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불가능하고 유일무이한
돌이켜보면 시작점부터 넌 내게 특별했어. 연초에 나의 시험 준비를 네가 긴 글로 응원해주었을 때, 이미 그때부터 나는 너를 다른 사람과 조금은 다른 눈으로 보기 시작했던 거야. 그 후로 펜팔 같은 소통이 계속되는 동안, 나는 어떻게든 너와 오프라인에서 재회할 타이밍을 재보고 있었어. 마침 영화 소셜 모임이라는 알맞은 타이밍이 와주었고, 나는 너와 단둘이 약 한 시간에 걸친 식사 자리를 가진 끝에 너의 전화번호를 받아갔지. 너무 부담스럽지 않게 조금씩 연락해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공식 모임이 끝난 후에 따로 자리를 갖자고 먼저 제안한 사람도 나였지. 아는 사람 중에 너 말고 다른 사람이 그때의 모임에 참여했다면 내가 과연 그랬을까. 아니, 그 모임을 애초에 신청하기라도 했을까. 여름의 끝자락을 지나던 언젠가, 너는 너를 향한 나의 특별한 마음에 대해 "(외롭고 힘든 공시생이었던)지금이니까 그럴 수 있어요"라고 했었어. 하지만 그렇지 않아. 너는 그때나 지금이나 내게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이야.
너는 알고 지내는 내내 나에게 부드럽고 다정한 사람이었고, 매번 몇줄의 텍스트만으로도 너의 따뜻한 관심이 내게 조용히 스며드는 걸 느꼈지. 그러면서도 나는 혼자서 한참을 고민했어. 내가 너를 정말로 좋아하는지, 그저 옆에 사람이 필요할 뿐인지. 너 아니면 안 되는 것인지, 너 아니어도 누구라도 괜찮은 것인지. 나는 너에게 정말로 큰 즐거움과 위로를 항상 받아가고 있었는데, 그와 같은 속깊은 대화들을 아무하고나 할 수 있었던 거라면 그건 너의 진심에 너무나도 미안한 일이 되고야 마는 거니까. 하지만 그러한 고민들과는 상관없이 나는 너의 댓글이, 카톡 메시지가 매일같이 기다려졌어. 너와 대화하고 있을 때는 나의 자기검열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사소한 일이 되곤 했어. 가끔은 이렇게도 생각해봤지. 한없이 서핑보드만 부여잡고 파도를 탈만한 순간을 복잡하게 재기보다는, 그냥 바다의 조류에 흔들리는 대로 편안히 몸을 맡기는 것도 괜찮겠다고.
펜팔 같은 댓글 릴레이, 하루에 7시간이나 이어질 정도로 열띠었던 카톡 대화, 실제로 서로의 옆에 있다는 느낌마저 주었던 기나긴 통화. 그 모든 설렘의 나날과 즐거운 기다림의 순간들을 지나고 나니 이제야 알겠어. 세상에서 하나 뿐인 사람 옆에 있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건 처음부터 운명처럼 정해져있는 게 아니고, 무채색으로 스쳐가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점점 진하게 물들어가는 어떤 사람의 색채에 눈길을 돌리는 것이며, 마침내 그에게 다가가는 일이라는 것을. 너는 처음부터 내 운명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너의 아름다운 색채는 내 시선을 붙잡았고, 나는 너에게 다가갔으며, 너도 내게 똑같은 속도로 다가와주었지. 너는 이렇게 무수히 많은 평범한 사람들 속에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그 사람이 되어주었어. 대체 불가능한, 유일무이한,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하고 또 소중한 너.
(2022. 11.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