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봄(春)

노는(遊)신부의 사순절 ‘함께 걷는 어둠’

by 교회사이


사순절 재의 수요일, 걸으며 읽는 마가복음서 (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은 이러하다. 예언자 이사야의 글에 기록하기를, “보아라, 내가 내 심부름꾼을 너보다 앞서 보낸다. 그가 네 길을 닦을 것이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그의 길을 곧게 하여라.’” 한 것과 같이,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 나타나서, 죄를 용서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 (마가복음서 1:1-4, 새번역)


함께 봄 1.JPG photo by noneunshinboo


가는 겨울과 오는 봄 그 사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기억하며, 그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함께 걷는 사순절(Lent, 四旬節), 그 사순절은 회개로 시작합니다.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창세기 3:19)”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이마에 재(Ash)를 바르는 조금은 우울하고 어두운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은 인생무상, 허무와 덧없음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 맨처음, 찬란하고 활기차고 생동하는 하나님의 생명의 기운으로 충만했던 세상, 그 하나님의 숨, 그 숨결로 가득하여 살던 그 에덴의 나를 기억하고, 그때 나에게 내쉬신 하나님의 생기의 숨을 지금 다시 들이쉬어 내가 다시 살고, 다시 내쉬어 남을 살리고, 그래서 다시금 회복하고 새롭게 되고 또 살겠다 하나님 앞에 서는 날입니다.


그때 거기의 세상 그리고 그때 거기의 나의 모습은 희미한 옛사랑의 기억만으로 있지 않고,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 (마가복음서 1:15)” 선포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지금 여기 다시 그러나 새로이 그때가 왔으니, 겁먹고 두려워 피하고 숨고 하지 말고, 부끄럽고 쑥스러워 머뭇거리고 주저주저하고 어쩔줄 몰라 제자리에 얼어붙은 채로 있지도 말고, 멀찍이 서서 그 하늘을 우러러볼 엄두조차 차마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아, 하나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누가복음서 18:13) 하는 저 세리(稅吏)의 그 저리고 간절한 기도로 조용히 가만히 함께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서는 날입니다.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고집스레 가던 길 그 끝에 서서 드는 것이 후회라면, 그 가던 길 멈추고 오던 길 돌아보며 드는 것이 회개가 아닐까 싶습니다. 끝까지 가보자 그 길 끝에 서서 내쉬는 한숨이 후회라면, 그 길 끝이 오기 전 멈칫 가만히 들이쉬는 한숨이 회개가 아닐까 싶습니다. 다다른 그 길 끝에 서서 꼭 쥐는 주먹이 후회라면, 그 길 끝 거기 아직 아닐 때 가만히 펴는 주먹이 회개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 정신없이 가던 길 그 끝나는 곳에 선 채로 흘리는 눈물이 후회라면, 그 가던 그 길은 여기가 끝이다 이젠 그만이다 그 끝을 내는 곳에 선 채로 흘리는 눈물이 회개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지 말껄’ 하며 고개 떨군 후회는 그 옛길 끝에 서고, ‘그러지 말자 이제’ 하며 천천히 고개 든 회개는 새길 앞에 섭니다. 그 둘의 눈물, 그 짠맛은 같아도 그 선 곳은 다르고, 그 왔던 길은 같아도 지금 그 선 곳은 다르고, 이제 앞으로 갈 그 길은 서로 달라도 많이 다를 것입니다.


회개의 눈물은 그래서 감사의 눈물입니다.




그러나 회개는 후회로 되돌아갈 수 있고 그래서 옛길로 다시 갈 수 있습니다. 반면에 후회는 회개가 될 수 있고 그래서 새길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회개도 후회도 줄곧 하다보면 버릇이 되고 이상한 재미도 들리고 그래서 중독이 되어 그게 무슨 꽃길이나 된다는 듯 계속해서 회개에 머물고 후회에 머물면 어느새 하나의 신(우상)이 되어 그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나를 발견합니다.


