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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아 Oct 01. 2021

5. 새싹이 고목이 되어가는 동안


카사 푸에고에서 나온 캐모는 동쪽 길을 따라갔어요.

길고 긴 산길을 빠져나와 작은 냇물을 지나니 나타난 커다란 고목에 대고,

캐모는 외쳤어요.


"요정님, 요정님. 편지가 왔으니 일어나 주세요."


그러자 나무 속에서 얼굴이 살며서 나타나더니 사람의 몸이 튀어나왔어요.



"누가 나한테 편지를 보냈다고?"

"여기요."


요정은 발신인이 없는 편지를 읽더니 얘기했어요.


"아하···. 그래서 캐모, 이다음은 어디를 가니?"

"친구를 찾으러 여행을 가요.

혹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걸 찾는 여행자를 보셨나요?"

"글쎄다. 기억이 나질 않네. 하지만 다른 질문에는 답을 해줄 수 있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걸 찾는데, 요정님은 뭐가 소중한지 아세요?"


"음···. 이 자리에서 내가 셀 수 없을 시간만큼 보는 게 뭔지 아냐?"

"뭔데요?"

"바로 이 자연이야.

이런 몸인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한정적이지만, 자연은 나한테 항상 새로운 풍경을 보여줘.

자유로운 씨앗이었던 내가 이곳에 처음 정착했을 때 든 생각이 뭔지 아니?"

"음··. 풍경이 예쁘다 같은 건가요?"

"끝없는 외로움이었단다. 너무 쓸쓸했지. 이 주변에는 나 말곤 아무것도 없었거든.

혼자 쓸쓸히 여기서 외로움과 싸웠고, 체념하였고, 앞으로도 고독할 줄 알았지.

그런데,

절망에 빠져 잠을 자는데 어느샌가 주변에 기척이 생기더니

풀이 나고, 개울이 길을 내고, 민둥산이 푸르러지지 뭐니?

이렇게 내 곁에 있어준 게 내 주변에서 자라나는 들풀들과 개울, 저 멀리서 날 지켜봐 주는 산이었단다.

내 친구들이지.

여기서 얼마나 많은 나의 친구들이 태어나고 바스러지고 다시 태어났는지 몰라.

내 친구가 되어준 지금의 이 아이들을 난 언젠가 또 떠나보내겠지.

하지만 난 그만큼 새로운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 줄 거라 믿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어디로도 갈 수 없는 나를 위로해 주는 친구를

나는 소중히 하지 않을 수 없어."


요정의 말이 끝나자 나무와 요정의 몸통 사이의 구멍이 더 크게 갈라지기 시작했어요.

요정은 자신의 틈에서 편지 두 장을 꺼내 주며 말했답니다.


"이건 가튼쿤드의 리스티 거리 뒷골목에 사는 몽상가에게, 이거 하나는 네 거니 여행이 끝나면 읽으렴.

나중에 또 오려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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