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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어캣 Sep 15. 2023

지금밖에 나올 수가 없는 글들

'다른 좋음'을 맞이하기 전에

솔직히 요즘 글이 썩 그렇게 수월히 써지지는 않는다. 단 하나의 주제를 제외하곤. 몇달 동안 줄기차게 연애편지만 썼다. 대충 9월 중순 무렵부터의 일이다. 당시 썸을 타고 있던 내 애인과 한창 달콤한 대화를 전화로 카톡으로 나누고 있었을 때와 일치하는 시기다. 내 글의 이러한 경향은 근 몇년간 겪어보지 못한 신선한 열정이었고, 나는 기꺼이 즐겁게 이 열정을 받아들여 글로써 발산했다. 결과물들은 블로그의 에세이 카테고리와 브런치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리고 나는 당연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사랑을 한다. 그때 내가 원했던 그 사람을 정말로 애인으로 맞이하여 함께 꿈같은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연애편지같은 내 글 역시 어조가 그리 많이 바뀌지 않은 채로 하나 둘 새로이 생겨난다.


그렇게 달달한 글들을 쓰면서 때로는 걱정을 한다. 내가 쓰는 이 글들이 혹여라도 독자에게 진부하게 느껴지면 어쩌나. 나의 구성요소는 사랑 말고도 무궁무진한데, 이건 마치 내가 사랑밖에 모르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이 또한 나의 자기복제라면 어떡하지. 하지만 그러다가도 금세 마음을 돌린다. 아니야, 그래도 내가 처절하게 아팠던 일들만을 복사 붙여넣기 하는 글보다는 훨씬 나을 거야. 어차피 똑같은 자기복제라면 고통과 불행보다는 사랑과 행복을 복제하는 편이 더 좋지. 그리고 내 글이 나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건 결코 아냐. 나는 이 글을 쓰나 안쓰나 나 혼자만으로도 충만한 사람이고, 이 글은 내 수많은 페르소나의 극히 일부를 말해줄 뿐이야. 대강 이런 식으로 생각을 고쳐먹곤 다시 쓰던 글을 계속 쓴다. 그 숱한 연애편지들을.


무엇보다 내가 내 사랑의 이야기를 이렇게나 열심히 쓰고 있는 것은, 지금이 아니면 이 주제로 이 정도의 텐션과 에너지를 끌어올려 뭔가를 써낸다는 게 어려울 것 같기 때문이다. 무엇이 되었든 영원한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언제까지고 영원불변한 사람이나 상황이 있을리가 없다. 나와 내 애인이 나누고 있는 사랑은 그렇게 필연적으로 변해갈 것이지만, 그렇다는 사실이 반드시 새드엔딩을 암시하진 않는다. 연애를 시작했던 100일 전과 지금을 비교했을 때, 우리는 애정이 식었다고 여기는 대신 '다른 좋음'을 제각기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곁에 오래도록 있기로 다짐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200일, 300일, 1주년, 1000일이 넘어가면 그때는 그때대로의 '어떤 좋음'이 있겠지. 그렇지만 분명한 사실은 현재의 행복과 미래의 행복은 어딘가 다른 모습을 띨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그냥 쓰자. 할 수 있을 때 최대한. 쓸 때까지 쓰고 나면 또 다른 주제의 글이 자연스럽게 나올테니.


(2023.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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