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 동기들과 서클 사람들과 먹고 마셨다. 너무 즐거웠다. 돈에 대한 걱정 없고, 그들처럼 나도 학교만 다닐 것을 생각하니 너무 행복했다. 행복에 취해 노는 것에 미쳐버렸다. 그동안 못했던 여행도 하고, 미팅도 하고, 디스코텍도 가고, 서클 생활도 열심히 하고, 공부는 적당히 했다.
삶이 별건가? 그때그때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면 되지. 공부하고 싶은 놈은 공부하고, 놀고 싶은 놈은 노는 거지. 나 같은 놈은 알바 안 하면 공부만 해야 하나? 누가 뭐라 하는 것도 아닌데, 괜히 찔렸다.
칙칙한 노동의 장에서 학문의 전당으로 자리를 옮기니 오히려 놀고 싶었다. 미치게 놀고 싶었다. 돈 걱정 안 하고 놀고 싶었다. 그 무엇보다, 더!
노는 얘기는 이제 그만 하겠다. 여기는 알바 얘기하는 곳이니.
놀 때 놀더라도 틈틈이 알바는 했다. 이제 나의 알바는 과외로 넘어간다.
초·중·고, 남녀를 불문하고 닥치는 대로 과외를 해댔다.
알바 업계의 대기업! 과외!
머리는 써야 하지만, 비교적 덜 힘들고, 고소득.
과외에도 복병은 있다. 학모.
학모는 무섭다.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 시내에서 교통체증에 시달리다 보면 안 늦을 수가 없다. 하지만 엄마들은 가차 없다. 못마땅해하는 눈초리에 얻어맞아야 한다. 게다가 나는 하루에 두 탕씩을 뛰니 더했을 것이다.
많던 나의 제자들은 어디에서 무얼 할까? 이제 그 아이들도 나처럼 늙어가는 처지가 됐을 테지만, 내 기억 속엔 여전히 학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아이들 중 유독 생각나는 아이가 있다. 프랑스어 과외를 받던 여고생이다. 그 아이와의 특별함은, 그 아이가 날 많이 따랐다는 것이다.
전교 회장을 할 만큼 똑똑하고, 외동딸이라 귀염성도 있고, 붙임성도 있는 아이였다. 그 아이와 공부를 할 때는 힘든 것이 없었다. 요점만 짚어줘도 스스로 공부해서 만점을 맞아주니.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주인이 받는다더니, 그 아이 덕분에 난 잘 가르치는 선생이 됐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우리는 딱 할 만큼만 공부하고 주로 수다를 떨었다. 보충 과외를 할 때는, 학모가 없는 틈을 타 함께 라면을 끓여 먹으며 영화도 봤다.
지금 이 시점에서 그 아이가 생각나는 것은, 그 아이한테 미안한 마음이 있어서다. 모든 과외가 끝나고 2년쯤 지난 후, 그 아이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리고 연락 안 했다. 대학을 졸업하던 시점에 너무 힘든 일이 많았기 때문에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알게 됐다.
타인이 내게 이유 없이 상처를 줬다면, 그건 어쩜 그 사람이 아주 힘든 시기였을 지도 모른다는 것. 누구나 자신이 행복할 땐 타인에게도 너그러워지지만, 그렇지 못할 땐 냉정해지니까. 누군가가 나에게 상처를 줬다면, 그것은 나 때문이 아니라 그 자신 때문이다. 그래서 상처 받지 않기로 늘 다짐한다. “괜히 지롤이야!”하며 날려버린다.
“J 야! 그땐 미안했어. 나도 너 만나고 싶었고, 세월이 지나다 보니 네가 보고 싶더라. 그런데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 못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