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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에서 치르는 나만의 의식(튀르키에 사프란볼루)

by 소정

세계 곳곳을 다니다보면 여행고수를 만나게 된다. 그들은 최소 1년 이상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방랑객이다. 낡은 옷차림, 덥수룩한 수염, 가위로 대충 자른 듯한 머리카락, 거무룩한 피부가 인상깊다.
‘어머, 왜 이렇게 지져분하게 다니는거야?’
하며 피하려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허나 남루한 그들의 행색이 나에게는 여행신이 강림한 것처럼 후광이 비쳐보인다.

여행생활자들을 보면 자신만의 ‘여행 표식’이 있다. 일종의 루틴 혹은 징크스 같다. 자신이 여행한 국기를 배낭에 오버로크 한 사람, 인생의 깨달음을 얻게된 국가를 팔에 문신으로 새긴 사람, 각 나라의 로컬 맥주 병뚜껑을 모으는 사람, 스타벅스의 랜드마크 머그잔을 수집하는 사람 등 여행자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전리품을 수집한다. 그들을 보며
'나도 언젠간 나만의 무언가를 찾아야지!‘
라고 다짐하곤 했었다.

튀르키에 사프란볼루


일 년 중 가장 더운 8월 튀르키예로 떠났다. 체감 온도 40도에 육박한 튀르키예는 내가 하위 10%도 되지 않는 저질 체력임을 일깨워 주었다. 100m만 걸어도 숨은 턱까지 차오르고 제 몸은 물을 달라고 아우성쳤다.
'이러다가 죽을지도 몰라.'
이스탄불 일정을 포기하고 사프란볼루로 향했다. 이유는 단 하나,
'고지대로 가자! 거기는 덜 덥겠지.'
읍내에서나 볼 법한 작은 버스 정류장에 내렸다. 푸른 녹음 사이로 전해지는 얕은 바람의 내음이 끈적하고 시큼한 제 땀을 실어 보내주었다.
"와~ 상쾌해. 이제야 살 것 같아."
숙소를 찾아 나섰다. 돌멩이를 이어 만든 길을 따라 걸었다. 양옆에는 사방으로 솟은 나무 기둥과 벽돌로 만들어진 옛집들이 터죽대감이다. 수십 년은 되어 보이는 집들이다. 도착한 숙소도 옛것의 고즈넉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짐을 풀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배낭이 없으니 몸과 마음이 가볍다. 본격적인 산책이다. 멀리 언덕이 보인다. 전망대인 것 같다. 새로운 곳에 도착하면 전체를 조망해 봐야 하는 성격상 언덕을 오른다. 등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좀 쉴까?' 하는 찰나, 정상에 도착했다. 집집마다 주황빛 지붕이 내 눈을 사로 잡았다.
“와~ 온통 가을빛이야~”
시원한 바람과 상쾌한 공기를 마시면서 사프란볼루를 한눈에 담아 본다. 고목이 된 기둥 사이로 하얀 벽을 둘러싼 집들이 어우러져 있다. 세월의 흔적을 따라 바닐라 빛으로 변한 벽과 문과 창틀의 나무 빛은 금방이라도 구수한 향기를 내뿜을 것 같다. 광장 한가운데에 높이 솟은 첨탑이 보인다. 모스크에서 흘러나오는 에잔('아잔'의 튀르키예어)이 마을 전체를 포근히 감싸준다.

에잔의 운율을 흥얼거리며 다시 길을 나선다.
“어디든 다 좋아.”
붉은 벽돌 사이로 덩굴이 이어진 이발소가 보인다. 창문 너머 안을 들여다 보았다. 의자가 두 개밖에 없는 시골 이발소였다. 반쯤 이마가 벗겨진 중년의 아저씨가 현란한 가위질로 손님의 머리를 매만진다. 쭈뼛쭈뼛 근처를 서성이다가 이발사와 눈이 마주쳤다. 들어오라고 손짓을 한다.
'호의를 거절하지 말자.'
다짐하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hello!" 인사를 건내니
"ghj$%6dfhjlds@#4~“
라고 말을 하는데 당최 알아들을 수 없다. 표정이 밝은 걸 보니 나를 환대하는 건 분명하다. 영어는 못하고 튀르키예어만 하는 아저씨, 튀르키예어는 못하고 영어만 하는 나. 언어의 평행선을 달리지만 괜찮다. 우리에겐 몸뚱어리가 있지 않으가. 나는 손으로 가위질을 한 후 엄지을 치켜세웠다. '아저씨, 이발 솜씨가 대단하신데요!’라는 뜻이다. 아저씨도 미소와 함께 엄지를 치켜세웠다. ‘고마워요.’라는 의미.

이발소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외국에서 머리를 깎은 적이 없잖아! 재미있겠는데?'
갑자기 이발이 하고 싶어졌다. 손으로 내 머리 위에 가위질 하는 흉내를 냈다. 아저씨는 ‘정말?’하며 움찔거렸다. 나는 다시 한 번 ‘Yes.’라고 말했다.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Ok~, Ok~'를 외치셨다. 의자에 앉아 멋진 남자 사진을 가리키며 '최신 유행하는 터키 남자 머리'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사각사각', '서걱서걱'
베테랑 이발사답게 가위질은 거침없었다. 무당이 칼춤을 추는 것 같았다. 20여 분이 지나고 나보고 안경을 쓰라고 한다. 설레는 마음으로 거울을 보는 순간,
”어라?, 이게 정말 터키에서 유행하는 헤어스타일?“
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당황스러웠다. 내 머리는 정확히 앞머리가 일자인 바가지 머리가 되어 있었다. 앞머리는 눈썹에서 약 1cm 위로 일자였고 나머지는 버섯 머리였다(앞머리가 자로 잰 듯이 일자인 걸 보니 이발 실력은 인정한다).
‘...’
10초간 정적이 흐른 후 나는 웃어 버렸다.
'그래, 원빈, 박서준은 일자머리도 멋지지. 이발사가 아니라 원판이 문제였던 거야.‘
아저씨는 멀리서 온 이방인의 머리를 잘랐다다는게 뿌듯했나 보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제 반응을 기다린다.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Good!"하고 외치니 그제야 환하게 웃는다. 그러더니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한다. 바가지 머리의 동양 청년과 사프란볼루 이발사의 한 컷이다. 이 사진은 며칠 후 이발소에 걸려있었다.

이발사 아저씨와 진한 포옹을 하고 이발소를 나왔다. 바가지머리가 튀르키예 최신 헤어스타일이라고 하셨으니, 어깨에 힘을 빡 주고 걸어본다. 사람들이 나를 쳐다본다.
’내 머리가 이상해서 그런게 아닐 거야.‘
’내 머리가 부러워서 그럴거야.‘
그리고 속으로 외쳤다.
'나는 원빈이다, 나는 장동건이다...'

예전에는 여행을 마치고 헝클어진 머리를 동네 미용실에서 잘랐다. '여행을 잘 마쳤으니,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자!'라는 나만의 다짐이었다. 사프란볼루의 이발 사건 이후 머리는 여행지에서 잘랐다. 이발사와 함께 사진도 찍어둔다. 낯선 타국에서 익숨함을 찾아 가는 게 나만의 여행 스타일이 되었다.

'여행지에서 머리를 자르는 것'
이것이 여행지마다 치르는 저만의 의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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