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tart] 비틀거려도 앞으로는 가는 중

자전거

by 소소라미

남편 출퇴근용 자전거를 함께 보러 갔다가 덜컥 내 것까지 사버렸다. 가끔 자전거 라이더를 보면 멋지고 낭만적으로 보이긴 했지만, 다음 생을 기약하며 마음 서랍 어딘가에 넣어둔 동경이었다.


남편은 20년 만에 가져보는 새 자전거라며 신이 나서 씽씽 달렸지만, 난 질질 끌고 걸어서 집으로 왔다. 어릴 때 내 자전거는 당연히 없었고 친구 집 놀러 가서 야매로 잠깐잠깐 배워본 게 다였으니 도무지 자신이 없었다.


아예 탄다고 하는 차라리 속 편한 수준이었다.


그날, 남편 만화카페에 손님이 몰리면서 급히 땜빵 알바를 나와달라는 전화가 왔다. 그냥 걸어갈까 했는데, 큰 아이가 본인도 매장 근처에서 볼일이 있다며 함께 자전거를 타고 나가자 했다.


비틀비틀 10미터가 멀다 하고 멈춰 섰다. 두 발 자전거지만 내 발로 바닥을 지치며 나아가고 있었다. 내 발 달린 네발 자전거라니. 아무도 내 모습에 관심이 없을 거라 위로하면서도, 자꾸만 누군가가 이 멍청해 보이는 성인 초보 자전거 라이더를 한심하게 쳐다보지는 않을까 의식하게 되었다. 더군다나 큰 아이가 뒤에서 쉴 새 없이 코칭을 해댔으니 눈에 띌 게 뻔했다.


"엄마 그냥 가 일단 페달에 발을 얹고 앞만 보고 가."


주입식 학습의 효과인가, 돌아오는 길은 그나마 직진은 가능한 수준으로 발전했다.


그날 밤, 여전히 신이 난 남편은 가족이 다 함께 동네 자전거 전용 둘레길에 가보자고 제안했다. 4명 모두 자전거 오너가 되었으니 기념하고 싶다고 했다. 내 수준에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앞뒤로 가족들이 있으니 난 중간에서 직진만 하면 될 것 같았다. 다들 내 속도에 맞춰주겠다고 했다.


우리 4명은 나란히 줄을 맞춰 주행했고 예상대로 구멍은 나였다. 답답한 다른 라이더들은 연달아 우리 대열을 추월해 나갔다. 내 몸 하나 컨트롤 못하는 상황이니 커브길, 언덕길, 번번이 고비였고 반대편에서 다가오는 자전거가 덤프트럭처럼 거대해 보였다. 그들은 비틀 대는 나에게 연신 경적을 울려댔다.


포기하자.


결국 가족 주행은 10분 만에 끝이 났고 가족 중 나만 유일하게 걸어서 자전거를 끌고 집으로 왔다. 그날 이후 한동안 자전거를 타지 않았다.


해보자 해보자 해보자


어느 재택 근무일 아침, 꿈에서 계시라도 받은 듯 주차장에 처박힌 자전거 생각이 났다. 길에 사람도 없는 시간이고 날씨도 좋으니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급정거와 비틀비틀은 쉴 새 없이 이어졌고, 멈추고 다시. 또다시. 균형 잡기 연습은 계속되었다. 누가 봐도 처참한 실력이지만 생각보다 탈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탁 트인 길이 나오면 몽글몽글 벅차오르는 감동마저 느껴졌다.


하지만 좁은 길은 달랐다. 평소 걸어 다닐 땐 좁지 않다고 느꼈던 길들 조차 자전거로 다니니 너무 비좁고 아슬아슬하게 느껴졌다. 부딪칠 것 같고, 입간판 같은 장애물 하나라도 있으면 통과를 못할 것 같아 두려웠다.


"할 수 있어"


육성으로 기합 소리를 냈다. 올림픽 경기에서 파이팅을 외치는 국가대표의 비장함이었다. 그리고 무사통과.


어쩌면 내 목소리는 자전거뿐만 아닌 나의 현재를 응원하는 것이었을까. 회사라는 마라톤 경기장 반환점 앞에서 갑자기 경로를 이탈해 새로운 종목에 도전해 보겠다며 다시 시작하고 있는 거다.


실패해도 돼.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거야. 포기하지 말자.


이 날의 도전 덕분에 자전거를 포기하지 않았다. 한산한 아침 길을 자유롭게 달리는 기분이 좋았다. 하늘을 달리는 기분이려나.


실패했던 그 길을 달리다


혼자 자전거 연습을 하다 문득 그 길이 가고 싶어졌다. 할 수 있을까? 심지어 나 혼자야. 에라 모르겠다. 단지로 향하던 자전거 머리를 돌렸다.


자전거를 산 날 실패했던 그 자전거 전용 도로에 진입했다. 대낮을 향해가는 둘레길은 밤보다 아름다웠다. 시야가 확보되니 자신감도 붙었다.


하나 둘 반대 방향 자전거들도 무리 없이 지나갔다. 내 속도에 답답한 라이더들의 추월은 있었지만 "그러라 그래" 양희은 님의 에세이 제목처럼 마음에 여유를 담으니 초조하지 않았다.


지난번에 포기를 말했던 그 언덕 너머 건너 동네까지 다녀왔다.


와 해냈어.


(비록 마음속 외침이었지만) 금메달이라도 딴 것처럼 포효했다. 포기 이후 그냥 멈췄었다면, 이런 환희는 느끼지 못했을 거다. 진짜 실패자는 실패했다고 포기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부서진 조각들을 끼우고 맞춰서 똑바로 일어나면 된다. 자전거를 내발로 구르던 비틀비틀거리던 다시 앞을 향하다 보면 나에게 맞는 균형과 속도를 찾게 되고, 할 수 있다고 자신을 믿게 될 것이다.


내 실력이 많이 늘었는지는 모르겠다. 여전히 사람들이 많은 길은 두렵다. 불쑥불쑥 나타나는 어린아이들이나 따릉 따릉 경적을 울려도 갈지자로 걷는 어르신들과 충돌할까 무섭다. 내 자전거도 갈지자라서 그런가보다.


하지만 안 하니까 또 못하고 영원히 안 하는 바보가 되고 싶진 않다. 꾸준한 연습을 통해 불안감도 극복해보고 싶다. 그래서 자전거를 계속 타고 있다.


어느 이른 아침, 남편과 함께 라이딩에 나섰다.


"오! 실력 많이 늘었네!"


남편은 일주일에 서너 번 식재료 배달이 오는 날이면 아침 일찍 매장에 다녀온다. 정식 출근하는 10시 반까지 온도 유지가 중요한 냉장이나 냉동 식재료를 밖에 그대로 놔둘 수 없어 냉장고에 정리해 두기 위해서다.


한산한 "이상한 나라의 출근길"을 나란히 달리며 큰 소리로 말한다.


"나, 다음에는 둘레길 완주해 볼 거야"

"퇴사하기 전에 자전거 타고 출근도 한번 해봐."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도 안 되는 게 어딨어. 지금 우리가 이 시간에 같이 자전거 타고 매장에 나가는 것도 말도 안 되는 일인 걸."


맞다. 말도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네. 재택 근무일 출근 임박 전까지 함께 식재료 정리를 하고 자전거를 타는 일상이라니. 아슬아슬 스릴 만점 이중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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