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더, 사랑을
"Never Have I Ever"라는 제목의 넷플릭스 미드가 있다. 이 작품을 본 적은 없지만, 일단 제목의 뜻은 "나는 ~해본 적이 없어"라는 뜻이라고 한다. 미국에서 흔히 하는 진실게임 같은 것이라는 부연설명을 어딘가에서 보았다. 살면서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것들. 어렴풋이 예상하고 있는 인생의 길이, 그 중 1/3 정도를 살아본 이 시점에서는 아무래도 해본 것보단 안해본 것들이 더 많을지 모른다. 그러나 연애에 관해서는 더 이상의 시도나 경험이 필요없으며 그로부터 더 배울 것도 딱히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공식적으로는 다섯 번의 연애, 그 외 짝사랑으로 시작해서 되다 만 미완의 여러 관계들. 갖가지 추억을 안겨주기는 했지만, 나중 가서는 결코 작지 않은 상흔만을 남겨놓고 사라진 과거의 인연들. 그래서 연애에 관해서는 안해본 일이 없을 거라는 게 내 입장이었다. 어디까지나 올 가을까지는, 올 가을의 한복판에 이르기 전에는.
나는 ~해본 적이 없다.
나는 고통받지 않으면서 누군가에게 연심을 품어본 적이 없다.
나는 20대 초반 이후로 누군가에게 먼저 고백을 받은 적이 없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비슷한 크기로 애정을 주고받은 적이 없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기까지 기다려본 적이 없다.
나는 장거리 연애가 웬만한 근거리보다 뜨거울 수 있단 걸 겪어본 적이 없다.
나는 애인과 나란히 앉아 문화생활과 글에 관해 대화해본 적이 없다.
나는 애인을 바로 눈앞에 두고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써본 적이 없다.
나는 옷이든 시계든 반지든 뭐가 됐든 커플로서 어떤 물건을 맞춰본 적이 없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앞날에 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본 적이 없다.
나는...
그런데 위에 써놓은 일들이 정말로 내게 일어날 수 있는 것들이었다는 걸 최근 일련의 경험을 통해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내가 현재 만나고 있는 애인, 다시말해 지금 이 순간에도 카페 테이블의 맞은편 자리에서 글쓰기에 몰두하고 있는 이 사람은 이제껏 내게 불가능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현실로 만들어주고 있다. 솔직히 말해 다시 나에게 사랑이 올지에 대해서도, 설혹 사랑이 온다 해도 과연 지금까지와 뭐 얼마나 다를 게 있을지에 대해 점점 회의적인 입장 쪽으로 기울어가던 사람이 나였다. 그렇지만 나는 기어이 그를 발견하고야 말았고,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사랑이라는 불확실한 행복에 기대를 걸고 싶어졌고, 그 결과는 보다시피, 이렇다. "나는 ~해본 적이 없다"라고 해도 앞으로 평생 그걸 할 일이 없으리란 보장은 누구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다른 길은 누구에게나 있다. 내 앞에 놓인 이 길처럼.
(2022. 11.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