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일러 문 Oct 10. 2024

고양이와 종이상자

루루봉은 종이상자를 좋아해.

종이상자가 쓰임을 다하고 바로 버려지는 일이 거의 없다. 고양이가 온 후로는 그랬다. 케아 배송 상자만들어주었던 루루의 첫 번째 종이상자 집이나 벌크업 되기 전까지 루루의 아지트가 되어주었던 햇님이의 운동화 상자. 새로운 무언가를 담고 왔던 종이상자들은 루루의 아늑한 공간이 되어주었다.


그러다 루루의 거대 성장을 견디지 못한 종이상자들 슬슬 모서리가 벌어질 때즈음 그들 새로운 생을 위 재활용분리수거차에 실려가곤 했다. 그것이 가벼운 종이상자들의 운명이었고, 그 덕에 집사들의 무거운 마음들은 조금 더 가벼워질 수 있었다.


중요한 모임을 앞두고 애들 아빠의 낡은 구두가 내내 마음에 걸렸던 터라 새로이 구두 한 켤레를 장만했다. 이를 가장 반겼던 이는 다름 아닌 루루. 조심스레 다가와 냄새를 맡아보다 슬며시 한 발 한 발 넣고 각을 살펴 자리를 잡다. 자기 몸에 꼭 맞는 안락한 공간이 마음에 드는지 종이상자가 새로운 식빵 굽는 스이 되었더랬다.


최근 급격한 날씨 변화에 놀랄 노자를 체감하고 있는 집사 청소를 하다 더 소스라치게 놀라는 일 경험했다. 무심코 들던 상자의 날카로운 부분에 손을 베고 만 것. 종이에 베인 상처에서 피를 보고 나니 그제야 상자의 위험한 부분들이 눈에 들어왔다. 세심하게 살피지 못한 후회가 스쳐 지나갔고, 그럼에도 루루가 무사하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안전 종이상자가 필요했다. 침 고양이 화장실 모래를 구매할 타이밍. 고양이 모래를 주문하며 혹시 몰라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던 고양이상자 다시 살폈다. 고양이 상자 하나를 얹으면 무료배송이 되어버리는 얄팍한 상술에 송비가 세상 아까운 집사는 쾌히 넘갔다.



 도착한 고양이종이상자는 늘 그렇듯 루루의 최애장소가 되어 있다. 아늑한 공간에 낮게 앉아 식빵도 굽기도 하고, 제 몸의 구석구석 부지런히 핥으며 그루밍도 한다. 상자바닥의 스크래쳐를 야무지고도 신나게 긁으며 심리적 안정을 취하고 있으니 이렇게 오래도록 루루가 즐거이 잘 써줄 일만이 남았.


고작 상자 하나로 이리도 행복해질 수 있는 고양이라니, 렇게 집고양이의 행복모먼트를 지켜다. 박한 행복을 는 고양이가 곁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새삼 많은 것을 가지고도 더 많은 것을 바라고 사는 삶을 반성하게 된다. 행복한 고양이의 삶을 바라보며 행복할 집사라 행복한 밤, 잠든 루루를 바라본다. 복하고 행복할 것이다.



 

+) 부쩍 살이 오른 루루의 앉은 뒷모습이 서양배 같다며 키득키득거리곤 했는데,
종이상자의 한라봉그림과도 닮아 종이상자와 더불어 '루루봉'이라는 새로운 애칭도 얻었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