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이든 강한 헌에 맞춰서 울리게 된다
- 랄프 왈도 에머슨 -
01
머리가 지끈거렸다.
나는 매일 열심히 산다. 그리고 자부심이 있을 정도로 최선을 다한다. 그런데 오늘은 왠지 모르게 무력감이 들었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아무런 성과도, 성공도 해낼 수 없을 거 같은 두려움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가끔 이런 고통과 시련에 빠진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답을 찾았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을 못 하고 있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쓰고 싶은 글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매일 자료를 찾고, 책을 읽고 글을 쓴다. AI와 시름하고, 알고리즘에 선택을 받기 위해 애쓴다. 그러다 보니, 쓰고 싶은 글을 쓰지 못하고, 읽고 싶어지는 글만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최선을 다하는데도, 이런 노력들이 헛되는 순간이 참 많다. 나는 분명하게도 지쳐가고 있었다. 나는 작가가 아니라, 감정 없는 칼럼니스트처럼 딱딱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부담감과 압박감도 느껴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쓰기를 멈출 수 없었다. 훌쩍 휴가를 떠나고 싶은데도,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 난 뭘 하고 싶은 걸까? "라는 생각이 조금씩 나를 잠식해 나갔다. 나는 똥 마려운 강아지 마냥, 산만스럽게 고민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그래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는다. 몇 번이고 글을 썼다가 지운다. " 이 글이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까? "라는 자기 검열 때문이다.
그리고 몇 시간을 고민했다. " 그래 그냥 아무거나 쓰자. "라는 결단을 내렸다. 이 글의 콘셉트는 이렇게 순식간에 탄생했다. 독자분들이 아니라, 나를 위한 글도 한 번쯤은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므로 이 글은 당신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그저 일기에 불과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이 이 글에서 조그마한 도움을 받는다면, 나는 기쁠 것이다. 나의 고민과 푸념이 당신의 고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도움이 될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나는 쓰고 싶은 글을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았다.
나는 작가이다. 당신도 알다시피 작가는 내면에 어린아이를 키우고 있다. 순수한 시선과 관점이 있어야만 작가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당신이 너그럽게 아이 같은 나의 푸념을 들어줄 거라 생각한다. 또한 당신이 인내심이 부족하여, 이 글을 읽지 않고, 덮는다고 해도 괜찮다. 나는 계속해서 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갈 것이다. 왜냐면, 나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이 많다. 생각이 많다는 건 양날의 검과 같다. 생각이 많다는 건 아이디어가 많다는 장점도 있지만, 과한 불안감과 걱정의 원인이 되기도 하니깐 말이다. 나는 살려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분명하게도 나는 글을 쓰면서 치유받았고 살아남았다. 글쓰기는 나에게 친구이자, 동료이고, 구원자이다.
솔직히 고백하겠다. 최근에는 나를 위한 글을 전혀 쓰지 않았다. 독자들의 눈치를 봤다. 독자의 입맛에 맞게, 네이버의 로직에 맞게 글을 쓰려고 아등바등 애썼다. 어느새 글쓰기가 일이 되어 버렸다. 과거에는 글쓰기를 재미로 했었다. 초원에 양 떼를 풀어놓듯이, 생각이라는 양을 종이라는 초원에 풀어놓았던 것이다.
어느새 이 초원은 관광지가 되었고, 점차 개성을 잃어갔다. 가지 각색이었던 양들은 전부 비슷한 모양새를 하게 되었다. 관광객들이 보기 좋게 말이다. 딱 나의 모습 같았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 나는 글쓰기에 재능이 있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하고 살 것이다. " 내가 정말 이 분야에 재능이 있는 걸까? " " 혹시 시간 낭비를 하고 있는 게 아닐까? "라고 말이다. 나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자주 이런 고민에 빠진다는 점을 발견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책을 읽는다. 조금이라도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이미 죽은 현인들은 똑같이 말한다. " 모든 답은 네 안에 있다. "라고 말이다. 너무 어려운 말이 아니던가. 내 안에 답이 있다는 사실은 어렴풋이 안다. 나는 내면의 빛을 좇아 여기까지 왔다. 유일하게 나 스스로 결정한 일이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확신할 수 있다.
그런데도, 아직도 어렵다. 내가 잘하고 있는지, 말이다. 누구에게 물어보고 싶어도, 대답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완전히 통제된, 쓸쓸한 세상에 갇힌 기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믿어보고 싶다. 나 자신을 말이다. 나는 남을 응원하듯이, 나 자신에게 용기를 주지 않는다. 이건 아주 고약한 버릇이다.
나는 아내가 일이 끝나면, 차를 타고 데리러 나간다. 그리고 아내는 차에 탄다. 나는 묻는다. " 오늘은 잘했어? " 그럼 아내는 시큰둥하게 대답한다. " 뭐 그럭저럭. 잘 모르겠어. "라고 말이다. 풀이 죽어 입이 삐죽 나와있다. 나는 주저리주저리 용기를 주는 말을 쏟아낸다. " 오랫동안 일하면, 분명 더 잘할 거야. "라고 말이다.
그런데, 스스로 그런 말을 해준 적이 없었다. 남에게만 용기를 주고, 할 수 있다고 응원하면서, 스스로에게는 그런 말을 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용감하게 컴퓨터를 다시 켰다. 나는 새로운 브런치북을 만들고, 후다닥 손가락을 움직여 나를 응원하는 글을 쓰고 있다.
이 글은 어떤 자료 조사도, 억지스러운 조언도 없다. 그저 마음 가는 대로 편하게 쓰고 있다. 지금 쓰고 있는 글은 휘갈겨 쓴, 일기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과거의 위대한 작가들도 솔직한 마음을 담은 글을 써서 책상 서랍에 넣고, 아무도 보여주지 않았다. 자신의 감정과 심정, 이야기를 대중에게 공개하는 것이 껄끄럽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렇게 대단한 작가가 아니기에, 독자들에게 공개하려고 한다. 그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작가라는 사실을 너그러이 알아주었으면 한다. 이 글은 나의 사적인 감정을 담은 에세이다. 그래서 편하게 작성될 예정이다. 당신도 맥주 한 캔을 마시며, 편하게 읽어도 좋다.
위대한 철학자이자, 시인인 랄프 왈도 에머슨은 자기 신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 자신을 믿어라. 어떤 마음이든 그 강한 현에 맞춰서 울리게 되어 있다. 신의 섭리가 우리를 위해 찾아준 자리, 동시대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 그리고 사건의 연관성을 받아들여라. 위대한 사람들은 언제나 그렇게 했다. "라고 말이다.
나도 에머슨의 말처럼 살고 싶다. 나 자신을 믿고 싶다. 또한 나의 방식과 신념을 믿고 싶다. 잘되지 않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방향으로 글을 쓰고 싶다. 물론 독자들을 위한 글은 계속 쓸 것이다. 분명하게도, 나는 독자들에게 힘이 되고 싶다. 그러면서도 돈을 벌고 싶다.
생계를 이어갈 수 있어야, 독자들을 위한 글을 쓸 수 있다. 그래야 좋아하는 글쓰기를 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나에게 위로와 힘을 주었으면 한다. 힘들더라도, 네프콘을 최선을 다해 운영하라고 말이다. 즉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단순하다. 남을 위한 글도, 나 자신을 위한 글도 쓰겠다는 엄중한 선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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