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tart] 인생도 일자로 곧게 펴보겠어

일자 다리 스트레칭

by 소소라미
마음을 강하게 먹어


힘들다 말할 때 누군가 이렇게 조언하면 사춘기 때의 반항심이 샘솟기도 했다. 먹지도 못하고 소화도 안되는데 뭘 또 먹으라는 거야!

나도 아는데
강한 거 그거 못 먹겠다고요!


멋있게 say goodbye 하겠다고 졸업 일기를 쓰면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두려워졌다. 스스로 포기를 선택한 건지 용기를 선택한 건지도 헷갈렸고 이미 이들 사이에서는 쫄깃한 승부가 펼쳐지고 있었다. 포기가 승리한다면 영원히 못 일어날 것만 같았다.


강한 거 그거 먹어봐야 하나. 망설여졌다.


결국 강한 마음을 먹겠다며 동기 부여 명언을 외우는 방법은 선택하지 않았다. 체할 것 같았다.


대신 [시작하기엔 너무 늦지 않았을까]의 저자 밸라 마키가 무작정 달리기를 한 것처럼 아무 생각이 나지 않도록 세상 단순한 걸 했다. 그녀처럼 숨이 차서 죽을 것 같은 달리기는 아니었고 그저 다리가 찢어질 것 같은 일자 다리 스트레칭이다.

발단은 요가였다. 올해 초 만화카페에서 「나는 습관을 조금 바꾸기로 했다」라는 책을 읽고 나서 요가를 하기 시작했다. 루틴이라기엔 애매하고 아침이나 밤에 잠깐씩 시간 날 때 하는 소소한 꼼지락이다.

왕초보라도 이런저런 시퀀스를 선택하다 보니 일자 다리 스트레칭 동작이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다른 동작들보다 유독 이걸 할 때마다 우스워보였다. 누가 봐도 90도 밖에 안되는데 낑낑대면서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는 꼴이라니.


그런데 꾸준히 하다 보니 발 각도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스트레칭할 때는 근육이 다 찢어져 나가는 느낌이지만 릴랙스를 해야 하니 갈 곳 없는 힘들은 모두 얼굴에 쏠린다. 일자 다리는커녕 주름살만 하나 더 늘 뿐이라며 자조 섞인 디스를 한다. 이 지옥 같은 시간을 언제 버티나 싶고 포기할까 싶어 진다. 길어야 1~2분인데 12번도 마음이 왔다 갔다 한다. 호흡을 놓치면 무리가 갈 수 있어 끝까지 숨을 내쉬어야 한다.


상체를 곧게 펴서 배가 바닥에 닿을 있도록 앞으로 숙여야 하는데 이 자세가 나오려면 안쪽 허벅지를 바닥에 댈 수 있도록 굴려줘야 한다. 엉덩이가 많이 빠지지 않은 상태로 나만이 알 수 있는 최적의 상하체 밸런스가 요구된다. 그래야 허리와 팔다리가 곧게 펴지는 스트레칭이 완성된다. 물론 아직 내 몸뚱이가 이 자세를 완성할 리는 없다. 괴성 남발과 함께 조금씩 완성해 나가는 것뿐. 그런데, 웃기게도 이 우스꽝스러운 극한의 느낌이 좋았다.


기분 좋은 고통은 어지간히도 지옥 같아서 덜 지옥 같은 마음 따위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사라진다. 고통을 참아내면 곧게 펴지는 몸까지 덤으로 갖게 된다.


세상에는 참 정직한 것이 많다. 시간, 몸. 얘네들만 믿어도 다리 쭉 뻗고 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내 삶도 일자로 곧게 펴보자


다리를 양옆으로 하고 후후 깊은숨을 내쉬면서 천천히 바닥을 향해 상체를 숙인다. 녹아들어 간다고 상상을 한다. 손을 포개어 이마 아래에 놓는다. 길면 그대로 2분 정도 버텨본다. 초단시간 투자로 상념을 날려버릴 수 있으니 그야말로 극강의 효율이다.

용기야, 꼭 포기를 이겨야 해!


회사에 say goodbye 하기 전에, 더 이상 내 몸이 늘어날 일은 없을 거라고 다 굳었다고 믿어 버린 포기와 작별을 고해볼까 한다. 그리고 마음 역시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거고 아직은 말랑말랑하다고 믿으며 용기와 손을 잡아보겠다.


내 삶도 일자로 곧게 스트레칭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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