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영광을 보겠다고
잔칫집에서 다이어트를 . . .

노는(遊)신부의 사순절 ‘함께 걷는 어둠’

by 교회사이


사순절 첫 번째 주간 월요일, 걸으며 읽는 마가복음서 (5)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금식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물었다.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파 사람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왜 선생님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습니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혼인 잔치에 온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을 자기들 곁에 두고 있는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다.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터인데, 그 날에는 그들이 금식할 것이다. 또,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담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가죽 부대를 터뜨려서, 포도주도 가죽 부대도 다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담아야 한다.’” (마가복음서 2:18-22)


무슨 영광을 보겠다고 1.jpg photo by noneunshinboo


“너 아무것도 안 먹는 것 같던데.”

“어? 아니 . . . 그냥 좀 . . .”

“왜? 무슨 일 있어?”

“어 그게 . . . 사실 나 요즘 다이어트 중이라서 . . . 그래도 네 결혼식인데 조금 먹어볼까 싶었는데, 여긴 음식 테이블이 다른데 보단 조금 멀고 해서 . . . 물만 조금 그냥 마실까 싶은데 . . . 그러지 말라고 해도 자꾸 뭘 갖다 준다고 해서. . . 그냥 가기도 좀 그렇고 . . . 내 결혼식 청첩장도 못받은 친구들도 있는 것 같고 . . . 또 내가 하는 그 다이어트가 궁금해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 . . 오랜만에 만나기도 했고 . . . 이제 그만 갈까 싶은데 조금 어지럽기도 하고 . . . 다이어트가 체질인지 그렇게 힘들진 않은데 . . . 물 갖다 달라 했으니 물이나 먹고 갈까 싶어서 . . .”


새신부의 묻지도 않은 말에 저 건너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도 다 들을 정도로 힘없는 듯 그러나 힘있는 목소리로 할 얘기는 죄다 하는 저 밉상 친구는 왜 여기 결혼 잔칫집에 온 것일까요? 새신부 억장 무너지는 소리를 지금 듣기는 할까요?


힘들면 그냥 온라인 뱅킹으로 축의금만 보내고 오질 말던가, 저도 결혼 앞둔 처지니 왔으면 그냥 단체 사진만 찍고 조용히 가던가, 피로연까지 왔으면 먹던가, 아니면 먹는 흉내라도 내던가, 기껏 비싼 돈 주고 주문한 호텔식 부페 앞에 두고 다이어트한다고 왜 저리 궁상을 떨까요? 늘 들고다닌다는 그 비싼 생수통 그냥 폼인지 거기 떡하니 올려놓고는 굳이 서빙보는 사람 불러 앞에 놓인 와인잔에 물 따라달라는 건 뭘까요? 이 밉상스런 친구는 도대체 여긴 왜 왔을까요?


그 신부도 결혼 앞두고 몇 번이나 시도했다 포기한 그 다이어트를 굳이 여기까지 와서 너 못한 다이어트 난 한다고 자랑질하는 것도 아니고, 며칠 굶은 티 얼굴에 절대 내지 않겠다고 작심이나 한 듯 화장은 지가 신부인지 왜 저리 요란스러운지. 그리고 누가 물은 것도 아닌데 굳이 다이어트중이라고 그래서 힘 없다며 할 말은 다하고, 살 많이 빠졌지 여기 쇄골 보이지 보라는 건지 보지 말라는 건지 대놓고 입은 그 옷차림은 도대체가 뭔지, 정말 힘이 없어 그런건지 안 먹고 배고픈게 먹고 배부른 너 보다 훨씬 배부르다는 건지 생글생글, 그 넓은 결혼식 홀 하필이면 다 보이는 한가운데 앉아 있을 이유가 도대체 뭘까요? 왜 좋은 날 남의 속 저리도 뒤집을까요?


무슨 영광을 보겠다고 친구 결혼식까지 와서 저렇게 궁상맞게 다이어트를 한다고 난리일까요?




엊그제 새로 산 새하얀 원피스를 입고 신부 곁에 바짝 붙어 생글생글 단체 사진 찍는 그 밉상중의 밉상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진 않는 여기 바리새인들, 그런 저들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예수께 조용히 다가와 묻습니다.

