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遊)신부의 대림절 ‘함께 걷는 기다림’
대림절 세 번째 주 수요일, 기다리며 읽는 마태복음서 (18)
“무엇을 원하십니까?” . . . “나의 이 두 아들을 선생님의 나라에서, 하나는 선생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선생님의 왼쪽에 앉게 해주십시오.” . . .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겠느냐?” . . . “마실 수 있습니다.” . . . “정말로 너희는 나의 잔을 마실 것이다.” (마태복음서 20:20-28)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왜 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누구와 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게다가 지금 달라고 하는 것 그것이 무엇이지도 모르면서 그걸 원하고. 그러면서 계속 그 길을 가고, 계속 그걸 달라고 하고.
제자들 얘기입니다.
“선생님, 나중에 그곳에 가시면 우리를 꼭 선생님 오른쪽과 왼쪽에 그렇게 앉혀 주십시오. 그리고 선생님께서 드시는 그 잔도 꼭 우리에게 주십시오, 마시겠습니다. 선생님께서 받으시는 그 세례도 받겠으니 그것도 꼭 주십시오.”
“그래, 너희가 원하니 꼭 그렇게 될 것이다. 내 오른쪽과 왼쪽에 너희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마시는 잔도 너희가 마시고, 내가 받는 세례도 너희가 받을 것이다. ” (마가복음서 10:37-39)
지금 같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인지. 같이 가고 있는데, 같은 길을 걷고 있는데, 같은 곳을 향해 지금 가고 있는데, 그런데 서로 다른 곳을 향해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듯, 서로가 전혀 다른 꿈을 꾸고, 서로가 전혀 다른 기대와 소망을 얘기합니다. 따로 걷는 듯 같이 걷고, 같이 걷는 듯 따로 걷는 스승과 제자들입니다. ‘같은’ 길을 ‘같이’ 걷는데 ‘따로’ ‘다른’ 꿈을 꿉니다.
동상이몽(同床異夢)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스승의 꿈도 제자들의 꿈도 다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나서, . . 그의 머리 위에는 ‘이 사람은 유대인의 왕 예수다’ 이렇게 쓴 죄패를 붙였다. 그 때에 강도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는데, 하나는 그의 오른쪽에, 하나는 그의 왼쪽에 달렸다.” (마 27:35, 37-38)
고통, 고난, 십자가, 그 십자가의 오른쪽과 왼쪽, 그리고 죽음.
제자들이 그걸 원했던 건 아니었을 텐데, 그걸 달라고 했던 건 아니었을 텐데, 알았다면 달라고 하지 않았을 텐데, 그럴려고 왔던 길이 아니었을 텐데, 여기 온 이유가 그게 아니었을 텐데, 그런 일이 있을 줄이야 같이 온 이분이 그런 분이었을 줄이야 정말 몰랐을 텐데. 누군지 제자들이 진작에 알았다면 처음부터 따라오지 않았을 텐데.
그러나 깨달음은 늘 늦습니다.
사람들이 예수께 물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요?”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십니다.
“내가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지 않았느냐? . . .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시며, 나는 그분에게서 들은 대로 세상에 말하는 것이다. . . 너희는, 인자*가 높이 들려 올려질 때에야, ‘내가 곧 나’라는 것과, 또 내가 아무것도 내 마음대로 하지 아니하고 아버지께서 나에게 가르쳐 주신 대로 말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요한복음서 8:25-28)
처음부터 줄곧 말씀을 하셨다는데, 제자들은 갈 데까지 가서야, 여기까지 와서야 비로소 깨닫습니다. 그래도 제자들은 좀 나은 편입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거기까지 가서도 여기까지 와서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깨닫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어디를 향해 가는지 모를 수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지금 무엇을 달라고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자꾸 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 가고 있는지도 모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누구하고 말하고 있는지는 알아야 합니다. 지금 누구에게 달라고 하는지는 알아야 합니다. 적어도 지금 내가 누구하고 함께 가고 있는지는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게 어렵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사람이 없다.” (요 14:6)
제자들의 마음 안에, 그들의 머리 안에는 자기들이 원하는 그 ‘무엇’, 자기들이 가고 싶어하는 그 ‘어디’, 자기들이 생각하는 그 ‘왜’, 그리고 자기들이 그토록 기대하고 기다리는 그 ‘누구’가 이미 오래 전부터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이 지금 정말 ‘누구’와 가는지가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결국 제자들은 가 봐야 알게 될 것입니다. 가 보면 비로소 깨닫게 될 것입니다. 자기들이 무엇을 원했고, 어디를 향해 가고 있었고, 왜 가고 있었고, 그리고 누구랑 가고 있었는지, 그때가 되면 알게 될 것입니다.
잘 모르면서 가는 길, 다 알지도 못하면서 가는 길, 그리고 다 알 수도 없는 길, 그러나 내가 누구랑 가는지 그것을 알았으니 그걸로 충분하다 하며 가는 길. 그것이 ‘예수의 길’ 아닐까, 그것이 믿음이고 은총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너희가 나의 말에 머물러 있으면, 너희는 참으로 나의 제자들이다. 그리고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요한복음서 8:31-32)
그 길 위에 계속 머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대림 절기, 나는 무엇을 원하는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왜 가고 있는지, 그리고 지금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지 다시 돌아보는 때입니다.
* '사람의 아들 (The Son of Man)'
“내가 밤에 이러한 환상을 보고 있을 때에 인자 같은 이가 오는데,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계신 분에게로 나아가, 그 앞에 섰다. 옛부터 계신 분이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셔서, 민족과 언어가 다른 뭇 백성이 그를 경배하게 하셨다.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여서, 옮겨 가지 않을 것이며, 그 나라가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다니엘서 7:1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