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뭐 하세요?
이 평범한 질문 때문에 펑펑 운 적이 있다.
남편을 보내고 얼마 후,
남편과의 추억이 깃든 집을 떠나 작은아들 회사와 좀 더 가까운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우리는 이사를 많이 다녔다. 집에 대한 로망이 남달랐던 나는, 집을 꾸미고 평수를 늘려가는 재미에 빠져있었다. 살던 집도 2년 남짓, 그리 오래 살던 집은 아니었지만 남편과의 마지막을 보낸 집이어서 추억이 남달랐다.
그 집은 산으로 연결된 산책로가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 길을 묵주기도를 바치며 매일 걷고 또 걸었다. 그 길에 그가 있는 듯, 함께 앉아 있던 벤치에 저녁이 다 되도록 앉아 있기도 했다.
이사하며 몸도 마음도 참 많이 힘들었지만, 그 집을 떠나며 그와의 추억도 조금 옅어지길 바랐나 보다.
새로 이사한 집과 가까운 성당으로 *교적도 옮겼다.
새로운 동네,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조용히 신앙생활을 하고 싶은 바람도 있었다.
*교적이란 신자의 세례, 견진, 결혼, 사망 등에 관한 기록 대장입니다. 교적은 가톨릭 신자의 주민등록과 호적인 셈입니다.
결혼 전, 주일학교 교사를 하며 성당 활동에 열심이었지만 결혼 후 아이들을 키우며 주일미사도 자주 빼먹었다. "미사 가자"하고 남편이 서두르면 "당신이 우리 집 대표로 갔다 와"하며 늦잠을 자기도 하고, 밀린 집안일에 미사는 뒷전으로 밀릴 때가 많았다. 아이들 초등학교 때까지는 그래도 이어지던 신앙생활이 점점 나태해지고 있었다.
막내아들을 신학 대학에 보내실 만큼 독실한 신자셨던 어머니께서 미사에 다녀왔는지 물어보시면, 미사를 빼먹고도 다녀왔다고 거짓말하는 일이 많아졌다.
일 년에 네 번 명절과 부활절, 성탄절에는 온 가족이 모여 함께 미사를 보았는데, 점점 행사 때만 미사를 보는 날라리 신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 우리에게 위기가 닥치며 우리의 마음은 다시 신앙에 의지했다. 감내하기 힘든 고통 앞에 신앙은 우리를 밝혀주는 불빛과도 같았다.
그를 떠나보내고 신앙이 내 생활에 중심이 되며 일 년은 꼬박 매일 미사를 다녔다. 월요일은 새벽 여섯 시 미사,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주중 미사, 일요일은 교중 미사를 보았다. 미사 보는 동안은 그가 나와 가까이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기도 안에서 그와 만나고 싶었고 천국에서 그가 안식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교적을 옮기면 새로 전입 온 신자와 신부님이 면담을 하신다.
이는 전입을 환영하는 의미도 있고 신앙생활을 독려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미사가 끝나고 사무실 앞을 지나는데 사무장님이 면담 일정을 잡자고 시간을 물어오셨다.
"캐롤린, 다음 주 시간 괜찮아요? 신부님과 면담 시간 잡으려고요."
면담은 강제적인 게 아니어서 미룰 수도 있고 내가 싫으면 얼마든지 피해 갈 수 있었다.
그런데 적당히 둘러대지 못하고 "네"라고 답해 버렸다.
딱히 거절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럼, 신부님께 말씀드려 놓을게요."
"네.."
다음 주 주일미사가 끝나고 면담 시간, 신부님과 마주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주로 신부님이 질문하시면 내가 답하는 식이였고, 세례는 언제 받았는지, 신앙 생활하며 봉사나 단체 활동을 했었는지 등을 질문하셨다.
그리고 얘기 끝에
"남편은 뭐(무슨 일) 하세요?"라고 물어오셨다.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면담 중에 기본은 호구조사 아니던가.
남편이 비신자면 전교를 위한 것이고, 신자라면 단체나 봉사 참여를 권유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신부님이 물어오실 걸 대비해 나름 시나리오도 준비했었다.
"좀 멀리 출장 가 있어요." 아주 거짓말도 아니다. 그는 하늘나라로 출장 갔으니 말이다.
아니면, 진짜 솔직히 말씀드리는 거다.
"남편이 암으로 투병하다 하느님 곁으로 갔어요."라고..
물어보지 않으실 수도 있으니 괜한 걱정일 수도 있었다.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며 일단 부딪혀 보기로 했다.
하지만 시나리오는 개뿔, 난 신부님의 질문에 무너졌다.
살면서 가끔은 받아봤던 질문이다. 가까운 친구면 "남편은?" 건강이나 회사 생활이 어떠냐는 포괄적인 물음을 담고 있다. "잘 지내지~"라고 웃으며 답했고, 또는 모임이나 직장에서 "남편은 어떤 일을 하세요?라고 물어올 때도 있었다. 남편이 내 옆에 있을 땐 아무 문제 없는 질문이었다. 그런데 그 물음이 비수처럼 나의 가슴에 박혔다.
그냥 눈물이 흘렀다.
"하느님 곁으로 갔어요."라는 그 말이 도저히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혹시 물어보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닥치니 난 할 말을 잃고 펑펑 울어버리고 말았다.
서러움이 밀려와 눈물 콧물을 다 쏟으며 흐느끼다 손수건에 코를 여러 번 풀고서야 진정이 되었다.
신부님은 당황해하셨지만 내 눈물이 멈출 때까지 기다려 주셨다.
눈물이 어느 정도 멈추고 나서야 남편 얘기를 말씀드릴 수 있었다.
신부님은 "누구나 죽습니다. 조금 먼저 간 것뿐이에요." 마태오가 하느님 곁에서 잘 있을 거라고 하시며 그를 위해, 또 나를 위해 기도해 주셨다.
한참이 지나 신부님과 식사 자리가 있어 인사를 드렸는데 날 기억하지 못하셨다. 그때 마스크를 쓰고 면담해서 못 알아보시는 것 같았다. 아니면 내가 민망해할까 봐 모르는 척하신 건가?
아무튼 부끄러워 숨고 싶었는데 얼마나 다행이던지..
마스크와 손수건이 고마웠다.
같이 걷던 코스모스 길에서 '니가 꽃보다 예뻐'라고 말해주던 사람. 당신도..(그림. 김수정)
남편은 뭐 하세요? 이 질문은 여전히 먹먹하다.
뭐라 답해야 할지.. 그가 있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수정이 아직도 울보네, 수정이는 웃어야 예쁜데."
날 웃게 해 주던 사람, 당신이 없는데 내가 웃을 수 있을까..
독자 여러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11월 19일)부터 베트남으로 성지 순례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다음 한 주는 연재를 쉬어가려 해요.
2부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는데, 휴재하게 된 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한 주 동안 저의 이야기도, 신앙도 차곡차곡 정리해 돌아오겠습니다.
독자님들의 너른 양해 부탁드리며, 건강히 잘 다녀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작가 김수정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