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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y rain Dec 05. 2021

[장편소설] 톨게이트 16.

16. 그 일이 있기 전, 톨게이트 사람들.

 53 도 41X4.

 입구를 빠져나가는 차의 번호판을 확인한다. 특별한 것 없는 번호판이다.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낯이 익은 사람이다. 남자의 얼굴을 유심히 본 이유는, 남자가 간식을 건넸기 때문이다. 그것도 남은 것을 주는, 대충 주는 간식이 아닌, 피자 한 판을 주고 간 것이다. 하경은 망설였다. 그냥 받아먹기엔 부담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인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다시 본, 하경은 너무나 예뻤다. 이름도 알고, 근무 시간도 알고 있는 만큼 그녀가 애인처럼 느껴진다. 52조는 자신과 하경은 뗄 수 없는 사이가 됐다고 생각한다. 언제라도 자기 것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녀는 수줍은 표정으로 피자를 받았다. 두 손으로 공손하게. 그리고 고마워했다. 52조는 다음 단계를 진행하기로 마음먹는다.     

      


 요금소 입구로 들어서며 볼륨을 줄인다. 걸 그룹의 댄스곡이 작아지며 흥을 잃는다. 하경을 만나고부터 듣기 시작한 노래다.

 “안녕하십니까?”

 52조가 먼저 인사를 건넨다.

 “네. 안녕하세요?”

 “오늘도 수고하시네요.”

 52조가 하경에게 표를 건네며 다정한 어조로 말을 건넨다.

 “네...”

 “저, 이것!”

 하경이 영수증과 거스름돈을 주자, 52조가 하경에게 양념치킨과 음료수병을 건넨다.

 “아니요, 감사합니다만 받을 수 없습니다. 벌써 여러 번 주셨는데.”

 “빨리 받으세요. 뒤차가 기다립니다. 안 받으시면 제 손이 부끄러워집니다.”

 “죄송합니다만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지 말고 어서 받으세요. 안 받으시면 차 안 뺄 겁니다. 이러다 뒤차 빵빵거리겠습니다.”

 뒤차의 운전자가 고개를 빼고 보고 있다. 하경이 어쩔 수 없이 치킨을 받는다.

 “감사합니다.”

 “맛있게 먹어주시면 됩니다. 안녕히 계세요.”

  52조가 차를 출발시키며 룸미러로 하경을 살핀다. 하경이 자신을 보고 있었다. 하경이 룸미러에서 사라지자 사이드미러로 시선을 옮긴다. 자신을 보고 있던 하경이 허둥지둥 다음 차를 맞는다. 흥겨움에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볼륨을 높이자 걸 그룹이 자신의 허밍에 반주를 넣는다. 조만간 하경은 자신과 하나가 될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지릴 것 같다.

 52조는 자신의 변화된 모습이 신기하다. 낯선 사람들 앞에서는 늘 주눅 들고 의기소침하던 그였다. 여자 앞에서는 특히 그랬다. 말을 더듬기도 했고, 기어들어 간 목소리로 짜증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런데 하경을 만난 뒤로는 그런 것들이 거의 사라졌다. 물론 뭔가 잘못한 것이 있거나 실수를 했을 땐 다시 고개를 들곤 했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는 제어가 됐다. 역시 하경은 찬송가 같은 존재였다. 하경을 만난 후론 한 번도 죄책감에 시달린 적이 없다. 따라서 찬송가를 들을 필요도 없었다. 자신이 어떤 일을 해도 하경이라는 빛이 자신을 씻어주고 품어줄 것이라고 52조는 생각했다.     


 다른 차들을 맞고 보내는 동안에도 하경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간혹 간식을 주는 손님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간식들은 작은 성의였다. 껌이나 작은 봉지의 과자, 캔 커피 등. 하지만 이 손님은 달랐다. 늘 간식이 달라졌고, 하나같이 부담스러운 것들이었다. 피자, 햄버거, 고급 초콜릿. 모두가 일부러 준비한 간식들이었다. 호감을 표시하기 위한 것들인 것 같았다. 하경은 받고 싶지 않았다. 다른 직원들과 나눠 먹으면서도 즐겁지 않았다. 남자가 주는 느낌이 왠지 꺼림칙했다. 싫다기보다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남자와 엮이는 것 자체가 싫었다.      


 “그 남자가 너한테 단단히 반했나 보다. 어떻게 생긴 남자야?”

