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알바는 늘 배고프다.

난 왜 이러고 사는 것일까?

by silvery rain 이혜영

아침 6시에 눈을 뜬다. 간밤에도 새벽 2시가 다 돼서 잤다. 난 왜 이러고 사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할 법도 하지만 그럴 시간도 없다. 대충 밥을 챙겨 먹고, 아버지의 밥까지 챙겨놓고 집을 나선다.

난 아버지와 둘이 살았다. 결혼한 자식들과 사는 것이 불편하다는 아버지는 나랑 같이 사는 것이 편하다고 했다. 난 아버지와 사는 것이 편하지 않았다. 알바와 공부를 병행하면서 집안 살림도 해야 했으니까. 이게 나의 백그라운드였다.


불광동에서 여의도까지 가려면 한 시간 반은 걸린다. 지하철을 갈아타고, 버스를 갈아타고, 10여 분은 걸어야 한다.


주택은행. 이젠 사람들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고, 역사 속에만 존재하는 은행이다. 그것도 사실, 오늘 처음 알았다. 무식한 나는 주택은행이 아직도 있는 줄 알았다.

주택은행 본점으로 알바를 하러 간다. 80년대 후반의 내가.

과외만 틈틈이 하고 학교만 다닌 덕분에 학점은 그럭저럭 잘 나왔다. 장학금 얘기는 하고 싶지도 않다. 장학금은 절대 내 차지가 될 수 없는 상상 속의 왕자님 같은 존재였다.


주택은행에서 내가 했던 일은, 번역이었다. 프랑스어로 된 금융 사전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것. 죽을 맛이었다. 말이 불문과지, 이제 2학년 1학기만 마친 내가, 번역은 무슨 번역. 그래도 잘하는 척, 사전만 오지게 찾아댔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친구를 한 명 데려오라고 해서 공부 잘하는 친구를 데려갔다. 나의 부족함을 채워줄, 장 씨 학금이를 차지한 ‘다 가진 녀’를. 그런데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장학금을 받았어도 우리는 역시 2학년 1학기였다. 나보다는 훨씬 나았지만, 그 애도 힘들어하기는 마찬가지. 그런데 우리보다 더 힘들어한 사람이 있었다. 우리를 담당한 S주임. 우리가 사전 찾아가며 머리 싸매고 번역한 것들을, S주임이 끙끙거리며 다시 번역하고 있었다. 뭐라 한 마디쯤 할 수도 있었는데 묵묵히.

면목 없고, 미안한 마음이 연기처럼 가슴속에 들어찼지만, 심호흡 한 번으로 몰아내고, 즐겁게 알바를 했다. 무엇보다 식당 밥이 너무 맛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스트레스를, 미안함과 함께 털어낼 수 있었다. 그곳에서 먹은 잔치국수와 프렌치토스트 맛은 잊을 수가 없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의 은행 알바가 끝나면 종로로 갔다.




흰머리에 흰 양복을 입은, 뚱뚱한 할아버지가 웃고 있는 곳, 켄터키 프라이드치킨으로 알바를 하러 갔다.


주택은행에서 종로까지 가는 여정도 험난했다. 요즘은 광역버스도 있고, 버스전용차선도 있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택시나 자가용을 이용하는 것보다 빠르지만, 예전에는 버스 안에서 1시간이나 2시간 잡아먹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난 쫄쫄 굶은 상태로 켄터키 닭집 알바를 할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 아니 모든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점이 그럴 것이다. 걔들은 상당히 계급적이다. 입사한 순서대로 대우가 달라진다. 입사한 순서가 늦으면 나이가 많든 적든 계급이 낮아지는 것이다. 가장 짬밥이 찬 사람이 카운터를 보고, 그와 비슷한 수준이 요리를 담당하고, 나 같은 초짜는 홀 청소, 쓰레기 버리기, 화장실 청소 등을 하는 것이다.

