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동 이야기(8. 한가한 일요일 이야기)

8. 한가한 일요일 이야기-

by 홍반장

빨간 대문 집인 기세네 집은 9집이 모여 사는데

작은 텔레비전은 몇 집에 있어도

다리 달리고 좌우에 브라운관을 보호하는 덮개가 나오는 큰 텔레비전은 기세네가 유일하다.

유명한 대머리 김일 선수가 나오는 레슬링 경기하는 저녁 시간이 되면

기세네 방에 아저씨, 아주머니가 다들 모여 자리를 잡는다.

왜 일본 선수와의 경기는 이렇게 인기가 많은지 시작 전부터 북적거린다.

그리고 아이들은 텔레비전 바로 앞에 자리잡고, 어떤 아이들은 어른 무릎 위에 기대앉고 그 뒤로 어른순으로 자리에 앉는다.

늦게 온 형들은 문밖 신발을 깔고 앉아 구경한다.

주물공장 집 기세는 전날 다툼이 있는 아이가 있을 경우,

그 아이 앞에 앉아 못 보게 하려고 막아서서 가끔 유세를 떤다.

그리고 동네 아저씨들에게도 채널을 가지고 똥고집을 부리며 주인 행세를 하기도 한다.

이렇게 한바탕인 북적대던 주말 저녁이 지나고 나면 한가로운 일요일 아침이 온다.


이른 아침 기세는 잠 오는 눈을 껌벅거리며,

이불 속에서 텔레비전을 틀고 유일하게 방 한가운데 누워 혼자 텔레비전을 독차지한다.

그 시절 한창 유행했던 은하철도 999나 천년 여왕이란

철이와메텔2.jpg

만화영화를 보려 하지만 대부분 중간 정도에서부터 눈이 떠져서인지 끝에 가서는 처음부터 다 못 본 걸 항상 후회한다.


또 이상하게도 꼭 재미있는 장면이 나오는 순간에

밖에서 동네 친구들과 교회 선생님이 교회 가자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마 선생님은 친구 엄마일 것이고,

선생님 양손에 아이들이 매달려서 목청 높여 부르는 것일 것이다.

기세는 왜 이리 만화영화가 이럴 때는 끝이 안 나고 재미난지 이불 속에 숨어 못 들은 척한다.

기세는 하나님이 계신 교회 가는 거보다 만화영화 보는 게 더 좋은가 보다.



골목으로 기세를 부르는 소리가 멀어질 때쯤이면

기세는 슬며시 이불에서 나와 빨간 철문을 열고 아카시아 교회 길로 허겁지겁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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