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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정 Nov 11. 2024

새기고 싶은 마음

2. 그의 묘비석


당신에게 가는 길


언제쯤 당신에게 닿을까

당신에게 가는 멀고 먼 길

당신 만나 하고픈 말 많은데

사랑합니다.

그립습니다.

몇천 번을 말해도

닿을 수 없는 그곳

당신에게 난 언제쯤 닿을 수 있을까






5월 어느 주말, 큰아들과 함께 산소로 향했다.


작은아들은 약속이 있어 서울에 갔고,  혼자 있을 내가 걱정되어 큰아들이 내려왔다.

나의 무기력과 슬픔은 아들들에게 그대로 전이되고 있었고 아들들은 그런 날 혼자 두지 않기 위해 애썼다.

두 아들은 아빠를 잃은 상실과 나를 보호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동시에 견디고 있었다.


서울에서 내려온 큰아들이 "엄마, 주말에 아들이랑 뭐 할까?"라는 물음에  산소에 가고 싶다고 대답했다.

평소에도 내 발걸음은 종종 선산을 향했는데, 외딴곳이니 혼자 가지 말라고 당부했었던 아들은 흔쾌히 "그럼 같이 가자"라고 답했다.


소주 한 병과 그가 좋아하던 과자 한 봉을 들고 큰아들과 같이 선산으로 향했다. 산 입구에 막 들어섰는데 남자 두 분이 그 길에 서 계셨다. 가까이 가서 보니 남편 회사 분들이었다.

며칠 전, 상무님이 산소 주소를 물어보시기에 메시지로 답을 드렸는데 회사 동료와 함께 산소를 찾은 것이다.


그가 투병할 때도 자주 안부를 물어주시고, 맛있는 보양식을 사주곤 하셨던 상무님이 일부러 시간 내서 산소까지 찾아와 주시니 더 반갑고 감사했다.


한편으로는, 더 이상 그리운 사람을 직접 찾아갈 수 없는 그의 상황에 가슴이 아려왔다.

분명 "오셨습니까" 하고 호탕하게 웃으며 악수를 청했을 그였다.


두 분은 준비해 오신 향나무 묘목을 산소 양쪽에 한 그루씩 심으시고 그를 추억했다.


"황팀장은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좋은 에너지로 주변을 밝게 했고, 같이 놀지 않아도, 그가 놀고 있는 모습만 보아도 웃음을 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같이 보낸 시간이 많이 생각납니다."

상무님은 나를 보시며 말씀을 이어갔다.

"제수씨가 힘내셔야 황팀장이 편히 갑니다. 제수씨가 힘들어하는 걸 바라지 않을 거예요. 산소도 자주 오지 마세요. "

"..."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아 답을 못하고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제수씨가 빨리 일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남편을 얼마나 아끼셨는지 알기에 나를 걱정하는 그분의 인사가 오래도록 감사함으로 남았다.   

상무님은 큰아들의 어깨를 토닥이시며 엄마인 나를 잘 챙기라고 말씀하시고 산에서 내려가셨다.






그는 자기의 유해로 작은 들꽃을 심으라고 유언했었다.


https://brunch.co.kr/@@d32d/68


우리는 좀 더 오래 볼 수 있고 산에서도 잘 자라는 봄나무 철쭉을 심었다.

그 꽃나무 앞에 비석을 만들고 싶었다.


무기력했던 내가 그를 위해, 어쩌면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하기 시작했다.


그를 기리는 비석을 만들기로 마음먹고, 인터넷으로 업체를 검색하고 문구를 작성했다.


막내는 "엄마 하고 싶은 거 다 해"라고 말했지만

큰아들은 외진 산속에 있는 선산에, 내가 자주 오가는 것을 마뜩잖아했다.

"엄마, 아빠는 어디에나 우리와 함께 있어"라는 말을 자주 했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흔적을 우리의 마음을 남기고 싶었다.

 

비석을 주문하고 택배로 배달되었는데 엄청나게 무거웠다.

20kg이었는데 체감상 40kg도 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비석을 산으로 옮기는 일이 가능할까 싶었다.


예상대로 비석을 산 위로 나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6월, 더위가 막 시작되던 무더운 날씨에 두 아들이 번갈아 가며 신히 비석을 날랐다.


비석 놓을 자리를 정하고 막상 놓고 보니 그제야 오타가 보였다.

그의 생일이 8월인데, 6월로 표기된 것이다.

앗! 이럴 수가.. 업체에 보낸 메시지를 확인하니 나의 실수였다.

힘들게 가져왔는데, 우리 셋은 멘붕에 빠졌다.

"엄마! 비석 놓다가 아들들 탈진하겠어." 아들들의 원망을 들으며

우리는 그날 그 무거운 비석을 다시 가지고 내려와야 했다.


오타를 수정해 다시 업체에 비석을 주문했다. 묘비석 문구도 큰아들이 좀 더 간결하게 다듬어 주었다.

한번 실수했으니 오타가 없는지 아들들과 같이 몇 번을 확인했다. 그리고 아들들 의견을 반영해 부족한 부분을 보완했다. 글씨체를 고딕에서 명조체로 바꾸고, 비석 모양도 입석에서 평상비석으로 바꾸었다.

그렇게 다시 주문한 비석을 받고 보니 처음보다 더 괜찮아 보였다. 비용은 두 배를 지불했지만 말이다.


드디어 두 번째 디데이, 그날은 시댁 가족들이 함께해 주었다.

건장한 청년인 사촌들이 함께 들어주니 처음보다 수월하게 옮길 수 있었다.

나의 고집을 묵묵히 따라 준 두 아들과 가족들에게 고마웠다.


비석을 놓는 과정에 맘고생 한 것을 아는 지인 언니들이 비석 주변을 꾸미자고 아이디어를 냈다. 나를 친동생처럼 아껴주는 언니들이었다.

언니들과 함께 꽃을 심고 철쭉나무 주변을 꽃으로 꾸미며 못다 한 우리의 마음을 그에게 전했다.


"마태오, 꽃 속에 있네. 보고 있나?" 언니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솜씨가 좋으시네요. 굳~!!"

마태오가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을까?


그의 목소리를 흉내 내고 있는 언니의 모습에 눈물이 나면서도 웃음이 났다.

우리의 그리움이 웃음소리가 되어 산속에 퍼지고 있었다.


선산에 그의 비석이 잘 자리 잡고 있다.

비석이 자리 잡으니 그리운 마음 조각하나 떼어낸 것처럼 조금은 홀가분했다.



그의 묘비석, 그에게 보내는 편지.
너무나 빛나고 아름다웠던 당신.

당신과 함께한 모든 순간이 눈부셨고 축복이었어.

나의 남편으로, 아이들의 아빠로 이 세상에 와줘서 고마워.

늘 최고였던 당신.

영원히 기억할게, 사랑해.  
   
당신의 수정.



비석을 두고 내려가는 길

나를 감싸는 바람에도, 꽃잎에 앉은 나비에도 혹시 그일까.. 잠시 걸음을 멈춘다.  

                    

"수정아, 잘하고 있어. 괜찮아"라고 말해줄 것만 같은 그를 생각하며..


꽃이 되고 나비가 되어


대문그림- 함께 바라보던 그 바닷가 (그림. 김수정)



https://brunch.co.kr/brunchbook/33youan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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