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투명한 프레임을 걷어내고
최근에 하마터면 애인과 크게 다툴뻔한 일이 두어 가지 있었다. 최근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다름아닌 이번주에 우리 관계에서 새어나온 사소한 잡음들이다. 그 중의 한가지만 이야기해보자면 4일 간의 설 연휴 도중 우리가 데이트를 몇번 할 것인지에 관한 의견 차이였다. 이에 앞서 부연설명을 하자면, 나는 사람들과 만나 어울리며 바깥 활동을 하는 데에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사람이다. 반면에 애인은 집과 같은 편안하고 익숙한 공간에서 혼자 있으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데에서 다시 일상을 살아나갈 원동력을 얻는다. 둘의 성향 차이가 이러하니 당연하게도 나는 4일 중에 이틀을 만나자고 했지만, 애인은 하루만 데이트를 하고 나머지 날은 각자 재충전을 하면서 쉬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지고보면 정말 별거 아닌 일이다. 어느 한쪽이 고집을 꺾으면 갈등이라고 할 것조차 없이 순조롭게 매듭지어질만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정말 하잘것없는 이 일 때문에 나름 위기라고 할만한 순간을 겪었다. 모두 다 자기 주장을 한동안 거두지 못해 일어난 해프닝이다.
이렇게 서로의 입장이 마구 부딪치던 한 주를 거쳐와 주말인 오늘에 이르렀다. 나는 카페 맞은편 자리의 애인이 쓰고 있는 안경을 바라보며 문득 재미있는 상상을 하나 해본다. 애인은 나보다 훨씬 더 눈이 나빠서 도수가 꽤 높은 안경을 쓰고 다닌다. 언젠가 한번 장난삼아 그의 안경을 빼앗아 써본 적이 있었는데, 쓰는 순간 눈앞이 어찔해질 정도로 낯설고 불편한 감각이 엄습했다. 나 역시 십여년 전 라섹 수술을 하기 전에는 안경을 쓰고 다녔었지만, 현재 애인이 쓰고 다니는 안경과는 확연히 차이가 있을 거라고 본다. 분명 겉보기엔 비슷하게 생긴 안경임에도 말이다. 나의 동화적 상상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사실 세상 사람들은 눈이 나쁘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다들 안경 하나씩은 끼고 살아간다고. 여기서 말하는 안경은 우리가 흔히 아는 그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게 마음에 걸쳐놓은 안경을 뜻한다. 이 안경을 달리 일컫는 단어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좋게 말하면 가치관, 나쁘게 말하면 편견. 좋게 말하면 소신, 나쁘게 말하면 아집. 좋게 말하면 애티튜드, 나쁘게 말하면 프레임.
눈에 쓰는 안경과 마음의 안경에 차이점이 있다면 아마 투명도일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안경은 상대의 눈동자가 들여다보일 정도로 투명하지만, 내 상상 속의 안경은 그렇지가 못하다. 시력이 나쁜 사람이 쓰는 안경의 렌즈가 압축에 압축을 거듭하여 두껍게 만들어지듯이, 사람들이 마음에 쓰는 안경 또한 그들이 살아온 시간만큼의 이물질을 저도 모르는 사이에 뒤집어쓰곤 한다. 어떨 때엔 삶을 빛내주는 다채로운 색깔을, 어떨 때엔 불필요한 오물과 먼지를. 완전히 투명한 안경을 쓰고 있는 사람은 갓 태어난 아기들 정도밖에 없을 것이다. 나만의 색깔로 물들어있는 안경의 렌즈를 표백해버릴 필요까진 없다. 제각기 다른 색채를 지닌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지고 부딪치고 또 화해하며 세상은 아름다운 곳이 되어가는 거니까. 그렇지만 앞을 보는 일을 방해하는 오물과 먼지 정도는 닦아내야 하지 않을까. 편견, 아집, 프레임, 또는 그와 같은 것들. 애인과 한 차례의 충돌을 겪고 난 후의 나는 가만히 의문 하나를 품어본다. 서로가 가진 안경을 깨끗이 닦은 후의 너와 나는 어떤 지점에서 갈등하고 그것을 또 어떻게 풀게 될까.
(2023. 1.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