태평성대 시대가 일촉즉발 정세로 변해버릴 것 같다. 함께 운영하다 마음 불편한 일이 생기면 니탓내탓하며 입을 삐죽거릴 수도 있고, 사생활의 경계가 희미해지니 너와 나의 시간에 대한 존중탑이 무너질지도 모른다.
더욱이 나의 힐링 공간이 생업이 되면 지금 이 좋은 감정도 사라질 것이다.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그냥 알바 사모로 남기로 했다. 하지만 만화카페 사장이 되기로 결심했던 남편처럼 "이게 내 꿈이야"라고 할만한 것은 아직 찾지 못했다. 조금씩 초조해졌다.
함께 출근한 주말, 오픈 준비를 마치고 남편에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건넨 후 나를 위한 달달한 바닐라 라떼를 만든다. 남편이 커피를 한 손에 들고 접이식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회사 그만두면 평일에도 이렇게 알바생이랑 같이 출근하는 건가? 생각만으로도 설렌다."
"철 좀 들어. 나 백수 되는 거야. 인생이 소꿉장난이냐?"
"소꿉장난 맞지. 단순하고 재미있게. 그래야 행복해져. 당분간은 소꿉장난처럼 내 옆에서 놀아. 그럴 자격 있어."
뭐지, 갑자기 편해진 이 기분은? 바닐라 파우더 위에 에스프레소를 부으니 분말들이 금세 녹아버린다. 마음의 부담들도 함께 스르르 녹아내린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이 사람, 내가 사회인이 될 무렵부터 쭉 함께 했었네. 19년 직장 생활을 지켜봐 준 사람이다. 나의 유일한 관객으로서 충분히 잘했다고 격려해주니, 따뜻하고 단단한 힘이 된다.
이제라도 단순하고 재미있게 소꿉장난처럼 살아볼까?
P.S. 퇴사의 꿈을 이룬 것은 결심한 날로부터 약 1년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