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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아 Oct 05. 2021

8. 바스러진 줄 알았지만 다시


마을을 감싸는 나무들을 벗어나 어둑어둑한 밤이 되어서야 캐모는 힙트라이빈 숲에 도착했어요. 숲 입구 쪽에는 거대한 나무집이 있었죠. 창문으로 인영이 보였어요.

인영이 캐모를 향해 손을 흔들었어요.


"이런 숲 속에는 사람이 별로 안 오는데, 어쩐 일이신가요?"

"편지를 전해주러 왔어요."

"밤이 늦었으니, 들어오세요."



캐모는 나무기둥 안으로 들어갔어요.

를 반갑게 맞이하고 잘 곳을 내어준 숲지기는 캐모를 저녁식사에 초대했답니다.

달콤한 소스를 바른 새고기, 샐러드, 감자구이···.

맛있는 식사를 끝낸 뒤 숲지기는 각종 과자와 차를 가져왔어요.

후식을 먹으며 캐모는 편지들을 건네줬죠.

숲지기는 편지들을 찬찬히 살펴보다가 발신인이 없는 편지를 읽고 말했어요.


“이다음엔 어디로 가는 거예요, 캐모?”

"친구를 찾으러 여행을 가요.

혹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걸 찾는 여행자를 보셨나요?"

"아하··. 기억이 나지 않는 것 같아요. 다른 질문은 있나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걸 찾으러 여행을 가는데, 아저씨는 뭐가 소중한지 아세요?”


“저한테 소중한 건 안정적인 삶이랍니다."

"안정적인 삶이란 건···?"

"어렸을 때 좋지 않은 환경에서 이리저리 옮겨가며 지냈거든요.

기억도 안 날 때 부모님과 헤어지고, 비슷한 아이들과 몰려다니고,

커서는 정신 못 차리고 혼자 떠돌이 생활을 했죠.

소매치기, 가판대,  도둑질, 광대, 밀수···.

어떤 일은 정말 죽을 뻔했어요."


그가 찻잔에 차를 따르며 말했어요.


"하고 싶은 걸 힘들다고 버리는 사람들 속에서, 할 수 있는 걸 찾기도 버거워

할 일 못할 일 찾으면서 그냥, 열심히 살기만 했답니다.

겨우 집 살 만큼의 돈을 다 모았을 때는···.

그냥 편하게 누워서 잘 곳만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숲지기가 체크무늬 쿠키를 입에 넣었어요.

우물우물거리는 입이 말했어요.


"그래서 여기까지 찾아왔어요.

여기서는 숲을 돌아다니면서 문제가 안 생겼는지 보기만 하면 되요. 가끔 사냥도 하고.

외진 곳이지만 편히 살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곳이죠.

물론 있는 건 살림살이들이랑 자연, 가끔 밥 달라고 찾아오는 청설모밖에 없는 정적인 생활이지만."


캐모가 물었어요.


"한결같이 똑같은 생활은 지겹지 않으세요?"

"전혀요.

사람은 심심해져 봐야 비로소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어요.

전 여기 오고 2주가 지나서야, 내가 이때까지 뭘 해보고 싶다는 걸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죠.

그리고 하고 싶었던 걸 찾아서 하게 됐답니다."


숲지기가 토끼 모양 쿠키를 차에 찍으며 말했어요.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노래를 부르고,

아름다운 경치랑 신기한 식물을 찾으러 다니고···.

옛 친구를 찾으러 모험을 떠나는 일 같은 거 말이에요."


 그가 차에 설탕을 3조각 넣으며 이야기했어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일생을 살란 이야기는 아니에요.

너무 많은 변화를 안고 살아가는 건 감당하기 힘드니까,

한결같은 삶 속에서 잠깐의 전환점을 찾는 게,

인생의 낙이란 거죠."


다음 날 아침, 숲지기는 캐모를 배웅하며 편지 두 장을 주었어요.


"북동쪽의 땅 끝으로 가게 되면, 이건 페일이라는 항구 마을의 부둣가에 사는 형제들에게, 이건 당신에게.

여행이 끝나면 읽으면 돼요.

편안한 여행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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