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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어캣 Sep 15. 2023

헤아리다

말없이 나를 헤아려주는 너에게

너에게는 굳이 아팠던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어. 너는 내가 어떻게 아팠는지, 얼마나 시달리며 앓았는지 거의 다 알고 있지. 왜냐하면 나는 매번 나의 불행을 자산으로 글을 써왔으니까. 나와 이야기할 때, 너는 비록 말은 하지 않더라도 나의 그런 과거 이야기를 낱낱이 헤아리고 있다고 생각해. 자기 자신에게 꽤 몹쓸 짓을 한 적이 있는 나에게, 그 일과 관련된 물건을 선물하고 싶단 얘기를 했으니까. 혹시라도 그날의 상흔이 남아있다면 그걸 가리는 데에 쓰라며. 다행히도 내 몸엔 지금 아무 것도 없지만, 그 사소한 배려는 결코 사소하지 않은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어.


나 역시 너처럼 너의 지난 불행과 고통을, 그리고 그걸 넘어서서 현재의 시련과 미래의 불안을 한번쯤 미루어 짐작해봐. 너는 나와 달리 그런 일들을 자주  글로 쓰는 사람은 아니거든. 내가 알기로 너의 아픔도 어떤 면에서는 나와 같고, 너의 지난 삶 역시 나의 그것처럼 험난하디 험난한 노정이었을 것이며, 누구도 그걸 쉽게 살아온 인생이라며 폄하할 수 없을 거야. 내가 그렇게 두지 않을 거고. 요즘 나는, 네가 글로 쓰는 것과 말하는 것을 넘어 내게 말하지 않는 것들까지 가끔 헤아려보고 있어. 다른 이유는 없고, 그저 너를 너무나도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지만 우리가 서로에게 가닿아야 할 지점이 이미 지나온 시련과 고난만은 아니겠지. 너는 말했어. 우리는 앞으로 과거보다는 현재와 미래의 이야기를 더 많이 했으면 좋겠다고. 나의 현재와 미래에 존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러니 우리는 우리가 만나기 이전의 불행을 끌어안고 고통을 쓰다듬는 것보다, 지금 이 순간 누리고 있는 즐거움과 앞으로 다가올 행복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할 수 있을 거야. 아직 미처 입밖으로 나오지 않은 너의 즐거움을 헤아리며, 네 목소리가 너무 좋은 나머지 대답을 꺼내는 걸 잊어버린 나의 행복을 헤아리며.


(2022.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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