 도미가 하경을 놀리며 치킨을 뜯는다.

 “별로예요. 제 타입 아녜요.”

 하경의 대답에 도미와 지숙이 서로 마주 보다 웃는다.

 “왜요?”

 놀리는 듯한 그녀들의 웃음에 하경이 의아해하며 묻는다. 약간 불쾌하기도 하다.

 “얌전한 고양이한테도 타입이 있었네? 우리 하경이 다 컸네!”

 “무슨 말이에요, 언니! 기분 나빠요.”

 하경이 새침한 표정으로 지숙에게 대꾸한다.

 “그래, 언니! 하경이가 얼마나 대차고 똑 부러진 앤 데! 그렇게 놀리고 그래?”

 지난 회식 때 보여준 하경의 당찬 모습이 떠올라 도미는 흐뭇하다.  

 “미안해, 미안해! 안 그럴게.”

 지숙이 팔을 잡으며 애교를 부리자 하경이 금세 풀어진다.

 “맛있는 건 나눠 먹읍시다.”

 아르바이트생 성우가 환하게 웃으며 벤치로 다가온다.

 “어서 와라. 밥 먹으러 왔니?”

 “밥은 벌써 먹었죠.”

 지숙이 내민 치킨을 받아 입으로 가져가며 성우가 대답한다.

 “오빠 어서 와요.”

 “응, 하경이 안녕?”

 하경과 성우의 대화를 들으며 지숙과 도미가 키득거린다.

 “왜요?”

 하경이 반색을 하며 따지듯 묻는다.

 “귀여워서 그런다. 귀여워서. 오빠 안녕? 하경이 안녕?”

 “이 치킨은 웬 거예요?”

 지숙이 그들의 대화를 과장하여 흉내 내며 놀리지만, 성우는 못 들은 척 치킨을 집으며 묻는다.

 “웬 거겠냐? 우리 이쁜 하경이가 받은 거지. 하경이한테 반한 언놈이 요즘 계속 사다 나른단다. 너, 긴장해라! 잘못하면 애먼 놈한테 하경이 뺏길라!”

 “언니!”

 하경이 웃으며 새침한 표정을 짓는다.

 “그럴 리가요? 하경이가 어디 이런 닭다리에 넘어갈 앱니까? 얼마나 자존심이 센 앤 데? 안 그러냐? 하경아?”

 지숙이 넌지시 건넨 농담 겸 진담을 성우가 능구렁이처럼 받아넘긴다.

 “복학은 언제 하니?”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도미가 묻는다. 성우는 대학생이라는 신분을 속이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고속도로 사무소에서 대학생 고용을 꺼린다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내년 봄에요.”

 “그나저나 인간들이 대학생은 왜 안 쓴다니?”

 지숙이 목소리를 낮춰 묻는다.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워낙 불합리가 많으니까 그러는 거 아니겠어? 대학생 썼다가 괜히 데모라도 할까 봐 그러겠지.”

 “하경이도 대학생이잖아?”

 “얘는 데모할 얼굴이 아니잖아. 그리고 이쁘니까 썼겠지.”

 “하긴!”

 도미의 말에 지숙이 고개를 끄덕인다.

 “오늘은 아무 일 없었니?”

 “없긴 왜 없겠습니까? 톨게이트에서 하루라도 진상 안 보는 날이 있으면 내 손에 장을 지집니다.”

 성우는 요금을 안 내고 줄행랑을 치는 사람들을 단속하거나 과적․적재 불량을 단속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왜 또 열 받았어?”

 “오늘도 욕을 바가지로 들었습니다. 욕을 하도 먹어서 소화가 안 되려고 합니다. 하경아! 거기 콜라 좀 주라. 오빠, 소화 좀 시키게.”

 “이놈의 나라에는 어찌 그리 대단한 사람들만 사는지 모르겠다. 온통 갑을관계다. 코딱지만 한 권력이 있어도 행세하려고 하니. 명령하고, 같지도 않은 걸로 대우받으려고 하고. 군림하고, 욕하고, 폭력 하고. 에이! 좆이나 먹으라고 해라!”

 지숙의 걸쭉한 항변에 모두 기분 좋게 웃어젖힌다.

 “우리 누님! 욕도 잘하시네! 왜, 누님이 하는 욕은, 욕도 고상하게 들리죠?”

 “그래? 아들?”