하루는 고등학생 알바-나보다 짬밥이 찬 애. 홀 담당 중 1순위-가 나를 불렀다.


“언니, 고마워.”

“뭐가?”

“콜라 한 잔만.”

‘이게 언니라면서, 어린것이! 심부름을 시켜?’

“미안해.”

“응?”

“못 들어줘서.”

“우엥~”


마지막 ‘우엥’에 내가 졌다. 어린것이 배가 고파서 콜라 좀 가져다 달라는데, 못 갖다 줄 것도 없지.

우리는 모두 배가 고팠다. 그래서 우리는 허기를 콜라나 딸기잼으로 달래곤 했다. 그 닭집의 방침상 알바생들은 영업시간에 음식을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영업이 끝난 후에도 남은 음식들을 먹을 수 없었다. 남은 음식들은 모두 폐기처분이었다. 흰옷 입은 뚱보 할아버지는 심술보였다.




또 이런 날도 있었다. 홀 담당은 나만 빼고 다 고등학생 알바였다. 한 아이가 나를 불렀다. 아주 작은 목소리로.

“언니, 언니!”

“왜?”

“언니 빨리 와봐.”

“왜?”

그 아이가 부른 곳은 화장실 안.

“빨리 와 빨리.”

가보니 그 애와 함께 있던 다른 아이의 손에 치킨 바구니가 들려있었다. 손님이 남기고 간, 전혀 손도 대지 않은 치킨과 비스킷이 들어있는.

“우리 이거 먹자.”

“응?”

“놔두고 갔어. 싸웠나 봐.”

“야! 더럽게! 그리고 다시 오면 어떡해?”

“뭐 어때? 아예 손도 안 댄 거야."

"다시 오면 어떡할 건데?"

"치워 버렸다고 하지.”


먹었다. 안 먹으면 그 아이들이 민망해할 것 같아서.라고 말하고 싶지만, 너무 배고파서. 뭐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맛있었다. 그 아이들의 행복해하던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또, 연령대가 비슷한 집단이라서 그런지, 닭집에선 제법 에피소드가 많았다.




비 오는 날이었다. 비 오는 날은 몇 배로 힘들다. 검정과 흰 타일로 돼 있는 바닥은 비가 오면 얼룩이 심하게 졌다. 따라서 우리는 쉴 새 없이 대걸레질해야만 했다. 그런데 빌어먹게도 그놈의 타일은 물이 묻으면 미끄러웠다. 그날도 열심히 대걸레질하고 있었다. 난 일을 할 때는 즐겁게 하는 편이라서 즐겁게 하고 있었다.


그런데! 너무 즐거웠는지 쫙~ 미끄러져 자빠졌다. 홀 한가운데서 뒤로 발라당. 치마도 뒤집혔을 거다.


누군가 손을 내밀어줬다. “괜찮으세요?”라고 상냥한 미소를 지으면서. 그윽한 목소리로. 창피한 마음에 고개도 못 들고 있다가 남자의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들었다.


고 하고 싶지만~


아~무도 없었다. 흑기사나 백기사 하다못해 누렁 기사라도 있었으면 했지만, 그런 일은 소설이나 영화 속, 아니면 상상 속에만, 그것도 이쁜 것들한테나 존재하지, 현실 속의 나한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힐끗 보다가 고개를 돌리는 사람, 웃음을 감추는 사람, 조금은 걱정스러운 표정이지만 모른 척하는 사람....

이럴 때는 큰 소리로 떠들어야 한다. 그간의 경험으로 터득한 거다.


“땡땡아, 나 자빠졌어.”

“정말? 어디서?” 웃음.

"조기! 저 한가운데서." 호탕하게 이어지는 웃음.

“조심하지!” 또 이어지는 웃음.

“아, 쪽팔려 죽는 줄 알았어.”

계속 이어지는 즐거운 웃음.


젊은 날의, 배고픈 알바생들은 웃음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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