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면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다. 현장 체험 학습에 덧붙여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나의 경우엔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지만, 당시에도 '으, 저 사람 싫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비호감인 사람도 있었다.
이 사람은 이래서 좋아, 저 사람은 저래서 좋아. 하는, 아둔할 정도로 낙관적인 성격이기에 당시에 피곤하게 생각됐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게다가 그 사람들이 나한테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냥 잊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할 때였다.
@ 백화점
80년대 말엔 할인 체인점인 '삼(?) 마트' 같은 게 없었다. 그래서 명절이면 많은 사람이 백화점으로 몰려갔다. 백화점은 명절마다 '명절 특수'를 노렸다. 이에 따라 명절 알바가 생겨났다. 추석 특수를 맞아 강남의 땡땡 백화점, 과일 포장 파트에서 알바를 하게 됐다. 처음엔 선물 포장 담당이라고 해서 작은 선물꾸러미를 포장하는 곳인 줄 알았다. 그런데 담당자가 나를 과일 파트로 보내버렸다. 체구는 작아도 힘이 세 보였을까? 내가 하는 일은 그냥 멀뚱멀뚱, 약간씩 미소 짓고 있다가 과일 선물 세트 살 사람들을 응대하는 것이었다.
80년대 말의 강남은 확실히 내가 살았던 강북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그곳의 사람들은 옷을 간편하게 입었다. 추석이어도 아직 가을바람이 불기 전이라서인지, 나시티와 반바지 차림이 많았다. 재킷 안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듯한 옷차림도 있었다. 안 걸친 듯 걸쳤고, 막 입은 듯했으나 갖춰 입었다. 그들에게서 서구의 자유분방함을 보았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80년대 말엔 꽤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이들이 내밀던 수표였다.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10만 원 권 수표를 내고 간식거리들을 사 갔다. 아이들이 내밀던 수표는, 어른들의 손에 들린 막대사탕만큼이나 낯설었다.
4일 동안의 알바를 마치고 급여를 받으러 사무실로 갔다.
경리직원에게 급여를 받고 문을 나서기 직전이었다. 직원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부장에게 인사를 할 때였다. 갑자기 부장이 날 끌어안으려고 했다.
“한번 안읍시다.”
"?"
뒤로 빼는 내게 부장이 빙글빙글 웃으며 말했다.
그리곤 다시 내게 팔을 뻗어왔다.
“싫어요.”
뒷걸음질 치며 조그만 소리로 싫다고 했다.
“왜 싫어? 딸 같아서 예쁜 여대생 한번 안아보려고 했는데.”
다른 직원들의 애매한 표정.
‘상습범이구나.’
가급적 인상 쓰지 않고, 웃으며,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제기랄 땡땡이! 딸이란 단어를 빼든가, 예쁜 여대생이란 단어를 빼든가.
짜증 나는! 아버지도 아닌 게!
추한 직장인 땡땡이 같으니라고!
아르바이트는 단기 알바와 장기 알바로 나뉜다.
장기 알바는 고정된 수입을 얻을 수 있으나, 시간 대비 수입이 적다.
단기 알바는 기간은 짧지만 단기간 내에 목돈을 만질 수 있다.
2021년 현재는 최저임금이 시간당 8,720원으로 측정되어 있지만 내가 알바를 할 당시인 8, 90년대에는 최저임금이라는 개념이 유명무실했다. 따라서 최저임금보다 적게 받을 수도 있었지만, 많게 받을 수도 있었다. 여기에 단기 알바의 장점이 있었다. 대부분의 단기 알바는 구인이 절박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급여가 상당히 높았다. 며칠만 일해도 장기 알바의 월급을 가져갈 수도 있었다.
@ 논술 첨삭
86, 87년 두 차례를 끝으로 사라졌던 대입 논술이 90년대 들어서 재등장했다. 아르바이트 일자리의 종류가 하나 더 생긴 것이다. 논술 첨삭 알바는 꿀 알바에 해당했다. 하루 종일 논술 답안지를 들여다보며, 오·탈자를 가려내고, 비문을 정정하고, 첨삭을 해야 해서 머리가 아프긴 했지만, 짭짤한 급여 덕분에 흐뭇한 미소가 절로 나오는 꿀 알바임에 분명했다.
논술 알바는 규모가 상당했다. 학원 자체 내에서 할 때도 있었지만, 강남의 모 센터에서 대규모로 행해질 때도 있었다.
강남 한복판의 강당에서 천여 명의 남녀 대학생과 취준생, 미복학생이 모였다. 첫날부터 서로를 ‘찜’하는 마음의 소리가 들렸고, 불꽃이 튀었다. 논술 첨삭은 뒷전이 된다.
알바를 하는 2주 동안 이곳저곳에서 설레는 대화가 오가고, 썸에 관한 얘기들이 돈다. 확실히 논술 첨삭은 뒷전이 된다.
밥을 먹으면서도 오가는 눈길, 첨삭하면서도 애틋한 눈길이 오갔다가 퇴짜를 맞기도 하고, 화답이 오기도 한다.논술 첨삭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내가 속한 조에 상당히 예쁜 여아가 있었다. 그 아이의 옆에 내가 앉았는데, 여기저기서 쏟아져 오는 눈길이 장난이 아니었다. 당연히 나 말고 내 옆으로.
특히, 조장을 맡은 남자아이의 눈길이 뜨거웠다. 예쁜 여아가 사정상 더는 나올 수 없게 되자, 남 조장 아이는 흘러내리는 애달픔으로 그 아이의 뒷모습을 좇았다. 그러나 여자아이는 내 앞에 앉은 미남자에게 이미 마음을 빼앗긴 후였다. 첨삭하는 내내 내 앞의 미남자를 의식하며 아기같이 방긋방긋 웃었고, 떨리는 목소리를 내었다. 그런데 왜인지 그 마성의 미남자는 미녀에게 관심이 없었다. 미녀를 돌 같이 여기는 마법에 걸린 것 같았다.
내가 여기에서 왜 썸 얘기를 하고 있을까? 그것은 첨삭 알바의 단점을 ‘콕’ 꼬집기 위해서다.
우리가 했던 논술 첨삭은 '똥줄이 탄 대입 수험생'의 것이었다.
논술 첨삭을 맡은 우리는 물론, 다 문과생이었다. 문과생이 다 글을 잘 쓰나? 문과생이 모두 문법에 통달했나?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나도, 내가 쓴 글의 초고를 보면 짜증이 확 밀려온다. ‘난 왜 이렇게 글을 써도 써도 안 늘지? 이놈의 띄어쓰기는 왜 이렇게 어려워? 그냥 단어들을 다 띄든가, 왜 이렇게 복잡해? 비문은 또 뭐야? 알아듣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등등.
몇 장의 예시문과 지침만을 참고로 수험생들의 논술을 첨삭한다는 것은, 남의 인생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첨삭하면서도 머리가 아팠지만, 이렇게 해도 되나? 내가 첨삭한 것이 맞기나 한가? 하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알바생 대부분은 똥줄 탄 수험생들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들의 관심은, 눈길이 가는, 이성에게만 있었다. 알바생은 '논술 관계자'가 아니다. 적어도 '수험생'의 답안지 채점이나 첨삭은, 논술 강사나 제대로 된 논술 교육을 받은 '논술 관계자'가 하는 게 맞다고 본다.
논술 첨삭 알바가 우리들에게는 '꿀 알바'가 맞지만, 당시 수험생들에게는 '꿀 첨삭'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