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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아 Oct 02. 2021

6. 내가 떠날 줄 알았더라면


가튼쿤트에서 더 깊숙한 곳



리스티 가의 비탈진 골목에 도착한 캐모는 어느 집 앞에 도착했어요.

그 앞에는 페인트가 벗겨진 벽에 기대 바람을 쐬고 있는 몽상가가 있었지요.

편지를 읽은 몽상가는 말했어요.


"이제 어디로 가, 캐모?"

"친구를 찾으러 여행을 가요.

혹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걸 찾는 여행자를 보셨나요?"

"그건, 기억이 나질 않네. 하지만 다른 질문에는 답해줄게. 아마도 말이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걸 찾는데, 형은 뭐가 소중한지 아세요?"


"나? 글쎄, 잘 모르겠는데···. 나?"

"네, 형이요."

"그러니까 나. 정확히는 ··· 자존심?"


캐모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몽상가가 말했어요.


"겨우 자존심이라고 생각해도, 그런 거에 예민한 사람은 의외로 많아.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는 꽤 중요해.

다른 사람들한테 필요 가치가 있다는 마음이 살아가면서 얼마나 큰 자신감을 주는데.

특히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더더욱 말이야···.

내가 그랬거든."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나요?"

"아직도 좋아해.

단지, 내가 멀리 떠나기 때문에 마음을 접으려는 거야.

전출 통지서가 왔어. 한 달 뒤면 프란치칼로베로 갈 거야. 그걸 말했더니 그 애가 나중에라도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대.

활짝 웃으면서 말하는 걸 보니까, 같이 가자는 말은 못 하겠더라.

···이제는 그 아이랑 함께했던 추억이, 꺼져가는 은하수 별들처럼 잊혀져가겠지."


그가 무거운 한숨을 쉬었어요.


"거절당한 뒤의 관계가 깨질까 봐 무서워서 여태껏 말하지 못한 거지만, 난 결국 나 자신을 우선시한 거지···

좋아하는 사람한테 가능성 모를 감정을 확인받느니 자존심을 지키는 게 낫다고 판단한 거야.

이건 무의식적으로라도 내 자존심을 소중히 여겨서 그러지 않았나···, 이제 와서 그런 생각이 드네.

그래도 내 마음을 사실대로 말하고 같이 가자고 했다면 달라졌을까?

그냥 자존심을 뛰어넘는 용기만 있었으면 좋겠어.

고백하게."


몽상가는 얼굴을 찡그리면서 생각에 잠겼어요.


"미안해. 이때까지 한 말들이 뭔 소린지 나도 모르겠네.

신경 쓰지 마."


주머니에서 편지 두 장을 준 몽상가가 그의 옆에 있던 문을 열었어요. 그러자 그 문 너머로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왔어요.


"여길 내려가서 가장 커다란 수로를 따라 가. 27개의 통로와 24개의 갈림길을 지나면 구멍 맨 끝의 빛을 찾아. 벗어나면 숲이 나올 거야.

이건 잊혀진 숲 속 폐허 둥지에 사는 고집쟁이 촌장한테. 이건 네 거, 여행이 끝나면 읽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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