 “뭐야? 족보가 왜 그래? 아들하고 누님이 말이 돼? 한 가지만 하셔들!”

 “그럼, 그냥 누나만 할까?”

 “참, 회식 자리에서 하경이한테 안 좋은 일 있었다면서요?”

 생각난 듯 묻는 성우의 얼굴엔 하경에 대한 걱정이 가득 담겨있다.

 “그건 또 어떻게 알았니?”

 “그냥 우연히 들었어요. 지나가다가.”

 “안 좋은 일이 뭐, 한두 번이었니? 회식 때마다 거의 그렇지.”

 “왜요?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됐다! 말 꺼내기도 싫다. 하여튼 진상들! 안이나 밖이나 진상 떠는 것들 때문에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가 힘들다.”

 “그러게요. 나라도 있었으면 도와줬을 텐데.”

 “아이고, 됐다. 너까지 안 가도 된다. 하경이가 얼마나 깡다구 있는 앤 데. 거기다가 의리의 도미가 있는데 뭐가 걱정이냐!”

 “그래요? 무슨 일이 있었기에? 하경이 깡다구에 도미 누나 의리까지. 둘이 합쳐졌으면 작품 하나 나왔겠는데요?”

 “그렇지, 작품 하나 나왔지. 거기다가 세윤이 고것이 마무리까지 끝내 줬잖니.”

 “점점 더 궁금해지는데요. 얘기 좀 해 주시죠?”

 “다음에. 조용한 자리에서 해 줄게. 그나저나 세윤이 고게 참 맹랑한 데가 있어. 은근히 니네를 도와준 거 아니니?”

 “언니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지 노래하는 데 방해받으니까 열 받았겠지. 그리고 센 척도 하고 싶었을 테고.”

 “그래? 그런가?”

 “그런데, 직원들이 왜 세윤이 말에 꼼짝 못 하는 거야? 소장까지.”

 “걔 아버지가 도로공사 높은 인간이라잖니.”

 “그런 거야? 그래서 걔가 그렇게 안하무인인 거고, 직원들이랑 소장도 걔 비위 거스르지 않으려고 안달 난 거였어? 걔네 아버지가 뭔데? 뭐, 사장이라도 돼?”

 “내가 아니? 걔가 나한테 대놓고 얘기한 것도 아니고. 소장님도 걔 때문에 골머리 좀 아픈가 보더라.”

 “소장님이? 세윤이하고 잘만 다니던데?”

 “소장님이 다니고 싶어서 다니겠니? 어쩔 수 없으니까 다니는 거겠지.”

 도미와 지숙의 얘기를 들으며 성우는 기분이 좋지 않다. 소장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것을 얘기하지 않은 것이 찜찜했기 때문이다. 마치 이들을 속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휴, 그 싸가지 없는 거! 한주먹 거리도 안 되는 게 하여튼 여기저기서 오지게 갑질 하고 다녀!”

 도미가 한숨을 푹푹 내쉬며 분개한다.

 “놔둬라, 놔둬! 니가 안 죽여도 걔, 그렇게 살다 어디 가서 칼 맞을까, 난 걱정되더라”

 지숙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도미가 지숙의 옆구리를 찌르며 눈짓을 한다. 소장과 세윤이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식사들 했습니까?

 세윤과 점심을 먹고 나온 소장이 그들에게 말을 건넨다. 갑작스러운 소장과 세윤의 등장에 그들은 당황한 눈빛을 교환한다.

 역시 양반은 못 되는가 보네. 우리나라 속담은 역시 진리야.

 “네. 식사하셨어요?”

 지숙이 형식적인 웃음을 웃으며 대답한다. 지숙의 대답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세윤이 시계를 본다. 점심시간을 체크하는 것이다.

 “웬 치킨입니까?”

 “네, 고객이 주신 거라서 나눠 먹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친절이 보상을 받는가 봅니다. 그래, 누구?”

 소장이 맘 좋은 웃음을 보이며 그들을 둘러본다.

 “하경이요.”

 “아, 그래요? 하경 씨는 워낙 조용조용하게 일을 잘하니까.”

 “네. 하경이가 인기 최고예요. 예쁜 데다 친절하기까지 하니까.”

 “어머, 그렇구나! 하경 씨 친절하고 예쁜 건 고객들이 더 잘 알죠.”

 “네?”

 느닷없는 세윤의 말에 놀란 하경이 말을 잇지 못한다.

