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태국, 베트남
‘먹고 사는 게 일이야.’
‘버텨야지. 버터야 먹고 살지.’
‘먹고 산다’을 입에 달고 사는 우리다. 세상에 태어난 이상 밥벌이는 평생의 동반자다. 먹고 사는 문제로 괴로움도 참고 자존심도 꺾고 그렇게 산다. 키케로는 ‘죽음은 노고와 고통으로부터의 휴식이다.’라고 하지 않던가.
세계를 돌아다니다 보면 치열하게 밥벌이를 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필리핀 어느 항구였다. 나는 이른 새벽부터 바다에 나왔다. 지평선 넘어 올라오는 일출을 보기위해서였다. 시야가 탁 트인 방파재에 자리를 잡았는데, 어둠을 헤치고 바다를 나아가는 작은 배들이 보였다. 배 쪽으로는 활처럼 나무가 놓여 있었습다. 꼭 날치 같았다. 어부들은 안전장치도 없이 맨발로 서서 맨손으로 그물을 던진다.
‘저러다 물에 빠지면 어떻하지?’
내 걱정과는 달리 어부들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구명조끼는 사치이다.
‘고기가 많이 잡혀야 하는데...’
그물을 끌어 올리는 어부의 손길에 만선을 기원한다. 하지만 키케로고기는 몇 마리뿐이다. 수십 번을 던지고 걷는데도 허탕이다. 어부도 지쳤는지 멍하니 담배에 불을 붙인다. 담배 연기가 어부의 긴 한숨 같다. 가족을 먹여살려야하는 데 이정도 고기로는 턱없다. ‘아빠가 집에 갈 때 과자 사갖고 갈게.’하며 집에서 나왔을 텐데... 그 후로도 어부는 낡은 그물을 계속 던진다. 듬성듬성 구멍 난 그물 사이로 몇 안되는 고기가 빠져나간다.
‘아...’
나도 모르게 긴 탄식을 내뱉는다. 어부는 하루 종일 고기를 낚았지만 바구니에 반도 담겨지지 않았다. 어부의 짙어지는 주름살에 내 미간도 찌푸려진다.
‘온난화 때문인가?’
환경 오염으로 개체수가 적어진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동이 트고 세상이 밝아지니 대형 어선들이 보였다. 그들은 기계화된 대형 그물을 바다에 던진다. 바닥 끝까지 내려간 그물은 쌍끌이로 고기를 낚는데 고기는 많다 못해 넘칠 정도다. 저들 때문에 앞바다의 고기가 씨가 말랐던 것이다. 씁쓸한 풍경이었다.
태국 카오산로드의 중심가를 걷던 중이었다. ‘24시간 연중무휴'라는 말처럼 낮이든 밤이든 활기찬 이곳이다. 새벽부터 길거리에는 팬케이크를 파는 노점이 문을 연다. 사람들은 바나나, 망고, 딸기, 초콜릿 등 자신의 기호에 맞게 팬케이크를 주문한다. 가격도 1,000원 남짓이라 부담이 없다. 점심에는 팟타이(태국식 국수)와 스프링롤 등을 만들어 판다.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국수나 볶음밥을 시켜 점심을 해결한다. 가격도 저렴하니 인산인해다. 해가 저물어 가니 주인은 도구를 하나둘 정리한다.
'이제 집에 가려나?'
’이제야 쉬나보다.‘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주인은 1L 정도 되는 빨간 바케스에 과일과 술을 넣어 칵테일을 만들었다. 리어카 앞에는 맥주들을 놓아 둔다. 간이 식당에서 간이주점이 된 것이다. 사람들은 밤의 풍경에 취하고 술에 취한다.
’하루종일 일만 하다니 그러다 쓰러지면 어떻하지?‘
걱정이 들었다. 그는 아침에는 팬케이크, 점심은 국수나 볶음밥, 저녁은 술을 팔았다. 음식 백화점 같다. 혹자는 노점상을 보며 '역시! 카오산!'이라고 감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고된 이의 하루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곧 잡아도 하루 15시간 이상이 넘는 중노동을 매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손에 쥐는 돈은 우리나라 최저 시급도 되지 않는다.
“왜 이리 처절하게 일을 하는거죠?”
라고 누군가 물어볼 수도 있겠다. 주인장 뒤에 자기만을 바라보는 가족들을 모르니까 하는 말이다. 가족을 건사하기 위해 자기 한 몸 바치는 그를 보면서 존경의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길거리 음식은 싸서 좋다던 내가 부끄러웠다.
동남아시아를 여행하다 보면 오토바이나 자전거 앞에 두 명이 탈 수 있는 의자가 달린 것을 목격하게 된다. 또는 오토바이 옆에 좌석이 달려있기도 한다. '트라이시클' 또는 '뚝뚝'이라고 불리는 교통수단이다. 가까운 거리를 갈 때 편리하지만 흥정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여행자는 어느 가격이 적정한지 모르니 무조건 깎으러 들려 하고 운전기사는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손님과 기사 간의 동상이몽으로 어떨 때는 언성이 높아지고 얼굴이 붉혀질 때도 있다. 어느 새벽 다른 여행지로 이동하기 위해 일찍 집을 나설 때였다. 뚝뚝이에 운전기사 반쯤 누워 쪽잠을 자고 있다. 그는 언제 올지 모르는 손님을 기다리느라 집에서 잠을 청하지도 못하고 노숙을 하고 있다. 뚝뚝이도 포화상태라 손님 구하기도 힘들다고 한다. 기사는 대부분 빚을 내서 뚝뚝이나 트라이시클을 마련하는데, 빚이라는 게 하루하루 점점 불어나니 마음이 오죽하겠는가? 그러니 조금이라도 더 벌고자 쪽잠을 자고 여행자에게 끊임없이 구애를 한다. 이제는 바가지가 아니면 흥정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 손해 본다고 생각하고 부르는 값을 지불한다. 손해봤자 1,000원 미만인 경우가 대다수다. 기사가 그 돈으로 일찍 퇴근해서 가족들과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다면 아깝지 않다.
여러 곳을 여행하다 보면 어떤 이의 삶은 치열하다 못해 간절한 것 같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삶이다. 돈을 모아 집을 산다든가 하는 건 꿈도 꾸지 못할 일들이다. 그들의 일이 좀 더 가치를 인정받았으면 좋겠다. 일한만큼의 동등한 보상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공정'이란 두 글자에 관심을 갖게 된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