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동 이야기(6. 라면 이야기)

6. 라면 이야기-

by 홍반장

기세네 집은 친구들 아지트이다.

날씨가 조금 추워지거나 비가 오는 날이면 더 많은 친구들이 기세네 집으로 몰려온다.

기세네 집에 들어서면 신기한 것과 볼 거리도 풍성하다.

공장이다 보니 생전 처음 보는 공구에서부터 기계들, 하다못해 용광로 구경도 할 수 있다.

더구나 시끄럽게 돌아가는 기계에서 나오는 소음은 방 안에서 맘놓고 떠들 수 있게 도와 주기 까지 한다.


가끔 끼니때에 되면 엄마는 공장형들 힘내라고 돼지김치볶음을 자주 하신다.

거기에 풋고추, 상추, 달린 무, 어묵볶음과 보온밥통에 방금 퍼낸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봉밥이면 형들은 대만족이다.

때를 잘 맞추면 가끔 기세 친구들은 형들 사이에 껴서 고봉밥 체험을 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공장 쉬는 날이면 고픈 배를 기세 여동생의 라면에 의존해야 한다.


공장 기계 소리가 없는 일요일 오후.

여동생은 라면 국물이 가득한 큰 양은 냄비를 쟁반에 받쳐 들고 들어온다.

친구들 아지트로 가져온 라면이 한강이다.

젓가락으로 건져낸 면발은 퉁퉁 부어있고, 맹맹한 국물은 마셔도 마셔도 끝이 없다.

라면으로 가락굿수를 만들다니 대단하다.


며칠 후

또 라면 심부름에 여동생은 입이 댓빨이다.

요번엔 국물이 하나도 안 보인다.

그나마 위에 있는 면들은 퍽퍽하지만 건져 먹을 만하다.

시꺼멓게 바닥에 붙어 있는 면발들.

친구들은 라면을 먹으면서 상상의 나래에 수다를 더한다.

한 친구는 ‘여동생이 실수를 만회하려 물 조절 시도는 했으나 또 실패를 했다.’

또 한 친구는 ‘라면 끓는 시간에 또 딴짓을 했다.’

기세는 말은 안 했지만

‘계속 라면 심부름시키는 오빠들에게 본 때를 보여주려고 한 행동일 것이다’ 란 생각에

힘을 싣는다.


며칠 되지 않아 친구들에게 여동생의 라면 솜씨에 대한 효과? 가 나타났다.

마침 기세 엄마가 안 계시고, 모두들 배가 고파지자 다른 친구네 집으로 가자고 서로 수군댄다.

몰려간 그 친구네 집은 번듯한 양옥집이다.

마당에서 계단을 반 층 정도 올라가면 현관이 나온다.

그런데 마당에는 풀어놓은 많은 개들로 인해 현관까지 들어가기 쉽지 않다.

친구 손을 잡고 올라가야만 개들이 잠잠한 안전한? 집이다.

친구 어머님은

“네가 기세구나? 이야기 많이 들었다. 어서 오렴!”

많은 친구들 중에 기세를 대번에 알아보신다.

어머님이 거실에 모여앉아 놀고 있으라고 말씀하시자, 그 친구는 시청 시간도 아닌데 텔레비전을 보자고 한다.

책같이 생긴 테이프란 것을 텔레비전 아래 박스에 들이밀어 넣는다.

잠시 치치직 하는 소리와 함께 처음 보는 만화영화가 나오는 것이다.

친구들은 모두 ‘와~’하고 탄성을 지른다.

기세네 집에서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신기한 감탄사였다.

‘더군다나 재미없으면 중간에 다른 것으로 바꿔 볼 수 있다니 원’

이게 바로 비디오란다.


신나는 영화를 보고 있노라니, 친구 어머님이 밥상을 들고 오신다.

큰 양은 냄비 하나가 아닌 친구들 숫자만큼 라면이 담긴 그릇이 여러 개다.

각각 이쁜 무늬가 그려진 그릇이다.

보통 라면은 한 냄비에 끓여와 누가 젓가락질을 많이 해서 떠먹느냐,

그리고 냄비 뚜껑을 누가 선점하느냐 등 나름 경쟁이었는데 여기선 그럴 필요가 없었다.

각자 골고루 나누어진 라면 그릇 위에는 풀어진 달걀과 얇게 채 썬 파, 적당히 뿌려진 깨와 고춧가루가 얹어져 있다.

친구들은 모두 ‘와~’하고 또다시 탄성을 지른다.

라면에 달걀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양념을 넣어 먹어보는 것도 처음이다.

가락국수 같은 라면이나 바닥에 들러붙은 라면과는 맛이 근본적으로 달랐다.

이 라면은 아마 우리나라에서 파는 것이 아닐 거라 굳게 믿는다.


약주를 드신 다음날 아버님이 드셨다면 아마 시원하다고 하셨을 것 같은 맛이다.

달린 무도 먹기 좋게 적당히 썰어져 있어 쏙쏙 집어먹기 좋다.

누가 뺐어 먹을까 걱정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모두들 정신없이 젓가락질이다.

기세는 라면을 먹으면서 이마에 송골송골 땀방울과 주르륵 멀건 콧물이 계속 나와 신경이 쓰이는 건 오랜만이다.

학교에서 음식을 먹으면서 코를 푸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배운 기세.

집에서라면 쓰윽 하고 소매로 닦았으련만

친구 어머님은 기세를 보면서

“외국 어느 나라에서는 음식을 먹으면서 코를 큰소리로 팽하고 푸는 것이 예의인 나라도 있단다”라고 하신다.

기다렸다는 듯이 여기저기서 휴지로 코를 푸는 소리가

“패에엥! 팽!~” 요란하다.



기세는 속으로 ‘와~’하고 친구 어머님에 대한 고마운 탄성을 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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