 “맛있게들 드세요. 친절에 대한 보답이니까. 여러분은 충분히 즐길 자격 있으세요.”

 이어진 세윤의 다정함에 하경과 도미, 지숙은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다.

 왜 저러지?

 뭘 잘못 먹었나?

 쟤가 미쳤나?

 목소린 또 왜 저래?

 “그럼 계속들 들어요. 우린 갑시다.”

 소장이 선한 웃음을 웃으며 팀장의 팔을 끌어 걸음을 옮긴다.

 “네. 맛있게들 드세요! 저기, 그리고 성우 씨! 잠깐 나 좀 볼래요?”

 성우를 향해 생글거리는 세윤의 미소가 낯설지만 화사하다.

 “예? 왜 그러시죠?”

 “왜 그러긴요! 잠깐 할 얘기가 있어요.”

 어정쩡하게 일어선 성우의 팔을 세윤이 잡아끈다. 세윤이 성우를 정원 쪽으로 끌고 가자, 엉거주춤, 뻘쭘하게 서 있던 소장이 헛기침하며 사무소로 들어간다. 그들을 멍하니 바라보던 하경과 도미, 지숙이 어리둥절한 눈빛을 교환한다.

 “언니! 하경아! 쟤 왜 저러지? 정말 쟤가 왜 저러는 거야?”

 “그러게....”

 “쟤가 미친 거야? 우리가 미친 거야?”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제가 뭐 실수한 거라도 있습니까?”

 “아뇨, 아뇨! 그럴 리가요?”

 세윤이 두 손을 저으며 깔깔거린다. 평상시와 다른 세윤의 태도에 성우가 혼란을 느낀다.

 “성우 씨 언제 복학해요?”

 “네?”

 “다 알고 있어요. 성우 씨 대학생이란 거.”

 “그걸 어떻게?”

 “걱정하지 말고 편하게 다니세요. 그 말하고 싶어서... 그리고 나보다 한 살 많다는 것도 알아요. 그러니까... 암튼, 우리 잘 지내봐요.”

 느닷없이 세윤이 부끄러워하며 악수를 청한다.

 “네....”

 흙먼지라도 들이킨 듯 기침을 해대던 성우가 내키진 않지만, 세윤의 손을 잡는다.     


 처음으로 시도한 성우와의 대화에 세윤의 기분이 한껏 고조된다. 화장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매혹적으로 보인다. 볼륨감 있는 몸매, 늘씬하게 쭉 뻗은 다리, 긴 머리에 갸름한 얼굴, 상큼하게 주차된 눈코입. 빠질 데 없는 외모라고 자평한다. 아버지의 서류철에서 우연히 발견한 성우의 프로필은 놀랄만한 것이었다. ‘의대생.’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1, 2위를 다투는 대학의 의대생, 한성우. 아버지는 한재익 소장. 우유부단하지만, 마음 여린 한재익 소장은 이미 자신의 시아버지나 다름없다. 한성우쯤 꼬시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언니는 그럼 대회도 나가요?

 대회는 무슨?

 도미와 하경의 목소리와 함께 화장실 문이 열리자, 세윤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는다.

 “어? 팀장님 여기 계셨네요?”

 뒤를 이어 들어온 지숙이 세윤에게 아는 체를 한다.

 “화장실도 팀으로 다니나 보죠?”

 지숙의 물음은 무시되고, 빈정거림이 되돌아온다.

 “아니, 그냥. 양치질하려고.”

 “네. 양치질하세요. 닭 누린내 없애려면 좀 오랫동안 하셔야 할 거예요.”

 “그리고, 하경 씨! 하경 씨는 그렇다 쳐도 우리 톨게이트 위신도 좀 생각해 주셔야죠. 주는 거 넙죽넙죽 다 받아먹으면 격 떨어지겠죠?”

 세윤이 거울 속의 하경을 보며 인상을 찌푸리다 쏘아붙인다.

 “네? 뭐라고요?”

 하경이 뭐라 대꾸할 틈도 주지 않고 도미가 대거리를 한다.

 “양치질하시라고요! 그럼, 전 이만.”

 세윤이 눈을 깜빡이며 대답하곤 빙긋 웃더니 화장실을 나간다. 세윤이 나가고 기가 차서 말을 못 하고 있던 셋이 동시에 한숨을 쉬며 헛웃음을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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