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웃음 속의 칼.

행복한 강아지.

by silvery rain 이혜영

웃는 모습이 예쁘다. 그런데 웃음 속에 칼이 있는 것 같다.


‘웃음 속의 칼’ 일본 사무라이 영화의 제목이 아니다. 그 시절, 내가 종종 듣던 말이다. 웃을 일도 없고, 감정을 드러낼 일도 없어서 무표정했던 내 얼굴이 웃음이라는 가면을 쓰고부터 생긴, 타인들의 평가이자 주장이다.


어릴 때는 다양했던 내 표정이 여러 사건을 거치면서 점점 표정을 잃어갔다.

좀 웃지, 그래?라고 했던 ‘공짜 커피 단골’의 말이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살면서 캐릭터를 수도 없이 바꿨던 것 같다. 어리벙벙한 모습, 순진한 모습, 수줍음 많은 모습, 하녀 같은 모습, 날카로운 모습, 당찬 모습, 까칠한 모습 등.

캐릭터의 변화만큼, 많은 갈등과 좌절, 실패와 낙담을 겪었던 것 같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장착한 캐릭터가 웃는 캐릭터였다. 미소를 띠고, 잘 웃기 시작했다. 그런데 웃었더니 이제는 웃음 속에 칼이 있단다.


안 웃어도 지랄! 웃어도 지랄!이다.


칼은커녕 내 웃음 속엔 연필도 지우개도 없다. 왜냐하면 난 깊이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우개는 좀 갖고 싶다. 잊고 싶고, 지우고 싶은 것이 많다. 여담~


사람들이 내 미소를 의심하는 것은 아무래도 얼굴 때문인 것 같다. 내 얼굴은 좋게 말하면 신중, 나쁘게 말하면 삭막해 보이기 때문이다.

남편은 내 얼굴을 ‘애니메이션 원피스의 에이스와 드래곤’을 합쳐놓은 얼굴이라고 하고, ‘천사’ 같은 우리 딸은 ‘조선족 살인마’ 같은 얼굴이라고 한다.

내가 얼굴에 웃음을 덧씌우게 된 까닭이다. 얼굴이 흉기라서.


남들보다 더 미소 짓고, 더 상냥하고, 더 관대해지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우유부단해지고, 수동적으로 되는 부작용이 생기긴 했다. 암튼, 웃음을 장착하니까 편해졌다. 나도 편하고, 타인도 편하고.



세상에는 웃을 일이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뒤집어서 말하면 웃을 일이 없는 것도 아니다.

알바 매장 한가운데서 대자로 나자빠져도 툴툴 털고 일어나 웃으면 그만.

쫄쫄 굶은 상태에서 학생을 가르치다 뱃속에서 황소개구리가 울어도 웃으면 그만.

너무 웃기만 해서 멍청해 보인다고 해도 웃으면 그만.

자꾸 웃으니까 또라이 같다고 해도 웃으면 그만이다.


만약 내가 웃지 않고 감정을 다 드러내고 산다면 그들은 다시 말할 것이다. 도대체 뭐가 불만이냐고. 왜 찡그리고 다니냐고. 어디 아프냐고.


삶이 힘드냐고.


난 사람들에게 기대하지 않는다. 기대는 그들에게 부담을 얹어주는 것이고, 실망은 그들에게 죄책감을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대도 실망도 주체는 나이기 때문에 나만 그만두면 되는 것이다.

사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게 아니다. 나에 대한 기대와 실망이 싫다. 상처 받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키우는 강아지가 있다. 이름은 달래이지만, 별명이 많다. 달콩이, 달롱이, 띨롱이, 달똥이, 강쥐기, 따콩이 등.

처음에 이름을 달래라고 지을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지었다. 그냥 달래. 그런데 그 아이랑 살다 보니, 그 아이가 우리를 참 많이 ‘달래’ 주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강아지는 늘 ‘지금’을 산다.

자기와 함께 있다가 잠깐 베란다에 갔다 와도, “어! 반가워! 오랜만이네.”

화장실에 갔다 와도, “어! 반가워! 오랜만이네.”

방에 들어갔다 나와도. “어! 반가워! 오랜만이네.” 하며 꼬리, 엉덩이 등 온몸을 흔들어 반긴다.

어쩌면 강아지야말로, 시간이 아닌 공간을 사는 동물이 아닐까? 계속 계속되는 새로운 만남 속에서 행복한 것이다.

알바는 행복한 강아지다. 알바는 늘 내게 새로움을 주었고, 새로운 사람들을 보내주었다. 알바를 하며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다음 편, 알바에서 만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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