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遊)신부의 대림절 ‘함께 걷는 기다림’
대림절 세 번째 주 목요일, 기다리며 읽는 마태복음서 (19)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 뜰에서 팔고 사고 하는 사람들을 다 내쫓으시고, 돈을 바꾸어 주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성경에 기록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였다. 그런데 너희는 그것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 . . 예수께서는 시장하셨다. 마침 길 가에 있는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보시고, 그 나무로 가셨으나, 잎사귀 밖에는 아무것도 없으므로, 그 나무에게 말씀하셨다. “이제부터 너는 영원히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그러자 무화과나무가 곧 말라 버렸다**. . .” (마태복음서 21:12-22)
화려하고 웅장한 성전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다.” (마 24:1-2)
잎이 무성한 보기 좋은 무화과나무입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너는 영원히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그게 어디 성전의 잘못이겠습니까?
그게 어디 무화과나무의 잘못이겠습니까?
성전이 ‘기도의 집’이 되지 못하고 장사치들의 놀이터, 강도들의 소굴이 된 것이 성전의 잘못일 리가 없습니다. 무화과의 철도 아닌데 무화과나무에 그 열매가 없는 것이 그 나무의 잘못일 수는 없습니다.
주인을, 사람을 잘못 만난 탓이라면 모를까, 하지만 그래도 성전과 무화과나무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억울할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왜 애꿎은 성전과 무화과나무에게 저리 말씀하셨고 또 그렇게 만드셨을까요?
그러나 그게 어디 애먼 성전과 애먼 나무 들으라고 보라고 하시는 말씀이고 일이겠습니까?
물론 그게 아니겠지요.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향한 의심 없는 믿음과 기도가 보이질 않고, 이웃을 향한 사랑과 자비와 정의 그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들 들으라고 하시는 말씀이고 보라고 하시는 일이겠지요.
“기도하는 집인 ‘성전’이 강도들의 소굴이 되어 버렸으니, 다 무너질 것이다. ‘무화과나무’에 열매는 없고 잎만 무성하니, 말라 버릴 것이다.”
그런데 계속해서 이 말씀을 ‘성전’ 그리고 ‘무화과나무’로만 읽으니 듣는 성전과 무화과나무에게 조금은 미안도 하고, 게다가 영 남 얘기를 듣는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조금 다르게 읽어보면 어떨까 싶어 각각 ‘교회’와 ‘그리스도인’으로 바꾸어 읽어봅니다.
“ . . . ”
읽어보니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그때 당시만의 이야기는 아닌 듯 싶습니다. 그래서 내친김에 다음 구절도 바꾸어 읽어봅니다.
“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마 7:21)
마찬가지로 여기 ‘주님, 주님’을 ‘교회, 교회’ 혹은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인’으로 바꾸어 읽어봅니다.
“ . . . ”
읽어보니 이 말씀 역시 꼭 그렇게 아주 남 얘기만은 아닙니다.
예나 지금이나 그게 다 사람들 잘못이고 우리들 탓입니다.
“잎사귀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무화과의 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가복음서 11:13)
이 구절을 핑계 삼을 수도 있겠습니다. 아직 열매가 열리는 철도 되지 않았는데 아무리 시장하셔도 그렇게 느닷없이 오셔서 열매를 찾으시는 것은 조금 너무하셨던 것이 아닐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조금 기다리셨어야하지 않았을까?
지금이 무화과의 철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이 철을 탓할 때일까요? 지금이 계절 타령, 시절 타령을 할 때일까요?
철 없고, 철들 줄 모르고, 철들 생각도 철들 기미도 없는 우리들 탓에 나무에 열매가 없고, 성전이 장사치들로 북적이는 것은 아닐까요?
무화과의 철은 지나도 이미 한참을 지났는데, 철 모르고 보기 좋은 잎사귀만 무성한 나무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팔고 사느라 시끌벅적 요란한 성전 마당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지금은 그 무화과의 철이 지나도 훨씬 지난 때입니다. 무화과의 철이 아니라서 무화과 나무에 무화과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길 가다 돌 맞은 참 억울한 성전과 무화과나무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리고 사람들은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알아들었을까요? 그 돌이 자기들이 던진 돌이라는 것을 알았을까요? 그 던진 돌이 바위가 되어 자기들에게 날아올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을까요? 모르겠습니다.
성탄절이 얼마 남지 않은 탓입니다.
“그러나 나는 희망을 가지고 주님을 바라본다. 나를 구원하실 하나님을 기다린다. 내 하나님께서 내 간구를 들으신다.” (미가서 7:7)
*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무화과 열매는 이스라엘 민족을, 그리고 말라버린 무화과나무는 하나님께 심판을 받는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비유로 흔히 사용됩니다. (참조, 예레미아서 24:1-10, 호세아서 9:10, 이사야서 34:4, 미가서 7:1)
** “아, 절망이다! 나는,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과일나무와도 같다. 이 나무에 열매도 하나 남지 않고, 이 포도나무에 포도 한 송이도 달려 있지 않으니, 아무도 나에게 와서, 허기진 배를 채우지 못하는구나. 포도알이 하나도 없고, 내가 그렇게도 좋아하는 무화과 열매가, 하나도 남지 않고 다 없어졌구나. 이 땅에 신실한 사람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정직한 사람이라고는 볼래야 볼 수도 없다. . . .” (미가서 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