“아니 선생님, 요한의 제자들도 그렇고 저기 앉아있는 바리새인들도 그렇고, 저렇게 다들 금식을 한다고 난리들인데, 선생님 제자들은 왜 금식을 하지 않습니까?”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결혼 잔칫집에 온 신랑 신부의 친구들이 어떻게 금식을 할 수 있겠느냐? 해도 나중에 때가 되면 그때에 하면 될 것을, 그리고 저 혼자 조용히 하면 될 것을 왜 지금 여기서 하겠다 그 난리냐?”




금식은 자선 그리고 기도와 함께 전통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사순절을 지켜왔던, 그리고 지금도 많은 수도자들과 신자들에 의해 행해지는 하나의 영성 수련 혹은 영성의 실천(Spiritual Practice)입니다.*

금식은 40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하셨고 또 유혹을 받으셨던 예수님, 십자가 고난의 길을 가셨던 예수님을 기억하며 그분의 고난과 고통에 함께하겠다는 하나의 상징적이며 실천적 동행입니다. 이집트를 탈출한 후 40년의 광야, 그 하루 하루를 오직 하나님께 의존할 수 밖에 없었던 그 긴 여정을 기억하며 나를 다시 돌아보고 나의 신앙의 여정을 점검하고, 나 또한 하나님 앞에 겸손과 회개와 속죄가 필요한 죄인으로 하나님의 은총과 자비가 필요한 그래서 하나님께 간절히 간청하는 작은 존재임을 고백하는 하나의 상징적 그리고 실천적 행위입니다.


또한 금식은 기도와 함께, 나의 왼손이 나의 오른손을 나의 오른손이 나의 왼손을 의식하지 않고 서로도 모르게 가난한 내 이웃에게 그 손을 뻗는, 나의 곳간을 비워 가난한 사람의 텅빈 곳간, 아니 곳간조차 있을 턱이 없는 그 가난한 쌀통을 채우는 자비와 자선의 실천입니다.


그래서 금식은 겸손이고 회개와 속죄이고 간청이고, 또한 자선이고 자비입니다. 누구에게 보이고자 하는 자랑일 수도 과시일 수도 없는, 그래서 티를 내지 않는 오히려 몰래하는 영성 수련이고 실천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금식은 나를 비우고 버리고 작아지고 미니멀해진 그래서 가난해진 나, 영적 존재로서의 나, 영성이 있는 삶을 사는 나가 되기 위한 다이어트입니다. 누군가에게 예쁘게 보이고 멋지게 보이고 자랑하고 싶은 나가 되기 위한, 미용을 위한 다이어트가 아닙니다.


“도대체 너는 금식을 왜 하는 것이냐?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금식이냐?”


남에게 그리고 나에게 신실하고 경건하게 보이려고 심지어 하나님께도 그렇게 보이려고 하는 다이어트, 금식은 곧 위선일 수 있습니다.** 그 보이려 애쓰는 그래서 결국 금식이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고, 그 초대받은 잔칫집에서 조차, 그 신랑 앞에서 조차 보이려고 자랑스럽게 금식하는 나의 위선적인 모습에 대한 예수님의 지적입니다.


무슨 영광을 보갰다고 2.JPG photo by noneunshinboo


나를 보이려 찾는 잔치도 아니고, 나를 드러내기 위해 여는 잔치도 아니고, 가난한 내 이웃을 불러 내것을 나누는 잔치, 누구나 와서 함께 먹고 마시고 즐겁게 노는 잔치, 거기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그 아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자리를 마련하시고 우리를 죄다 부르시는 그 잔치, 거기에 금식은 없고 흥겨운 춤과 노래, 그리고 맛난 음식과 포도주가 있어 함께 즐기는 잔치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너희의 그 입던 헌 옷으로는 나를 입힐 수 없으니, 너희가 가져온 그 헌 가죽부대로는 나를 담을 수 없으니, 그만 애를 써라. 그러지말고 너희가 내가 입을 새 옷이 되고, 나를 채울 새 가죽부대가 되어라. 그래서 나와 함께 잔치를 벌이자, 함께 즐기자, 함께 놀자.”


사순절은 우울의 기색을 보이며 우울함으로 지나는 절기가 아닙니다.

사순절은 봄꽃잔치를 앞에 두고, 내가 나를 쓸고 닦고 비우고 버리고 그리고 나누며 하나님 나라 동네 잔치 제대로 준비하고 맞는, 그래서 오히려 설레임으로 지나는 절기입니다.



* 마태복음서 6:1-6, 16-21

** 마태복음서 2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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