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遊)신부의 대림절 ‘함께 걷는 기다림’
대림절 세 번째 주 월요일, 기다리며 읽는 마태복음서 (16)
“그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다가와서 말하였다. “주님, 내 형제가 나에게 자꾸 죄를 지으면, 내가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하여야 합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일곱 번만이 아니라, 일흔 번을 일곱 번이라도 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는 마치 자기 종들과 셈을 가리려고 하는 어떤 왕과 같다. . . . ‘이 악한 종아, 네가 애원하기에, 나는 너에게 그 빚을 다 없애 주었다.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긴 것처럼,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겼어야 할 것이 아니냐?’ 왕이 노하여, 그를 형무소 관리에게 넘겨주고, 빚진 것을 다갚을 때까지 가두어 두게 하였다. 너희가 각각 진심으로 자기 형제자매를 용서해 주지 않으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마태복음서 18:21-35)
용서는,
1
1 x 7 = 7
7 x 10 = 70
70 + 7 = 77
70 x 7 = 490
횟수의 문제가 아닙니다. 산수 문제도 아닙니다. 용서란 나는 지금까지 너를 몇 번 용서를 했으니 이제 몇 번 더 남았고, 그래서 너는 몇 번 더 용서를 받을 수 있으니 너는 나쁜 짓을 적어도 몇 번은 나에게 더 할 수 있다는 그런 숫자 세기가 아닙니다.
“주님, 내 형제가 나에게 자꾸 죄를 짓는데 내가 몇 번이나 용서를 하여야 합니까?”
그러자 이번에는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물어보십니다.
“베드로야, 네가 나에게 자꾸 죄를 짓는데 그럼 나는 너를 몇 번이나 용서를 해야겠느냐?”
예수께서는 지금 용서의 횟수가 아닌, ‘용서란 무엇인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시는 그 마음, 베푸시는 그 자비,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기를 낮추시고 비우시고 부인하시며 종의 모습으로 오신 그 마음, 나를 죽기까지 사랑하신 그 사랑이 용서입니다.
그리고 지금 내가 다른 사람에게 하고 또 받는 용서는 바로 내가 하나님께 받은 그 자비와 사랑의 인간 버전이고 또한 이 땅에서 우리가 해야 하는 그 자비와 사랑의 실천 버전입니다.
‘나는 너에게 용서를 구할 일을 한 적도 없고 하지도 않는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너에게 용서를 구해야 하는가’ 라고 말하니 용서를 하고 싶어도 용서를 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로부터 용서를 받고 싶다 생각했다가도 ‘그럼 난 뭘 또 그렇게 잘못을 했다고 용서를 구해야 하는가’ 싶어 그 누군가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습니다. 그런 나를 보고 다른 누군가는 역시 마찬가지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 용서를 구하지도 용서를 하지도 않습니다. 악순환입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누구로부터 시작된 것일까요? 알면 당장 거기로 가서 그에게 용서를 받고 싶은 심정입니다. 하지만 그럴 수 있나요?
누가 누구를 용서하고 누가 누구의 용서를 구하고 누가 누구에게서 용서를 받아야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으니, 그래서 점점 묘하게 꼬여가니, 나도 너도 점점 더 뻔뻔해져 갑니다. 용서를 하는 것도 받는 것도 점점 힘들어지고 어려워지는 세상입니다.
기도가 필요한 세상, 그러나 기도가 어려운 세상입니다. 그럼에도 기도를 해야 하는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 . .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 . .” (마 6:9, 12)
그러나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 역시 쉽지가 않습니다. 입으로는 쉽게 되뇌어도 삶으로 살기는 어려운 기도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그 기도문 뒤에 경고처럼 덧붙여 하신 말씀입니다.
“너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해 주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해 주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남을 용서해 주지 않으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지 않으실 것이다.” (마 6:14-15)
내가 용서를 해야 나도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하시는데, 그래야 한다고 하시는데, 그건 일종의 기브 앤 테이크와 비슷한 거라고 하시는데 . . . 참 어렵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모릅니다.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눅 23:34)
십자가 위에 계신 예수께서 십자가 아래에 있는 저들, 지금 자기들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저 사람들을 용서하십니다. 예수께서 하시는 이 말씀이 누구는 그리스도교 정신의 정수(精髓), 그리스도교 신앙의 정수(精髓)라고 말합니다.
용서가 필요한 세상입니다.
용서가 필요한 우리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용서를 하고 용서를 받는 계절입니다.
우리에게는 서로가 서로를 용서할 수 있는 예수의 마음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