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의 시작

by 호모 비아토르

경미한 어지럼증이 계속되어 좋아하는 독서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단순하게 몸을 움직이는 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집에 있는 아이들을 데리고 걷기를 시작했다. 어차피 어지럼증으로 당분간 운전대를 잡지 못하는 이상 7월 말부터 나는 마트, 도서관, 인근 공원 등의 목적지를 정해서 걷기를 했다.


처음에 두 아이들은 덥고 걷기 힘들다고 짜증과 투정을 부렸다. 약간의 보상으로 아이스크림, 장난감을 사주며 걷기에 두 아이들이 동참해주기를 희망했다. 코로나 때문에 힘들고 답답한 이 시기에 집에서만 있을 게 아니라 뭐라도 해야 했다.


처음에는 왕복 1시간, 그다음엔 왕복 1시간 30분, 마지막엔 왕복 2시간 이상을 걸으며 우리는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걷기는 걸어서 건강에 좋을 뿐만 아니라, 아이와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걷기에 익숙해질 때 즈음에 평지 걷는 게 지루하다고 했다.


우리는 10월부터 등산을 시작했다. 오봉산, 천성산, 가지산, 영축산, 천태산, 신불산, 토곡산, 금정산 등... 산 하나를 정복할 때마다 첫째 아이는 새로운 산을 가자고 제안했다. 사실 둘째 아이는 아직 어려서인지 오를 때마다 울 때도 있고 짜증을 냈다. 그래도 업어가며 손잡아가며 끝까지 함께 올랐다. 우리는 산을 오를 때 힘들었지만 정상에 도착했을 때 뭔가를 해냈다는 즐거움이 더 컸다. 그러면서 내 어지럼증은 서서히 사라지고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의 내 모습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해가 길어지는 봄이 되자 예전에 누군가 새벽에 산에 간다는 그 말이 기억나 나도 동네 뒷산을 가기로 했다. 처음에는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했으나 매일 가니 새벽 산에 갔을 때 자연이 주는 즐거움에 매료되어 매일 눈을 뜨면 설레기까지 했다.


나는 매일 새벽, 오후 5시에 두 차례 산을 오른다. 주위 사람들은 뭐 하러 하루에 산을 두 번 오르느냐? 고 질문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산을 걸으면 좋다. 흙을 밟으면 푹신한 쿠션감이 있다. 초록, 갈색이 어우러진 자연을 보면 엄마 품에 안기는 것처럼 편안하고 행복하다. 새벽 공기를 마시며 오르는 산은 마치 공기 속에 수분을 잔뜩 머금은 것처럼 피부가 촉촉해지는 기분이 든다. 한발 한발 내딛을 때마다 가쁜 숨을 내쉬며 나의 무거운 발자국 소리, 숨소리에서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


그 힘든 한 발자국 내딛을 때마다 겸손함을 배운다. 인생도 이렇게 오르막일 땐 ‘천천히 한 발자국만 내딛자.’는 마음으로 ‘겸손하게 살아야겠구나.’ 싶은 생각도 든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땐 산 위를 보지 않고 내 발등만 쳐다보며 묵묵히 걷는다. 산허리에 접어들어 둘레 길을 걷기 시작하면 오솔길 옆에 초록색 식물들이 얼마나 내 눈을 편안하게 해 주는지 그리고 숲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눈이 가면 산비둘기, 청설모에게 나도 모르게 인사를 건넨다.


나의 발걸음은 소풍을 나온 것 마냥 경쾌하고 명랑하다. 나의 걸음 속도에 맞춰 생각도 같이 걷는다. 평소 고민했던 것들, 기도하고 싶었던 것들이 걸음과 함께 사색과 기도가 시작된다. 한 바퀴를 돌고 나면 무거운 생각들이 다이어트를 한 것처럼 가벼워지고 복잡했던 생각은 저만치 날아가 버린다.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내리막길을 내리 달릴 때면 나만큼 행복한 사람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 매일 걷는다. 걷기가 주는 선물은 내 몸과 마음을 더욱 단단하고 편안하게 한다. 처음 걷기는 건강과 다이어트 목적으로 시작을 했지만 지금은 그냥 산이 좋아서 걷게 된다. 오늘도 걷는다. 산을 통해 인생을 배우고 단순함의 미덕을 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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