그래서 사순절은 겨울과 봄 그 사이에서 발을 떼지 못하는 나를 찾아옵니다. 멈춘 채로 머무는 그 사이로, 내리는 겨울비인지 봄비인지 그 차갑고 서늘함은 여전하고, 꽃을 샘내는 것인지 꽃을 기다리는 나를 샘내는 것인지 아침 저녁으로 드는 한기는 매한가지인 듯 하고, 눈이라도 올라치면 겨울옷을 입을까 벗을까 봄옷을 꺼낼까 말까, 거울 앞에 서고 문 앞에서 서성입니다. 자신있게 문을 나서지 못하는 나입니다.


옛길의 유혹으로 새길 앞에서 머뭇거리고 주저하고 조금은 두렵고 떨려 그 익숙한 옛길 주변을 떠나지 못하고 서성이는 나에게 사순절은 말합니다.

“서두르지 말아라. 조급해 하지 말아라. 괜찮다. 잠깐 가만히 몰아 쉬고 뱉었던 그 가쁜 숨들을 고르고 돌리고 가라앉혀라. 괜찮다. 그래도 괜찮다.”


그리고 조용히 묻습니다.

“나는 지금 나의 가슴 뛰는 소리를 듣는가, 그 박동을 느끼는가? 그분께서 나에게 내쉬시는 그 숨을 들이쉬는가, 그 숨소리를 듣는가, 그 숨결을 느끼는가, 그 숨을 나는 쉬고 내뱉는가? 그리고 나는 너는 우리는 그냥 이대로 좋은가, 그냥 내쳐 가도 좋은가?”


함께 봄 2.JPG photo by noneunshinboo


사순절은,

지금 세상의 계절이 맞는지, 지금 우리 사는 계절이 맞는지, 나는 지금 어떤 계절을 살고 있는지, 그러나 나는 어떤 계절을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어떤 계절이어야 하는지, 묻고 답을 찾아가는 그래서 재의 수요일로 시작하는 사순절은 그 계절들 사이에 멈추어 서서 그 오던 길 돌아보고, 가던 길 돌려보고, 갈 길을 더듬는 시간이고 시기입니다.


옛길을 돌이킬 수는 없어도 새길은 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길이고, 사순절은 그 길을 가는 그래서 아프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예쁜 봄이 오는 길입니다. 예수께서 걸으셨던 그 아프고 슬픈 어둔 밤 어둔 길, 그러나 영원한 봄이 오는 그 길, 생명의 봄으로 가는 그 길, 그 봄길이시고 그 봄이신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로 우리가 함께 걷는 사순(四旬)의 짧지 않은 여정, 봄은 매번 그 길로 옵니다.



봄처녀 제 오시네 새 풀옷을 입으셨네

하얀 구름 너울 쓰고 진주 이슬 신으셨네

꽃다발 가슴에 안고 뉘를 찾아 오시는고


님 찾아 가는 길에 내 집 앞을 지나시나

이상도 하오시다 행여 내게 오심인가

미안코 어리석은 양 나가 물어 볼까나


이은상 시 <봄처녀>



따로 따로 시작하고 따로 따로 걷고 따로 따로 맞는 그런 따로 따로의 봄은 너무 외로운 쓸쓸한 홀로 봄입니다. 저 혼자 시작해서 저 혼자 걷다가 저 혼자 맞는 저 혼자의 봄이면 참 재미없는 시시한 혼자 봄입니다.

내것이다 내가 먼저 맞겠다 내가 다 갖겠다 냅다 뛴다고 봄이 나 혼자만의 것이겠습니까? 내 것 따로 네 것 따로 맞는 봄이 따로 따로 좋기만 좋겠습니까? 그럴 수 없고, 그러지는 말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봄이 되어 오시는 예수, 봄길이 되시는 예수, 그리고 봄이신 예수를 함께 걷는 봄, 함께 맞는 봄, 그래서 ‘함께 봄’이면 좋겠습니다.


복음의 시작은 ‘함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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